병의협 "저수가 체계 개선, 정부 지원...왜곡된 의료 시스템 개혁" 촉구
"일부 단체·정치인, 의대 신설·정원 증원 악용 시도 즉각 중단해야"
서울아산병원 "응급시스템 재점검해 직원·환자 안전에 노력할 것"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의 원인은 의사 수 부족이 아닌 필수의료 분야(뇌혈관외과) 저수가와 정부의 지원 대책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진단했다.
병의협은 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의대 신설이나 정원 증원으로 악용하고 있는 일부 단체와 정치인의 음흉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에는 지역별로 뇌혈관질환 응급체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모색하고 인력 확보 및 장비 지원 대책을 촉구했다.
지난달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오전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뇌출혈로 진단받았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던 A씨는 당시 해당 병원에 뇌출혈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고 끝내 사망했다.
해당 사건을 두고 대한간호협회는 "국내 초대형 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받지 못해 발생한 것이기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번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준 예견된 중대한 사건"이라며 이번 간호사 사망 사건이 의사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의사인력 부족으로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원내 직원의 응급수술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건의 배경에 존재하는 의료공백, 의사 인력의 부족 문제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은 서울아산병원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에 진상조사대책위원회 구성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의료계는 이번 사건의 원인은 의사 수 부족이 아닌 고질적인 저수가와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 정책으로 인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뇌혈관수술 분야는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면서 "대학병원에서 조차 뇌혈관수술을 할 수 있는 적정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8월 3일 성명을 통해 "뇌출혈은 발생 기전이나 생긴 위치에 따라서 종류가 다양하다"고 짚으며 "이번 사건의 간호사는 '클립핑 수술'을 시행했어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클립핑 수술'은 신경외과 영역에서 아주 고난도 수술이라 외국에서는 수가가 높음에도 국내는 그렇지 않아 신경외과 의사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신경외과 의사는 인구수에 대비해 적은 편이 아니다"라며 "상당수의 신경외과 의사가 뇌출혈 분야를 외면하고 있고, 그마저도 중재적 시술에 더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병의협은 서울아산병원이 대형 병원임에도 고난도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사를 많이 둘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병의협은 "아산병원에서 클립핑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사 2명 중 1명이 해외연수를 가면 의사를 추가로 채용했어야 한다. 아산병원이 최소한의 필요한 조치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보여진다"면서도 "지원자가 없어 채용을 못한다고 병원에서 항변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더불어 "실제로 클립핑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줄어드는 추세"라며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사명감만 갖고 일하라고 하기에는 수익도 안 되면서 어렵고 위험한 수술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짚었다.
병의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의료 시스템의 정비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력확보와 장비 지원 등 지역별 뇌혈관질환 응급체계 지원책 마련 ▲필수의료 분야 저수가 체계 개선 로드맵 제시 등을 정부에 요청하고 "이번 안타까운 사건을 의대 신설이나 의대 정원 증원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음흉한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는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 및 의료 인력의 부족 문제와 원인 및 해결책이 같다고 볼 수 있다"며 "필수 의료 분야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저수가 체계를 개선하고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뇌혈관외과)는 SNS를 통해 "뇌혈관외과 교수는 큰 대학병원에 2∼3명 정도이고,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은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다. 뇌혈관외과 교수 2명이 1년 365일 퐁당퐁당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면서 "중증의료 분야인 뇌혈관수술 의료수가를 현실화 해야 한다. 실력 있는 후학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지원해야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안 생긴다"고 조언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직원이 회복하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병원 내에서 응급 치료를 위한 색전술 시도 등 다양한 의학적 노력을 했지만, 불가피하게 전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응급시스템을 재점검해 직원과 환자 안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