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질병부담 야기하는 '기생충병'

전 세계 질병부담 야기하는 '기생충병'

  • 이동민 충북대학교 기생생물세계은행 상임이사(의학박사)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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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사회적·환경적 손실 저평가…장기적 원 헬스 감염관리 필요
민관 협력 통한 통한 저예산·고효율…종합법제화 핵심 성공요인

ⓒ의협신문
ⓒ의협신문

2010년 소외 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 NTD)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600만 장애보정생존년수(Disability Adjusted Life Year, DALY)가 발생했다.소외 열대질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토양매개성 기생충·주혈흡충·사상충증 등 20개 질병을 의미한다. DALY는 질병으로 조기 사망해 손실된 수명과 질병을 앓으며 살아가는 기간을 합한 것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건강수명)'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소외 열대질환의 DALY는 토양매개연충증 520만, 주혈흡충증 330만, 림프사상충증 280만, 식품매개연충증 250만, 회선사상충증 50만 등으로 파악돼 기생충병이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힌다.

WHO는 10억 명 이상의 인구가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소외 열대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매년 53만 명이 사망한다고 밝혔다. 

기생충병은 종종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에서 높은 질병 부담을 초래하며, 수출국의 부족한 위생 인프라 및 오염된 식품을 통해 전 세계에 지속해서 전파된다. 지역적으로 가장 큰 질병 부담을 나타내는 곳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과 아시아이지만, 비단 이들 지역의 부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과소평가되는 기생충 질병 부담
일반적으로 질병이 발생하면 주로 사망률과 치명률에 초점을 맞춰 심각성을 추산하지만,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부하를 초래하여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만성질환에 대한 질병 부담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질병부담연구는 질병과 부상으로 인한 건강 손실의 규모를 추정하고 다양한 의료보건 정책을 결정하거나 보건사업을 추진하는데 근거자료로 이용된다.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보건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건강에 대한 사회적 가치판단이 반영되고 질병마다 일정한 척도가 적용되는 측정방법을 활용하여 질병부담을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보정생존년수는 사망률만이 아닌 비치명적인 건강결과를 측정하여 조기 사망과 만성적인 질병이 인구집단에 미치는 부담을 측정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대부분 기생충병은 신고대상이 아니므로 실제 발생보다 적게 보고되고 인식에서 멀게 느껴진다. 또한, 기생충 감염에 기인한 만성적 후유증 측정은 생애손실지수에 반영하기 어려움이 있어 과소평가되지만, 아직까지 장애보정생존년수는 질병 부담으로 인한 삶의 손실을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이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기생충병
2011년 Baird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영유아기부터 기생충감염관리 프로그램을 받은 성인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근로 시간이 현격히 증가하고 그에 따른 임금 소득이 20%나 차이를 보이며 식사 횟수 등과 같은 소비패턴에도 영향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이슈에 영향을 주면서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복합적인 영향까지는 장애보정생존년수로 반영할 수 없다. 

약 40년 국가단위 프로젝트로 추진된 기생충감염관리 프로그램이 국민 삶의 질을 개선됨을 보여주는 최고의 데이터가 존재한다. 자랑스럽게도 그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지역별 전국 기생충 감염률 데이터가 잘 보존되어 있다.

2014년 김태종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팀은 이 장기적인 데이터를 분석하여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에 기생충관리사업의 영향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지역별 기생충 감소 추세와 그 지역의 생산성 지표(교육 및 임금소득 등) 상승 추세의 상관성을 통해서 기생충감염관리 프로그램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공공 투자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더 이상 집단투약 없이도 기생충병의 재발 방지에 성공한 나라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는 전국단위로 장기적인 기생충 감염관리를 통해 만성 풍토병인 기생충증의 재유행이 근절될 수 있는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도달하였으며, 그 저변에는 당대 기생충 전문가들의 헌신에서 비롯된 민관 협력을 통한 저예산·고효율 운영과 지속적인 추진을 가능케 한 종합법제화를 핵심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10월 처음 영국 제약사 <span class='searchWord'>글락소스미스클라인</span>이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RTS, S/AS01) 사용을 승인했다. 아프리카 가나·케냐·말라위 어린이 약 80만명에게 접종한 결과, 말라리아 예방률 39%, 중증 예방률 29%로 그리 높지 않았으나 치료제를 함께 복용하면 입원율과 사망률이 70%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10월 처음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RTS, S/AS01) 사용을 승인했다. 아프리카 가나·케냐·말라위 어린이 약 80만명에게 접종한 결과, 말라리아 예방률 39%, 중증 예방률 29%로 그리 높지 않았으나 치료제를 함께 복용하면 입원율과 사망률이 70%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식품매개 기생충증, 전 세계 경제 부담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우리나라의 식품매개 기생충에 의한 감염은 여전히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물류의 이동이 발달하여 더 이상 식품 매개질병의 풍토성 특성은 흐려지고 전 세계 질병 부담으로 바뀐 지 오래다. 

식품에서 오는 위협이 증가하는 시대에 모든 가능한 식품매개 위험을 동시에 동일한 정도로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위험평가를 통한 저예산·고효율 운영과 지속적인 추진을 가능케 할 종합법제화가 절실하다.

식품안전을 위한 국가적 및 국제적 노력은 식품 매개 감염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필요로 이어졌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는 식품매개질병부담역학참조그룹(Food borne Disease Burden Epidemiology Reference Group, FERG)을 설립하여 식품 매개질병으로 인한 질병의 전 세계 및 지역 부담 추정치를 제공하였다. 여기에서 FERG의 구성 태스크 포스 중 하나인 기생충병 태스크 포스연구원들은 다양한 출처(데이터 합성)의 정보를 결합하여 오염된 식품으로 인한 10가지 기생충병 및 톡소플라스마증의 지역 및 전 세계 질병 부담을 추정하였다. 2010년부터 2015까지의 데이터를 통해서 전 세계 기생충병 사례의 48%가 식품 매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기인한 장애보정생존년수는 76%가 발생된다. 

본질적으로 식품 매개기생충 질병 부담을 줄이려면 인간의 건강만 살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많은 문제는 동물·식물·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식품 매개질병에서 오는 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장애보정생존년수 외에도 사회적·경제적 여러 평가 지표를 종합한 다중기준결정분석이 필요하다.

기생충병과 관련된 실제 비용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지표조합을 개발하고 표준화하려면 원 헬스(One Health) 접근 방식이 절실하다.

'원 헬스' 접근법으로 예방·통제 강화해야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인간과 동물의 건강, 식량 안보, 빈곤 및 질병, 환경을 위협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체적인 비전'으로서 원 헬스 접근법을 설명하고 있다. 

농·축산 분야에 기생충 질병 부담을 완화하면 농·축산물 생산성 향상은 물론 동물 복지와 사람의 건강이 동시에 향상될 뿐만 아니라 농·축산물 생산 시스템의 환경적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원 헬스 의제를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다. 

현재, 기생충 질병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손실에 대해서 저평가되고 있다. 정확한 손실평가를 위한 도구 개발 및 장기적인  데이터 축적을 통해 기생충 질병 통제 전략의 최적화에 필요한 실제 노력과 비용이 산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생충 질병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단위가 아닌 세계단위로 장기적인 감염관리를 통해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도달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보여준 기생충 감염관리 사례와 같은 '공공의 노력'으로 다시 한 번 전 세계 기생충 질병 부담을 줄이는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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