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중재원 자체 의료감정 인정됐어도 법원서 그대로 인정되는 것 아냐
의료진 및 의료기관 불리한 조정결정 수용보다 법원서 적극적 다툼 필요
의료분쟁과 관련해 소송 전 분쟁해결절차로서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을 택해 분쟁 해결을 시도하는 경우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원이나 의료중재원 절차를 거치면 의료과실 존재 유무에 관한 자체적인 분석 또는 감정이 이뤄지고, 이에 따라 해당 기관의 조정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분쟁의 양 당사자가 조정결정을 수용하지 않아 법원에서의 소송으로 진행될 경우 소송 전 나온 조정결정이 소송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가운데 소송 전 분쟁해결절차에서 현출된 제3자의 판단이 법원에서의 소송절차에서 가지는 지위에 관해 필자가 피고 종합병원을 대리해 수행했던 의료과오 민사손해배상청구사건에 관해 법원의 판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식 저하로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에 대해 CT검사와 MRI검사를 시행한 후 급성 뇌경색이 진단되자 혈전용해제를 투여했음에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이에 관해 환자의 유가족은 종합병원 의료진의 진단이 지연됐으며, 이로 인해 혈전용해제 투여도 늦어졌을 뿐만 아니라 당시 환자가 혈전용해제 투여 금기증에 해당함에도 혈전용해제를 투여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며 의료중재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의료중재원은 종합병원 의료진의 오진과 투약 상의 과실을 인정해 종합병원 측이 환자 측에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정결정을 했다.
그렇지만 종합병원 측이 의료중재원의 조정결정에 이의해 조정은 불성립했고, 이후 환자의 유가족 측이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해 소송으로 진행하게 됐다.
필자가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되어 진료기록 검토 및 관련 의학 자료 확인을 통해 ① CT검사와 MRI검사 시행과 그에 따른 뇌경색 진단이 지연됐다고 할 수 없다는 점과 ② 혈전용해제가 뇌졸중 진료지침에 따라 적절하게 투여됐다는 점 ③ 병원 도착 직후 환자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중했다는 점 등을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진료기록감정촉탁 신청을 하고 진료기록부와 여러 의학 전문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피고 종합병원 측의 무과실 및 인과관계 단절을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진료기록감정과 각종 증거 등을 종합해 필자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여 의료중재원 측의 판단과 달리 피고 종합병원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모두 부정했다.
중추신경계의 특성상, 뇌경색이나 뇌출혈 또는 감염 등으로 인한 이상 증상에 관한 대응이 의학적으로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환자에게 심히 중대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중추신경계 장애가 발생하며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거나 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고, 과실 및 인과관계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료중재원에서는 종합병원 의료진의 과실 및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음에도 법원에서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이 부정됐다는 점에서 자체 의료감정을 수행하는 소비자원이나 의료중재원에서의 사실 인정이나 판단이 법원에서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 외에도 필자가 수행한 사건들에서 소비자원 또는 의료중재원에서의 불리한 조정결정을 뒤집고 승소한 사례들이 있다.
따라서 환자나 환자의 유가족, 의료진 또는 의료기관 등 의료분쟁의 일방 당사자가 소비자원이나 의료중재원과 같은 소송 전 분쟁해결절차에서 불리한 조정결정을 받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의료전문법률가의 검토 및 조력을 받아 법원에서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다투어 볼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