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료소비자 선택권 행사에 도움 될 수 있는 정보" 원심 유죄 뒤집어
형법 310조 적용…명예훼손 성립범위 지나친 확장 '제동'
모 대학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환자의 아들 A씨. 어느 날 그는 병원 및 집도의 실명과 수술 경과 등이 첨부된 전단지를 들고 병원 정문 앞길에 섰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잘못된 만행을 알리고자 합니다! (중략) …의사 자기가 수술하다 죽은 게 '재수가 없어 죽었다' 이런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사란 사람이 상식 밖의 말을 하는지 이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얼마 뒤 A씨는 위 전단지를 병원에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인들에게 배포함으로써, 해당 병원 소속 정형외과 의사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로부터 5년 가까이 이어진, 유무죄를 다투는 치열한 법정 공방의 시작이었다.
언론에도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형법 제307조 제1항) 또는 허위의 사실(동법 제307조 제2항)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흔히 '진실을 말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겠지'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으나,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면 죄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단,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면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동법 제310조).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경멸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모욕죄와 유사하지만, 모멸적 언사로 추상적 판단을 표시하는 데 그치는 모욕죄는 사실의 적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가령 단순 욕설을 하는 경우는 모욕죄에 해당될 수 있다.
집도의에게 들었던 말을 전단지로 만들어 병원 앞에서 배포한 A씨의 경우는 어떨까.
우선 A씨가 전단지를 병원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나눠준 행위가 공연성(전파가능성) 요건을 충족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단지를 배포하지 않아도, 일례로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대화방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듣고 일대일로 대화한 경우마저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전파가능성이 인정된 사례(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8155 판결)는 너무나 유명하다.
다음으로 A씨가 집도의에게 들었던 말을 전단지에 옮긴 행위는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그러한 발언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행위가 해당 집도의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하다는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고, 2심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벌금을 50만원으로 낮춰 선고했다.
해당 전단지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또는 평가를 침해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배포한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승복할 수 없던 A씨는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대법원은 "전단지 내용은 환자가 사망한 의료사고의 발생과 이에 대한 담당 의료인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한 의료소비자의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A씨가 전단지를 배포한 의도가 공공의 이익에 있다고 봤다.
이어 "이러한 내용은 피해자에게 의료행위를 받고자 하는 환자 등 의료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권 행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정보로서 공적인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안"이라며 "설령 피고인에게 부수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원망이나 억울함 등 다른 개인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도8421 판결 참조).
실제로 명예훼손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여지가 크다.
이를 우려한 우리 법원은 형법 제310조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설령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취지였다고 보거나,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에 불과한 경우라고 하여 유죄 선고한 원심을 뒤집는 태도를 왕왕 보인다.
횡령 전과가 있는 상대방에게 '사기꾼'이라고 했다거나, 고교 동창 10여명이 있던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C가 내 돈을 안 갚아서 사기죄로 감방 몇 개월 살다 나왔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라고 말한 것, 그리고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소장의 사기 전과 사실을 언급한 사건 등은 모두 최근 무죄 선고된 케이스이다.
일상에서 무심코 SNS에 특정인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서, 혹은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말실수가 명예훼손 고소 또는 피소 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위 언급한 쟁점에 착안해 적절한 법적 조력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