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국시 개선 연구보고 출제문제 살펴보니...무면허 의료·오진 논란
교모세포종(뇌종양) CT 영상 제시하며 '뇌중풍' 한약 처방 정답 표기
강석하 과학중심연구원장 "한의사 의과 의료기기 사용 결국 환자 피해"
한의사 국가시험 개선을 위한 연구보고서 출제 예상 문제에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컴퓨터단층촬영기기(CT) 진단 및 분석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더욱이 출제 예상 문제에서 제시한 환자의 질환(뇌종양)과 정답 문항으로 소개한 처방(뇌중풍)이 달라 '오진' 논란이 제기됐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최근 '직무기반 한의사 국가시험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책임연구자 김은정·동국대학교)'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 연구는 한의계 의견 수렴, 학회별 의견 조회, 한의사 사회 설문조사를 토대로 현행 한의사 국가시험 출제과목을 직무 중심으로 전환하고 개편하자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연구에는 한의사 국가시험 개선안 및 예시 문항도 일부 제시했다.
이 연구에서 제시한 예시 문제에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한의사는 할 수 없는 의사의 업무인 요추단순방사선(L-spine x-ray) 검사, 수부 단순방사선(hand x-ray) 검사, 혈액 검사 등을 제시했다. 특히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진단 및 치료하기' 분야 예시에는 CT와 심전도 등 의과 진단기기를 분석해서 처방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 진단 및 치료하기' 문항은 "80세 남자가 어제부터 구토와 갑작스럽고 극심한 두통으로 내원하였다. Brain CT 촬영상 아래와 같은 영상을 보였다. 키 175cm, 몸무게 83kg으로 체질량 지수(BMI)는 27kg/㎡이며, 심전도에서는 아래와 같이 나타났다. 평소 겁심(怯心)이 많고 기육이 견실하며 대변은 단단하여 보기 어려워한다"며 CT 영상과 심전도 결과지를 활용한 한약 처방을 질문했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에는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했으며, 의료법 제2조에는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0년 6월 25일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은 의료법 위반"이라며 "수사기관이 한의사가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해 의료법 위반죄를 물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잘못이 없다"고 결정했다.
특히 '사상체질의학의 질병(KCD) 진단 및 치료하기' 문항에서 질문으로 제시한 CT 영상(뇌종양)과 정답으로 표기한 청폐사간탕(뇌중풍/뇌졸중)이 달라 '오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청폐사간탕은 한의계에서 뇌중풍(뇌졸중)에 처방하는 대표적인 한약으로 보고됐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CT 영상을 잘못 보고 처방을 내린 것 아니냐며 의문을 표했다.
CT 영상은 <RADIOPAEDIA CENSUS 2022>에 Assoc Prof Frank Gaillard 교수가 최근 기고한 'Glioblastoma NOS'에서 확인할 수 있다. CT 영상의 환자는 왼쪽 전두엽에 교모세포종(Glioblastoma) 병변이 있는 60세 여성. Gaillard 교수는 "'교모세포종'을 앓은 60세 여성 환자는 최종적으로 수술을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의학계에서는 교모세포종은 일차성 악성뇌종양인 신경교종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의사 A씨는 "뇌종양과 뇌졸중은 명백히 다른 질환"이라며 "의료계에서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약을 처방한다면 엄연한 의료사고"라고 밝혔다.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은 "정답이라는 청폐사간탕에 관한 논문이나 연구보고서를 보면 주로 뇌졸중에 관한 연구가 많았고, 뇌종양은 눈에 띄지 않는다"면서 "한방 측에서 문제를 정당화하려면 뇌종양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폐사간탕이)뇌 질환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CT 영상은 의과 의료기기를 차지하기 위한 대외 홍보용이라는 불순한 의도만 남지 않는가?"라고 한의사 국시 문제를 출제한 의도에 의문을 표했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한의업계는 '배웠으니 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국민건강·생명과 밀접하다는 점에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대법원 판례 일부를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악용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판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국민들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연구용역 문제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국가고시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이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출제자의 고위과실 여부 등을 따져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위법 여부를 논하기 어려운 단계"라면서 "법은 마지막 단계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방식, 시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이번 연구를 추진하면서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산학협력단과 3430만원에 수의계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연구는 원광대·가천대·대구한의대·세명대 한의과대학 연구진과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연구진이 참여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수행했으며, 8월 29일 결과보고서를 발간했다.
국시원은 "해당 연구는 국시원의 연구비로 수행됐으나 여기서 제시된 내용은 국시원의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다"라며 "연구진들의 연구결과물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의협신문]은 해당 논란과 관련해 책임연구자인 김은정 동국대학교 교수(분당한방병원)와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