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결과 발생이 의료진 침습행위 때문이 아니면 위자료 지급대상 볼 수 없어
1심 재판부 "진료과정 과실 없지만 설명의무 위반 인정해 위자료 책임" 판결
2심 재판부 "수술 후 악결과 의료진 책임 아니라면 설명의무 위반 문제 안돼"
의료진에 의한 의료적 침습행위 시행 후 악결과가 발생했더라도 해당 악결과의 발생이 의료진의 침습행위 때문이 아니라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거나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문제가 현실화됐다고 볼 수 없어 위자료 지급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즉,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악결과가 의사의 침습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지 않은 사항에 관한 것은 위자료를 지급할 정도의 설명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것.
환자 A씨는 하혈 증상으로 인해 B산부인과의원에 내원해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비정형 선세포 소견이 나오자 2017년 4월 13일 C대학병원(피고 병원)에 내원했다.
C병원 의료진은 A씨(고인)에 대해 자궁경부확대술, 액상자궁경부세포검사, 골발 MRI검사 등을 시행했는데, 검사 결과 자궁경부에 약 3.5㎝의 종양이 발견됐다.
C병원 의료진은 2017년 4월 20일 A씨에 대해 자궁경부암으로 진단하고, 자궁경부암의 병기 설정을 위한 검사를 시행키로 했다. 또 2017년 4월 23일 A씨에 대해 복부 CT검사, PET-CT검사, 뇌MRI검사, 내시경 검사 등을 시행했는데, 자궁경부에 약 4.7㎝의 종양이 발견됐고, 양쪽 골반 림프절 전이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보였다.
C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해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 후 2017년 5월 중순경 수술을 시행키로 계획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28일, 5월 3일, 5월 10일 세 차례에 걸쳐 A씨에 대해 시스플라틴(Cisplantin)을 이용한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각각 시행했다.
또 5월 12일 A씨에 대해 복부 CT검사를 시행했는데, 검사 결과 종양의 크기가 6.7㎝로 증가됐고, 양쪽 골반 림프절의 크기가 증가되고,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소견을 보였다.
A씨는 2017년 6월 1일 다른 대학병원에 입원해 다음 날 복강경하 광범위 자궁절제술 및 림프절제술을 받고 6월 9일 퇴원했는데, 6월 24일 수술 후 발열, 복막염 의증, 혈전증으로 재입원했다. 악성종양의 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등 전신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졌고, 결국 7월 21일 감염성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 및 자녀는 C병원 의료진의 치료방법 선택상의 과실, 경과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 설명의무 위반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C병원 의료진은 당시 시행된 검사를 통해 확인된 임상적 병기를 고려할 때, 즉시 표준적 치료방법에 해당하는 근치적 자궁절제술 또는 동시화학방사선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함에도, 표준적인 치료법이 아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권유하고, 결정하도록 했다"며 C병원 의료진이 치료방법을 잘못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또 "환자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시작한 이상, 면밀하게 영상검사 등을 시행함으로써 치료 반응이나 종양의 크기를 확인하고, 치료 반응이 없거나 증상이 악화될 경우 즉시 다른 표준적인 치료방법을 고려하는 등 경과관찰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의료진은 만연히 선행항암화학요법의 효과를 맹신하고 영상검사 등 치료 반응을 보는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고인에 대한 경과관찰 과정에서 검사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C병원 의료진이 치료방법을 결정하기 전에 환자의 증상, 이상검사 결과, 정확한 진단명, 자궁경부암의 정확한 임상적 병기, 가능한 치료방법 및 표준적인 치료방법과 그에 따른 예후, 특히 선행항암화학요법이 표준적인 치료방법인지 여부, 합병증이나 후유증, 생존율,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아 병기가 악화될 가능성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했어야 함에도 선행항암화학요법을 받으면 결과가 좋을 것처럼 고인과 원고들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권유하는 등 설명의무를 위반한 잘못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북부지방법원 재판부는 2020년 11월 26일 의료진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고,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잘못만 있다고 판단, 원고들에게 이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재판부는 "부인종양학회가 작성한 '자궁경부암 진료권고안'에는 선행항암화학요법 후 광범위 자궁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등 C병원 의료진이 고인에 대해 자궁경부암에 대한 치료방법으로 근치적 자궁절제술 또는 동시화학방사선치료를 시행했어야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선택한 것이 의사로서의 합리적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C병원 의료진들은 고인에 대해 복부, 골반CT검사를 시행해 치료반응을 평가하고, 병변 부위 및 부작용 발생 여부를 확인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고인에 대해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면서 경과관찰을 소홀히 한 잘못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설명의무 위반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C병원 의료진은 고인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권유함에 있어 다른 치료방법의 존재와 각 치료방법의 장단점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고인이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면서 "항암제 치료 동의서에는 '방사선 치료나 보존적 치료를 고려할 수도 있으나 치료효과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기재돼 있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동의서는 고인에 대한 1차 선행항암화학요법이 시행되기 약 5시간 전에 작성된 것으로, 위 동의서만으로는 C병원 의료진이 고인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권유하면서 그 단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설명의무 위반이 고인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그치는 이상 가족들에 대해서는 위자료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고인에 대해서는 1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에 대해 원고 측과 C병원 측은 모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8월 25일 제1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그 취소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또 원고들의 항소도 기각했다. C병원 의료진의 의료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을 모두 인정하지 않은 것.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치료방법 선택상의 과실 주장 ▲경과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 주장에 대해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위자료 지급 판결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의사의 설명은 모든 의료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 등 침습을 과하는 과정 및 그 후에 나쁜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사망 등의 중대한 결과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등과 같이 환자에게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봤다.
따라서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지 않는 사항에 관한 것은 위자료 지급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가 없다"며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5. 4. 25. 선고 94다27151 판결, 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36848 판결 등 참조)를 인용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C병원 의료진은 고인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기 전에 고인에게 '시스플라틴 항암제 치료의 목적 및 효과, 과정, 항암제 치료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항암제 치료 후 발생 가능한 합병증과 후유증, 항암제 치료 이외의 기행 가능한 다른 치료방법(방사선 치료나 보존적 치료 등), 항암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의 예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고인으로부터 동의서에 서명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고인에게 사전에 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고 봤다.
이어 "고인의 사망이라는 악결과가 C병원 의료진의 침습행위(항암제 투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위자료 지급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는 없는데, C병원 의료진이 고인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실시한 것이 고인의 상태를 악화시켰다거나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설령 C병원 의료진이 고인에게 선행항암화학요법을 권유하면서 다른 치료 방법의 존재와 각 치료 방법의 장단점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고인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C병원 의료진의 침습행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므로, 고인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거나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문제가 현실화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C병원 측 변호를 맡은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이 사건은 의료진에 의한 의료적 침습행위 시행 후 악결과가 발생했더라도 해당 악결과의 발생이 의료진의 침습행위 때문이 아니라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거나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문제가 현실화됐다고 볼 수 없어 위자료 지급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되지 않음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환자가 사망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1심에서 일부 패소한 사건에 대해 항소심에서는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이행한 의료진의 무고함이 인정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