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꽃
거창 우두산 가는 길 고견사 입구에서 너를 만났다
낮은 풀숲에 숨어 지나가는 나를 빼꼼히 쳐다보는
보라색 자태가 매혹적이었다 식물도감에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이 한눈에 쏘옥 들어왔다
네 모습을 우선 사진기에 담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뿌리인 초오는 누군가의 사약으로 쓰였다
신분의 귀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사약을 썼다니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공평하지 못하구나 유명한
너의 이름을 내과 전공의 시작하던 해 처음 알았다
신경통에 좋다고 너의 뿌리를 달여먹은 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쉴 수 없어 응급실에 온
환자에서 나타나는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심전도
초오 중독에 의한 부정맥은 잘 알려져 있더구나
심심 유곡 홀로 밤을 지새우며 뿌리에 맹독을 키우는
예쁜 척 거짓된 사랑을 비웃으며 절치부심하는 너는
산문 밖 세상에서는 피울 수 없는 풍경 같은 꽃이다
▶김완 혈심내과 원장 / 2009년 <시와시학> 등단 /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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