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학 역설(Paradox)-기생충도 약에 쓰려면 없다?

기생충학 역설(Paradox)-기생충도 약에 쓰려면 없다?

  • 이동민 충북대학교 기생생물세계은행 상임이사(의학박사)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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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학술대회…역학·예방·진단·치료 '조명'
기생충 '유용한 생명자원'…'기생생물세계은행' 설립 주도적 역할

<span class='searchWord'>이동민</span> 충북대학교 기생생물세계은행 상임이사(의학박사) ⓒ의협신문
이동민 충북대학교 기생생물세계은행 상임이사(의학박사) ⓒ의협신문

기생충에 의한 질병 부담과 경제 부담에도, 그들이 생태계 안정성에 대한 역할의 중요성과 기후변화에 따른 기생충 보존계획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제는 기생충을 유해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유용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금보다 비싼 종자가 있듯이 기생충도 값비싼 생명자원으로 점차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기생충 다양성만큼 연구 다양
글쓴이는 10월 20∼21일 양일간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제64회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국내 기생충학자들에게는 오랜만에 맞는 대면 행사다. 그동안 비대면학술대회에서 오는 공허함과 함께 연구 교류 및 친목 활동이 주는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기생충학·열대의학회는 2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학술대회에는 평균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외국 기생충학회와 비교하면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규모이다. 학술대회는 기생충 역학·예방·진단·치료에 관한 주제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기생충의 질병 유발 과정이나 생태·진화 등 기초연구, 새로운 분석 도구를 적용한 연구 결과와 다른 질환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생 생물은 다양한 분류군을 포괄하는 연구 분야로 범위가 넓어 기생충 연구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10월 20∼21일 양일간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제64회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학술대회.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는 2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학술대회에는 평균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의협신문
10월 20∼21일 양일간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제64회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학술대회.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는 2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학술대회에는 평균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의협신문

연구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든 연구에는 시의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와 기생충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연구가 증가하였다. 한때 특정 기생충 치료제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간 적이 있다. 또 다른 이슈로는 기생충질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가벼운 증상으로 끝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에 특정 기생충감염은 오히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높인다는 논문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기생충을 둘러싼 연구 주제가 다양하다는 의미다.

대부분은 확증된 증거 기반이 아닌 통계적인 유의성을 조사한 탐색적인 연구다. 다시 말하면 가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 가설 검증 통해 '유용한 생명자원' 탈바꿈
사람에 더부살이해온 기생충을 비롯한 일부 공동 진화 미생물이 오히려 적절한 면역조절 기능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오래된 친구' 가설은 유해하게만 바라본 기생충이 유용한 생명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생충 감염은 Th2 면역반응을 유발하는데, 만성 기생충 감염은 Th1과 Th2 반응을 모두 억제하게 된다. 기생충에 의해 자극되는 면역억제 및 조절 T세포 반응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한 다른 병원체의 감수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처럼 생각된다. 이러한 의심은 다양한 연구 개념을 자극하였고, 기생충 기반 치료법도 동물모델 연구를 통해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면서 기생충 유래 제품 개발로도 이어지고 있다. 

기생충 유래 물질은 패혈증, 제2형 당뇨병, 알레르기성 천식, 류머티즘 관절염, 염증성 장 질환, 1 형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 등 다양한 자가면역 및 염증성 질환 연구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기생충 배양 까다로워…제공 기관 제한적
학계에서 기생충의 유용성이 입증됨에 따라 기생충을 학술 및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수요도 매우  증가하고 있다. 인체병원성 기생충 외에도 곤충을 포함한 동·식물 기생충의 유해성과 유용성이 검증되고 있다. 기생충을 생물학적 지표로 활용하는 연구와 자연 친화적인 병충해 방제사업 등 농·축·수산·임업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골프장 잔디에 피해를 주는 풍뎅이를 천적인 선충을 이용해 방제하는 요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적절한 타이밍에 연구를 진행하려면 연구자원이 풍족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미생물들과 달리 기생충은 복잡한 생활사 때문에 실험적으로 배양하기 까다롭다. 그래서 상업적인 활용을 위한 대량 생산은 물론이거니와 기생충 연구를 위한 소량 생산도 쉽지 않다. 

현재까지 기생충을 학술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은 제한적이며, 상업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은 세계적으로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생명연구자원법 제정…일찍부터 생명연구자원 관리
우리나라는 생명연구자원의 가치를 일찍부터 준비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2007년 '국가 생명자원 확보·관리 및 활용 마스터플랜' 수립을 시작으로 2009년 생명연구자원을 범부처 차원에서 확보·관리하고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여 연구에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되는 '생명연구자원의 확보·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생명연구자원법, 2019년 6월 25일 시행)'을 제정하여 생명연구자원 육성 정책에 관한 법적 근거를 갖추었다. 

이후 '제1차 생명연구자원관리 기본계획(2011∼2020년)', '제2차 생명연구자원관리 기본계획(2016∼2020년)', '제3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기본계획(2020∼2025년)'을 차례로 수립하여 생명연구자원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했다. 

이를 발판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명연구자원 실물소재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생산된 다양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연구자 활용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일부 연구는 우리나라 생명연구자원 관리 정책이 양적 확보에 치중하여 연구자 니즈가 없으므로 가치 있는 연구자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기생충은 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정책에 힘입어 선진국보다 앞서 기생충 자원화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2020년 세계 최초 '기생생물세계은행' 설립

기생생물세계은행 준비위원회는 2020년 9월 23일 청주 오송 C&V센터에서 '사단법인 기생생물세계은행' 창립총회를 열었다. 준비위는 엄기선 충북의대 명예교수를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충청북도는 기생생물세계은행 창립을 계기로 전 세계 기생생물 자원과 정보를 확보하는데 앞장서고, 기생생물 산업 자원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의협신문
기생생물세계은행 준비위원회는 2020년 9월 23일 청주 오송 C&V센터에서 '사단법인 기생생물세계은행' 창립총회를 열었다. 준비위는 엄기선 충북의대 명예교수를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충청북도는 기생생물세계은행 창립을 계기로 전 세계 기생생물 자원과 정보를 확보하는데 앞장서고, 기생생물 산업 자원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의협신문

'세계기생생물보전계획'이 수립된 해와 같은 시기인 2020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 '기생생물세계은행'이 설립되었다. 

국내에서 기생충 자원화는 2005년 당시 엄기선 교수(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로부터 시작되었다. 엄기선 교수는 인체감염을 일으키는 세 번째 테니아조충을 발견한 세계적인 학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연구를 위해 직접 기생충을 먹은 괴짜 과학자로 알려졌다. 

새로운 기생충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민감한 주제인데, 특히 인체에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더욱 그러하다. 1993년 처음 아시아조충(Taenia asiatica)을 새로운 인체감염 기생충으로 발표한 이후 엄기선 교수는 더 확고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테니아조충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국가의 생명연구자원 정책의 양적 확대 사업은 기생충 수집 활동을 개별 연구자들의 영역에서 모든 연구자를 위한 공공재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생생물자원은행사업을 시작하는데 절묘한 타이밍을 마련해 주었다.

기생생물세계은행이 성공하려면 정책입안자, 자원은행 실무자와 연구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 특히 연구자원의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 연구자의 니즈를 잘 파악해야 한다. 

글쓴이는 세계기생충학회(ICOPA)에 참가한 기생충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자의 경력과 주제를 물어보고 그들의 연구를 위해 어떤 분석도구를 사용하는지, 어떻게 연구소재를 확보하는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설문에 참가한 대다수 연구자는 연구에 사용할 기생충 확보 및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생충 공급은 물론, 연구 데이터 및 분석도구를 제공하는 원포털 사이트를 희망하였다. 또한, 기생충학 관련 다양한 교육활동의 제공을 바라고 있으며, 관련 워크숍이 있다면 참가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바야흐로 생물자원은행 2.0 시대가 열렸다. 생물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 지침을 담은 국제협약인 나고야 의정서 발효(2014년)에 따라 생물자원 이용을 위한 접근 시 제공국의 사전 통고 승인에 따라야 하며, 상호 합의 조건에 따라 생물자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공유해야 한다.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라 생명자원 확보 및 제공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연구 데이터 및 분석도구를 제공하는 전문성 있는 기초 인프라로서의 요구를 받고 있다. 

앞으로 기생생물세계은행은 기생충 자원화에 그치지 않고, 기생충 질병 관리에 필요한 기초 자료 제공과 세계 기생충 보전 계획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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