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부장
[특집] 의료전달체계의 현황과 외국의 경험(2)
올해는 새정부의 출범과 미래 신종감염병 대응체계 논의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보건의료 분야의 거버넌스 개선과 더불어, 해묵은 난제의 해결방안 모색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계간 의료정책포럼> 2022년 연중 특집 세션의 주제로 '의료전달체계'를 선정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종합적인 시각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계간 의료정책포험>에 실린 특집 원고를 게재한다.
[의협신문]은 첫 번째 '현행 의료전달체계, 의료기과 기능의 현황 및 문제점' 세션에 이어 '의료전달체계의 현황과 외국의 경험' 두 번째 세션을 소개한다.
<글싣는 순서>
1. 의료전달체계 이슈에서 좀 더 고려돼야 할 문제들
- 옥민수 울산의대 교수(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2. 환자중심의 의료전달체계는 무엇일까?
- 윤명 (사)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3.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대만의 정책사례
- 김계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부장
4. 일본의 의료·개호 전달체계 현황 및 시사점
- 강주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대만의 전민건강보험제도(全民健康保險制度)는 정부 주도하에 운영되는 대표적 사회보장프로그램이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 보험제도로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와 구조, 운영체계 등이 매우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의 전민건강보험제도 기획 당시 독일, 한국,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의 사례를 모델로 삼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국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제도를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은 자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강력한 정부 주도의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면서, 의료서비스 공급은 우리와 같이 대부분 민간부문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경우 의료기관 이용이 자유로워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범사업들을 진행해왔다.
필자가 대만의 사례들을 자주 소개하는데, 이는 대만의 보건의료체계가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대만이 우리와 유사한 건강보험제도,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제도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그 사례와 경험을 소개하고자 함이다.
본 고에서는 대만의 의료전달체계와 관련된 현황을 살펴보고,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시도 중인 관련 정책과 그 경과를 검토하였다.
2. 의료전달체계 관련 법·제도 개요
대만은 의료법에 의료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위한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에 의료기관을 '의사가 의료행위를 실시하는 기관'으로 정의하면서(제2조) 환자의 외래 진료를 위한 시설을 갖춘 진료소(의원, 9개 이하 병상 설치 가능), 병원급 의료기관의 인력 및 시설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제12조).
특히 교육병원 관련 규정(제94조~제97조)은 별도의 장으로 두어 교육병원 인증에 관한 사항, 연구개발 및 교육을 위한 조건, 연간 예산 비율 등을 규정하고 있다.
즉 대만의 의료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의원(Clinics), 병원급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지구병원(local community hospital), 구역병원(metropolitan hospital),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교육병원 또는 의학중심병원(academic medical center)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의료기관 유형별 역할과 기능은 뚜렷하지 않다.
또한 의료법에는 의료인력 및 시설의 배분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데, 이에 따르면 위생복리부(우리의 보건복지부)는 의료 자원의 균형 발전, 공공 및 민간의료기관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 및 합리적인 인력배치를 도모하기 위해 의료지역을 구분하고 의료체계 구축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특히 의료지역의 구분은 지역의 의료 자원과 지역 내 인구 분포 등을 고려해야 하며, 대규모 병원을 증설 또는 설립하는 경우 위생복리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생복리부는 의료 자원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도 있다(제88조~제92조).
다음으로 환자의 의료체계 이용과 관련된 규정은 전민건강보험법에 의거한다.
의료이용 단계나 절차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본인부담비율을 규정하면서 진료의뢰 없는 직접 진료에 대해 본인부담비율을 차등적용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전민건강보험법 제43조는 환자의 본인부담비율이 외래 또는 응급 치료 비용의 20%, 가정 간호 비용의 5%를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진료의뢰 없이 직접 병원급 외래진료 시 지구병원 30%, 구역병원 40%, 교육병원 50%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주무관청은 그 금액을 공표할 수 있는데 2022년 해당 금액은 <표 1>과 같다.
즉 환자의 의뢰·회송체계와 관련하여 상급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1차, 2차 의료기관 의사의 진료의뢰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본인부담금을 조금만 더 부담하면 바로 상급의료기관에서의 진료가 가능하다.
대만 역시 2004년 SARS 유행 이후, 의료전달체계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2005년 7월부터 본인부담제도와 의뢰제도를 연결하여 의료체계 간 의뢰 유무에 따라 외래진료 시 본인부담금을 차등 적용해왔다.
특히 2016년 6월부터 우리의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교육병원 또는 의학중심병원(academic medical center)이 중증질환 치료, 의학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뢰제도를 연결한 본인부담금 차등적용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강화된 본인부담금 차이 역시 환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 수준이어서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의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의학중심병원 외래진료 시 진료의뢰서를 지참할 경우, 진료비는 한화 7,600원 정도이지만, 의뢰서 없이 직접 방문할 경우 한화 18,800원을 부담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편 대만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으로 전민건강보험법(제44조)에 가정의사제도(家庭責任醫師制度, family physicians system) 도입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였다.
3.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
대만은 전민건강보험제도 도입 이전 1970년대부터 의료 자원의 잘못된 배분, 일차의료 제공자의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특히 1995년 전민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되면서부터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에 별다른 제재가 없자 의원급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고, 여기에 총액계약제까지 시행되자 예산에 대한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일차의료기관의 역할 강화, 의료비 증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2001년, 2006년 당뇨병 및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자 등록과 관리에 대한 성과급제도(P4P)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2010년부터는 가정의학 통합 진료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만성질환 등록관리 시범사업의 경우 일정 기간 진행 후 종료되었고, 가정의학 통합 진료 프로젝트는 확대시켜 2011년 전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면서 가정의사제도 도입을 명시하였으며, 2013년부터 다양한 형태의 시범사업을 실시하였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대만의 가정의사제도에 대한 계획은 2003년부터 구상된 것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는데, 당시 의료계와 합의한 시범사업의 원칙에는 '국민의 의료이용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의료공급자의 참여는 자율에 맡기며, 진료비 청구 및 심사 역시 기존과 동일하게 적용하며, 총액계약제 구조 아래서 이미 협정된 비용과 구조에는 변동을 주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였고, 의료비 절감분에 대해서는 의료제공자에게 보상한다는 내용도 포함하였다.
이 때문인지 가정의사제도에 있어 환자에게 강제되는 내용은 없고, 최근 연구에서도 대만 전체 인구의 20% 정도가 가정의사제도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대만 위생복리부에서 소개하고 있는 가정의사제도(NHI Family Physician Integrated Care Project)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같은 지역사회 안에 5~10개의 일차의료기관, 1개 또는 2개의 병원급 의료기관이 협력하여 지역의료공동체(지역의료그룹)를 형성하고 지역사회 주민을 돌보기 위해 힘을 합친다.
지역의료그룹은 상시 상담, 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갖추고, 건강관리 및 보건교육을 실시하며, 환자에게 추가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상위 의료기관 전문의에 의뢰하며, 파트너 병원, 입원실로의 전원을 돕는다. 이때 환자에 대한 의무기록도 제공하고, 병원에서의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지역의료그룹으로 환자가 돌아오는 체계이다. 지역의료그룹 내에서 진료소와 병원은 상호 협력하고 수직‧수평적 협력관계도 형성한다.
2021년 6월말 기준으로 대만에는 623개 지역의료그룹이 있고, 일차의료 수준의 클리닉은 5587개소가 참여하고 있다.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통해 대만 가정의사제도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Chii-Feng Jan 등(2020) 연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 시범사업의 참여군 및 비참여군의 만성질환 및 동반질환 유병률을 비교한 결과, 질환에 따라 차이(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암질환 등 참여군이 다소 낮음)가 있으나 유의미하지는 않았고, 의료자원 활용 면에서는 참여군의 외래진료 횟수, 응급실 방문건수, 입원실 방문건수 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정부는 가정의사제도에 일차의료기관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2017년 NT$ 15억 8,000만(USD 5,300만)의 예산, 2018년에는 양방향 진료 의뢰 및 병원 간 협력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NT$ 24억 3,000만(USD 8,100만)의 재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가정의사제도의 성공을 위한 핵심요소로 개혁에 참여하려는 의사들의 동기 및 학습 의도, 지역병원들의 협력 및 지원, 국가차원의 정책 지원, 보험자의 인센티브 제공 및 가정의사에 대한 적절한 교육・훈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하였다.
Chyi-Feng Jan 외(2018) 연구에서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가정의사제도에 참여한 환자들의 경우 성인건강검진,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 노인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등의 예방 관련 서비스를 많이 받았고,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았으며, 개인의 건강상태에 대한 이해도 등이 향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반면 Li-Lin Liang(2019) 연구에서는 가정의사제도 도입이 치료의 연속성이나 치료의 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자는 2009년부터 2013년 만성질환자로 구성된 패널을 대상으로 가정의사제도 도입에 따른 치료의 연속성, 조정기능 등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치료의 연속성을 감소시키고 치료의 조정기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의료의 질(회피가능한 입원, 응급실 방문 증가 등)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는 가정의사제도가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상황적 이유로 등록 및 게이트키핑 체계의 부재, 진료소(의원)의 제한적 수용력, 총액계약제 안에서 주된 진료비 지불방법으로 활용되는 행위별수가제의 영향이라고 분석하였으며, 보다 강력한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즉 연구대상, 분석방법 등에 따라 가정의사제도 도입에 대한 영향은 연구자마다 다르게 평가되고 있어 대만의 이러한 정책적 시도가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일차의료를 강화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이루어지는 정책적 시도에 대해 향후 결과를 세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4. 나가며
WHO(2008)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요건으로 진료권의 설정, 필요한 의료자원의 공급, 의료기관 간 기능 분담 및 연계, 환자이송 및 의뢰체계 수립을 권고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9년 전국적인 환자의뢰제도가 실시되다, 1998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진료권을 폐지한 바 있으며, 몇 차례 정부 주도의 제도개선을 논의하다 결론을 짓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본 고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대만의 정책적 시도를 살펴보았다.
대만의 가정의사제도 시범사업의 배경은 의료자원의 잘못된 분배와 배치, 일차의료 제공자 부족이 그 시작이었으며, 1995년 전민건강보험제도 시행 후에는 병원급 의료기관과 의원급 의료기관의 외래 진료에 대한 경쟁, 총액계약제까지 시행되면서부터 예산 배분을 위한 경쟁까지 더해지게 되었다.
이후 SARS의 영향으로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일차의료 역할을 강화하고 전체 의료비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정의사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2003년 기획 단계부터 포함하면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정의사제도는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고 그 평가 역시 연구마다 달라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대만의 연구결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에는 환자의 의료이용 변화 유인을 위한 장치, 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맞는 유인을 위한 장치, 적절한 지역단위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