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중심 질병 구조 변화 대응·건강불평등 개선 지름길
일차의료 의뢰-되의뢰체계 구축 …새 서비스·지불 모형 개발
일차의료 신뢰 제고 정부 지원…"가치 있는 곳에 재정 투입"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을 위해 만성질환관리 중심 일차의료 강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또 주치의제도 기반 아래 일차의료 의뢰-되의뢰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보건기관은 소생활권별 건강생활지원센터로 기능을 개편해 일차의료기관을 지원하며 포괄적인 건강기능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병상 총량 관리를 통한 병상 수급 조정 기능을 확보하고 소규모 병원급 의료기관은 구조 조정을 통해 전문병원·재활병원 등으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향으로는 '규제'보다는 '지원'을 기반으로 하며, 각종 정부 주도 시범사업에 민간 주도 영역을 확대하고 일률적 적용보다는 성공 사례 중심 개편이 제시됐다. 미래를 위한 혁신적 의료전달체계 개선 전략으로는 새로운 서비스 전달 및 지불 모형 개발 필요성도 지적됐다.
대한가정의학회와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구갑·가정의학과 전문의)은 12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주제로 일차의료포럼을 열고 보건의료 혁신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포럼의 논제는 일차의료 강화에 모아졌다.
이용빈 의원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대형병원 쏠림, 의료쇼핑 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기능과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 지역간 의료 격차와 의료 불균형, 소득 수준에 따른 건강 불평등 문제를 풀기 위해 의료 안전망 재정비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시급하다"라며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돌봄 의존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누구나 차별과 배제 없이 기본적인 건강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일차의료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 의료가 제대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우성 가정의학회 이사장은 "최근 중증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이 보건의료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암·심장·뇌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중요하지만 흡연하는 환자를 금연시키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치료를 잘 해서 수술할 환자를 줄이는 실력있는 일차진료 의사도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일차의료 강화는 국민연금 개혁 측면에서도 필수 과제다. 국민도 어렵고 일차의료계가가 힘들고 가정의학 역시 위기인 상황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일차의료의 주춧돌을 쌓아가는 대장정을 국회와 함께 시작한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첫 발제를 맡은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는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고령화, 저출산, 인구 절벽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현 의료전달체계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만성질환 중심 질병 구조가 변화에 대응하고 건강 불평등 심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 강화를 통한 보건의료체계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보건의료체계의 비효율 측면도 되짚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급성기병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대형병원 병상 증가뿐만 아니라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소규모 병원 병상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소규모 병원의 과잉공급은 의원과 병원의 기능 재정립을 어렵게 만들고 의료기관에 대한 적정수가 책정 역시 힘들어진다. 적정 병상 규모 병원의 서비스 생산비용을 기준으로 수가 책정이 이뤄지면 소규모 병원의 손실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의료취약지에서는 보건의료 인력부족이 심화되고 중등도 이상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전제조건으로는 만성질환관리 중심 일차의료 강화, 주치의 기반 포괄적 건강관리 필요성, 일차의료 기반 의뢰-되의뢰 체계 구축, 일차의료 지원 중심 지역보건기관 기능 개편 등이 제안됐다.
박은철 연세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사람중심 지역사회 기반 통합 보건복지'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 혁신 방향으로 꼽았다.
현 의료전달체계로는 초고령사회, 초저출산, 저성장, 세계화·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 한반도 통일, 치매 급증, 비감염성질환 시대, 보장성 강화, 노인 의료이용 급증 등 다양한 보건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사람중심 지역사회 기반 통합 보건복지' 구현을 위해서는 건강보험·의료급여·노인장기요양보험·산재보험 등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자원의 연계를 강화하고, 국민의 건강결정권 보호·정신건강 제고와 자살 예방·만성질환 지속 관리·환경 질환 및 공중보건 위기 대응 등을 통한 국민건강 향상을 도모하며, 의료기관 역할 정립·의료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보건의료 인력 수급 및 교육·국민 필요에 따른 맞춤형 진료/돌봄 등을 통해 보건의료 수월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달체계 개선 전략으로는 '규제'보다는 '지원'을 중심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현재 진행중인 보건의료 관련 44개 정부 주도 시범사업에 더해 민간 주도 시범사업을 확대하며, 시범사업 결과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보다 성공 사례 중심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새로운 서비스 전달 및 지불모형 개발도 제안됐다. ▲건강증진-일차의료 통합형 ▲건강증진-일차의료-요양 통합형 ▲일차의료-이차의료 통합형 ▲급성 입원진료-아급성 입원진료-재가의료 통합형 ▲대상자 중심 전체 의료 통합형 ▲대상자 중심 전체의료와 요양 통합형 등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박은철 교수는 "의료전달체계는 의료 수요에 따라 의료서비스가 전달되는 조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라며 "소규모 의료기관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 고가의 의료장비를 보유하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다가오는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 준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 중심 지역사회 기반 통합 보건복지가 혁신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에서도 일차의료의 중요성이 화두였다.
토론에는 강재헌 성균관의대 교수(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차기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이상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 정명관 정가정의원장 등이 참여했다.
강재헌 교수는 "진짜 필수의료는 일차의료다. 일차의료가 강화되면 중증 질환이 줄어든다. 현재 대책은 나중에 발생한 큰 질환에 모아져 있다. 만성질환에 대한 진단율·치료율·복약률은 OECD 바닥권이다. 일차의료가 약하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형국이다. 치료에 편중된 건강보험 재정을 예방으로 옮겨야 한다. 일차의료기관에서 주치의에 의해 이뤄지는 예방교육 등에 급여가 이뤄져야 한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은 국민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일차의료에 대한 신뢰 제고에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수련과정의 전공의들에게 일차진료 역량을 키우는 커리큘럼에 대한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 전달체계 개선은 규제만으로는 안 된다.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시범사업이 수행됐지만 환자 밀어내기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환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돼야 한다. 환자 발길을 돌리게 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일차기관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도가 필요하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전달체계 개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먼저 등록제다. 환자가 등록하면 일차의료기관에 수가를 지급한다. 또 하나는 케어 코디네이터 도입이다. 여러 연구에서 다학제 팀 인력 구성의 필요성이 확인됐다. 실제로 케어 코디네이터를 상근 직원으로 고용하는 곳은 많지 않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분절적인 시범사업도 개선해야 한다. 통합해서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어떤 형태든 혁신적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서비스·지불 모형도 개발해야 한다. 건보공단은 내년 예산에 '모델클리닉' 개발 연구 반영을 추진 중이다. 일차의료 혁신 모형에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정수 사무총장은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의료전달체계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다. 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책 제안을 통해 주치의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국민 건강권 확보와 의료서비스 질 담보를 위해 의료소비자 스스로 일차의료기관을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 중심, 환자 중심, 의료소비자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일차의료기관을 필요에 의해 찾아갈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건강보험 체계가 지속가능하려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의료소비자 역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는 일차의료 강화와도 연계된다. 선언적 제언에 머무르지 말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호 기획부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나고 있고, 재정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2012∼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대수명은 1.8년 늘었는데, 건강수명은 오히려 1.3년 줄었다. 시급한 문제는 질환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서 장기요양보험으로 넘어가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치매·낙상으로 인한 골절 환자가 80% 이상이다. 만성질환 관리가 제대도 되지 않고 있다. 본인부담금 때문에 마음놓고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가치 있는 곳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요체는 동네의원 활성화다. 동네의원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국민이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에도 의료가 빠져 있어서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동네의원 밖에 없다. 보험재정 문제가 심각하지만 가치 있는 부분에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일차의료에 대한 투자가 정답이다"고 호소했다.
정명관 원장은 "환자들이 자신의 주치의를 갖도록 의료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의원급에는 안과·정신건강의학과 등 몇몇 전문과를 제외하고는 기능적 일차진료의사(General Physician)가 근무하고, 단과 전문의들은 병원급 이상에서 근무하며 주치의가 의뢰한 환자를 진료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에 필요한 기능적 일차의료 의사 숫자는 3∼5만명이다. 가정의학과·내과·소아청소년과·일반의 등을 모두 합해도 1만명 정도다. 기능적 일차진료의사는 3만명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 이렇게하면 일차의료기관의 진료시간 확보와 진료 질 유지도 가능해진다. 또 건강검진 효율성과 질 향상을 위해 해마다 주치의와 상담후 암 검진 등 필요한 사항은 주치의가 의뢰해 병원급 전문의가 수행하게 해야 한다. 건강검진 결과는 주치의에게 회송해 후속조치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