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특집] 현행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 및 개선방안 모색(3)
올해는 새정부의 출범과 미래 신종감염병 대응체계 논의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보건의료 분야의 거버넌스 개선과 더불어, 해묵은 난제의 해결방안 모색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계간 의료정책포럼> 2022년 연중 특집 세션의 주제로 '의료전달체계'를 선정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종합적인 시각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계간 의료정책포험>에 실린 특집 원고를 게재한다.
[의협신문]은 첫 번째 '현행 의료전달체계, 의료기과 기능의 현황 및 문제점' 세션, '의료전달체계의 현황과 외국의 경험' 두 번째 세션을 소개한데 이어, 마지막으로 '현행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 및 개선방안 모색' 세션을 소개한다.
<글싣는 순서>
1. 더 나은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그간의 노력과 나아갈 방향
-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2. 초고령사회와 의료돌봄 개혁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3. 영국의 새로운 의료시스템 구조: 통합의료시스템(Integrated Care System, ICSs)
- 오영인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과 함께 행정구역과 생활권을 반영한 진료권을 설정했다. 그러나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의료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면서 1998년에 진료권 개념(의료보험증에 표시된 중진료권(138개, 1998 기준) 內 병·의원에서 진료 받도록 하고, 다른 진료권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보험자의 승인을 받도록 했던 제도)을 폐지하게 되었다.
진료권 폐지 이후 의료접근성은 높아졌으나, 제약 없는 의료 이용으로 상급종합병원과 수도권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가속화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환자는 많은 진료비를 지불하면서도 '3분 진료'로 상징되는 불충분한 진료와 상담을 받았으며,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희귀난치질환 치료와 연구·교육에 쏟아야 할 역량을 외래 경증질환 진료로 분산하게 되었다.
한편, 지역의 병·의원은 대형병원으로 이동한 환자 대신, 비급여 환자에 집중하며 진료수익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이 왜곡된 의료행태는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했고, 가계 의료비 과다 지출과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야기해 왔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는 우리나라 의료체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로, 반드시 해결이 필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의 모습
의료전달체계란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환자가 적정 의료서비스를 적정 시기에 적합한 기관에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의료체계를 말한다.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합리적인 의료전달체계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공통적으로 내포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리라 예상한다.
첫째, 각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질환과 상태에 맞는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중증환자가 적시에 대형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워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동네 의료기관에서 지속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여 경증질환이 악화되는 등 의료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되는 상황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감기에 걸리거나,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계속 이용해 오던 의료기관의 단골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는 편이 현명하다.
관절·척추 등 특정질환에 대한 진료가 필요하다면 이를 집중 진료할 수 있는 인근의 전문병원을 찾아가고, 암·희귀질환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는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질환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적시의 적정 치료에 도움이 된다.
둘째, 어느 지역에 살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충분하고 질 높은 중증질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증환자가 KTX를 타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가지 않더라도 지역의 괜찮은 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지역 완결적 의료제공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골든타임 내에 신속한 이송·치료가 필요한 응급·심뇌·외상 등 필수의료는 지역 내에서 의료서비스 이용을 해결하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효과적이다.
셋째, 의료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이루어지며, 지속가능한 재정 기반이 확립되어야 한다.
지역과 질환 등을 고려하여 의료자원의 공급이 이루어지도록 의료인력과 병상, 장비의 적정 배치가 필요하다. 의료인력이 지역 의료기관에서 자부심과 만족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의료를 지지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합리적인 의료 이용과 재정지출 효율화가 절실하다.
■ 더 나은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그간의 노력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메르스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메르스를 대응하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 '의료관련감염대책 협의체'를 운영했다. 동 협의체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과다 이용을 개선하고 올바른 의료이용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하였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2016년 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를 운영하며 의료전달체계 개편 전략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비록 의료단체 간 이견 발생으로 권고문 채택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의료법' 상의 의료기관 종별 구분과는 구별된, '기능 중심 의료기관(1차-2차-3차)'의 도입이 제안되었다.
2017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발표 이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의료이용 부담이 감소하면서 질병의 중증도를 고려하지 않고,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의료계, 국회, 언론 등에서도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요구가 계속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며, 2019년 9월 4일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하였다.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체계 전반의 점검과 개편이 필요하나, 우선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에 맞지 않는 환자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단기 대책부터 수립하였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은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을 해결하는데 방점을 두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위주로 충실히 진료할 수 있도록 평가와 보상체계를 개선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진료는 유리하게, 경증 진료는 불리하도록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과 수가를 개선하였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중 '입원환자 중 중증환자(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의 최소기준을 21%에서 30%로 상향하는 한편, '입원환자 중 경증환자(단순진료질병군) 비율'의 최대기준은 16%에서 14%로 하향하였다.
이와 함께,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경증질환(105개) 진료는 의료질평가 수가 산정에서 제외하고, 종별가산율 적용 또한 배제하였다.
둘째, 환자가 적정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뢰 제도를 내실화하고, 경증환자와 중증치료 이후 관리 중인 환자의 지역 병·의원 회송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그간 시범 운영 중이던 의뢰·회송 중계시스템을 모든 상급종합병원 의뢰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했으며, 시스템을 이용한 의뢰에만 수가를 적용하도록 개선했다.
또한, 내실 있는 환자 의뢰가 이루어지도록 환자의 진료정보와 영상정보가 교류되는 경우, 단순 의뢰 행위보다 높은 수가를 적용하였다. 시범 수가였던 상급종합병원 회송료를 정규 수가로 전환하고, 진료협력센터의 전담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수가 수준을 차등화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셋째, 환자의 적정 의료이용을 유도하고, 지역 의료해결 역량을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경증환자의 외래 진료비 부담금액이 수가 조정으로 감소하지 않도록 기존 60%이던 환자부담 비율을 100%로 조정했다.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외래환자에게 안내문을 발송해 올바른 의료이용을 유도하고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활동도 확대했다. 아울러 지역에서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할 수 있는 의료기관 육성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 발표 이후,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 진료에 보다 많은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는 등 의료현장의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또한,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를 감축하고 중증진료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방안을 도입해 의료전달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이 2023년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수술 전후 교육상담 시범사업' 등 의원급 일차의료를 확충·강화하는 수가 시범사업도 지속 개선 중이다.
이와 같은 시범사업들이 의료현장의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예상한다.
■ 나가며 - 남은 숙제와 나아갈 방향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만으로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를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책 명칭에 '단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대책만으로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다 근본적인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각 지역에 진료역량이 뛰어난 우수병원 적극 육성 ▲공공의료 강화와 연계된 의료전달체계 구축 ▲올바른 의료전달체계에 부합하는 보상체계와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을 좀 더 구체화하고 의료전달체계의 중장기 개편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선 TF'를 2019년 1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운영하였으며, 이후 '보건의료발전협의체'를 통해 논의를 이어왔다.
현재 ▲환자질환·상태에 따른 의료기관별 중점 기능 강화 및 이에 맞는 보상체계 개편 ▲일차의료기관 서비스 강화 방안 마련 ▲지역 중심의 진료 네트워크 구축 ▲환자가 신뢰하는 의료이용체계 확립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그간의 문제 제기와 검토 내용을 종합하여 효과적인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이 포함된 '보건의료 발전계획(2024∼2028)'을 수립할 계획이다. 의료전달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다각적인 방안을 고민하며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작동될 효과적인 개선방안을 속도감 있게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보건의료 철의 삼각(Iron Triangle of Healthcare)'의 3가지 요소인, ▲의료질 ▲의료비용 ▲의료접근성이 최상의 균형점에 놓인 상태에서, 최적의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