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담 및 각종 규제·의무 강화 속 'ESG 기준' 부담으로 작용
의료기관 인증제도 자체에 대한 기피·불신 야기…신중 검토 필요
불합리 규제보다 중복된 인증항목 줄이는 등 인증기준 개편 시급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의료기관 인증 기준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포함시키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대한의사협회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요소를 의료기관에 적용하면 불합리한 규제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해 12월 23일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의료기관 인증 기준에 ESG(환경 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 Governance)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한정애 의원은 "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윤리적이고 투명한 경영 방식이 기업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ESG 경영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의료기관에 대해서도 기존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ESG를 고려한 의료기관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의협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경영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의료기관 인증 기준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협은 ESG와 같은 윤리적이고 투명한 경영 방식이 기업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으로써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해하나, ESG의 요소를 의료기관에까지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측면이 크고, 의료기관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협은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요소이며, 기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재무적인 정량 지표뿐만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질적인 가치평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늘어남에 따라 ESG와 같은 사회적 책임이 중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무리 사회적으로 ESG에 대한 부분이 확대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주로 영리기업에게 해당되는 개념이고, 구체적 기준이 아닌 ESG를 고려하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으며, 심지어 환자 치료라는 의료기관 본연의 역할, 특히 상급종합병원 지정이나 인증제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의료기관 운영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사항이 아닌 ESG를 의료법에 명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짚었다.
특히 "의료법에서는 의사나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상업적인 투자를 목적으로 한 출자를 금지하는 등 영리목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의료기관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이렇듯 의료가 가지는 특성과 우리나라 의료체계 및 민간의료기관의 열악한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기관에 ESG요소까지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과도하고 무리한 요구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업 분야에 대한 도입도 초보적인 수준임을 감안하면 의료기관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또 "의료행위는 환자에 대한 치료 및 건강 회복을 위한 선의의 행위인데 이러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충분한 지원보다 오히려 행정 부담이나 각종 규제 및 의무를 지우는 것이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ESG 기준들이 불합리한 규제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의료기관 인증 기준에 반영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의협은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현재도 높은 인증 기준과 인증비용, 인센티브 부족 등으로 인해 중소병원 참여율이 현저히 낮고, 정부는 의료기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단계별·분야별 인증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등 여러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의료기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을 추가할 경우 저조한 참여율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인증제도 자체에 대해 기피나 불신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료기관 인증제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 중심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규제를 위한 제도 강화보다는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높은 인증기준을 완화하고 중복된 인증항목을 줄이는 등 인증기준을 개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인증 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러한 지원방안부터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