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판결, 사법체계 후진성 극명하게 드러내

한의사 초음파 판결, 사법체계 후진성 극명하게 드러내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1.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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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힘은 끊임없는 '검증'…의과학적 사고 배제 상상력으로 단정
법 최종 판단권자 입장 넘어 입법부 역할 침범…사법적극주의 신중해야 
구체적 사실관계 토대 법리적 판단 없어…이원적 의료체계 변화 고민할 때

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 토론회가 1월 17일 고려대 미디어관에서 열렸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 토론회가 1월 17일 고려대 미디어관에서 열렸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의협신문

"의료인의 면허범위 관련 사법부의 태도는 법률 해석에 대한 최종적 판단권자의 입장을 넘어 입법부의 역할을 침범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장욱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법학박사) 

"위험하다고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유사 사건을 기소하는 데 어려운 시그널을 줬다.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가 늘 수 있다."(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판결이다. 검증과 의과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법원이 상상력에 의존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단정했다."(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변호사)

법률 전문가들도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사용 판결에 대해 비판적 인식이 주류를 이뤘다. "역대 대법원 판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진실을 호도한 굉장히 부끄러운 판결"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 법조계 "파기환송심 대응으로 공소장 변경 통한 재심리" 제안

파기환송심 대응 방법으로는 공소장 변경을 통한 재심리를 제안했다. 해당 사건의 공소 사실에 초음파기기 판독방법이 현대의학적 방법이라는 부분이 포함돼 있지 않고, 초음파기기를 쓴 것 자체에 대해서만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 의사·한의사 면허범위의 중첩적인 확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빚어진 잘못된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 토론회가 1월 17일 고려대 미디어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법적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살피는 자리였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의료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감정적 대응으로는 보다 나은 결말을 보기 힘들다. 법적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료계의 견해가 합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라며 "법조계에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앞으로도 공동 관심사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장욱 교수 "국가 기관이 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게 타당"

장욱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법학박사)는 '의료인 면허 관련 판례 분석을 통해 본 사법부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발제에서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의료법 등 의료인의 업무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의료인의 술기 역시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의료인의 종별 업무 범위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입법부·사법부·행정부 등 국가 기관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가 기관의 개입은 해당 의료행위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고려하면서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보호 및 보건 증진에 도움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또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주어진 역할과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개입해야 한다.

이번 판결을 바로 이 원칙을 벗어났다는 판단이다. 

장욱 교수는 "최근 의료인의 면허 범위와 관련된 사법부의 태도는 법률 해석에 대한 최종 판단권자로서의 입장을 넘어 입법부의 역할을 침범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라며 "어떤 법률이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합리적인 해법의 범위 안에 속한다면 사법부는 그보다 나은 해법이 있다는 이유로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법부는 법적 문제를 판단하는 데 전문성이 있는 것이지 정책적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사안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 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이다. 

장욱 교수는 "현재의 의료체계 내지 의료인의 종별 면허에 대한 규정이 잘못돼 있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입법부의 법률 제정이나 법률 개정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라며 "사법부가 법률의 문언적 의미를 넘어 법률의 내용을 형해화시킬 정도로 확장 해석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 이동진 교수 "장기적으로 검증 안 된 의료행위 늘 수도…별도 대책 필요"

두 번째 발제는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판사 역임)가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 법 해석방법의 관점에서'를 주제로 이어갔다.

의료인의 면허범위에 대한 법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의료인에 대한 면허는 고도의 재량을 인정하기 때문에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인의 범위에만 들어가면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의대·전공의수련 과정에서 배운 적인 없는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가 되지 않으며, 배운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는 아니라는 얘기다. 같은 기준을 한의사에게 적용하는 경우 한의학에 기초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동진 교수는 "무면허 의료행위는 그동안 한의사가 의사가 할 것으로 예정돼 있는 의료행위를 하거나 의사가 한의사가 할 것으로 예정돼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에 판단돼 왔다"라며 "그러나 이번 사건 공소사실에는 초음파 기기 판독이 현대의학적 방법이라는 부분이 포함돼 있지 않고, 초음파기기 쓴 것 자체에 대해 기소했다. 현대의학적 방법을 공소사실에 포함하는 게 무면허 의료행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위험하다는 사실만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율할 수 없고, 실제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있더라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동진 교수는 "의사는 과학적인 의료를 시행할 법적 의무가 없다. 사안에 따라 책임질 수 있고 품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무면허 의료행위는 아니다"라며 "같은 이유로 한의사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제3의 길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가 늘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동진 교수는 "진짜 문제는 장기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가 늘 수 있는데 소비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라며 "현행법으로는 이에 대한 대책이 많지 않다.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이 던진 또 하나의 문제"라고 맺었다.

■ 박형욱 교수 "검증과 의과학적 사고방식 배제...상상력 의존한 판결"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변호사)의 마지막 발제 '과학적 의료를 위한 사법적 판단의 정당성'를 통해 대법원 새롭게 제시한 판단 기준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번 판결로 사법체계의 후진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인식이다.  

박형욱 교수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환자에게 위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학문 범위 내에서 학문적 근거를 갖고 의료행위를 했는지를 묻는다"라며 "의료인 간 무면허 의료행위에 관한 법리를 구성할 때 이 위험성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의학의 힘은 검증에 있다는 판단이다.

박형욱 교수는 "현대의학은 스스로를 꾸준히 검증해 왔다. 대법원이 보조수단으로 명시한 현대적 의료기기보다 한의학적 진단으로 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지 검증할 것을 제안한다"라며 "한의학 진단으로 임신·당뇨병·자궁내막증 등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지 검증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증과 의과학적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상상력에 의존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이어갔다.

박형욱 교수는 "끊임없이 검증하고 개선해 나가는 현대의학과 그 수행자에 대해 검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의과학적 사고방식도 모르는 대법원이 상상력에 의존해 환자에게 도움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라며 "그 부작용은 오로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사법적극주의의 폐해도 지적했다.

박형욱 교수는 "이번 판결은 무모한 사법적극주의 단적인 사례다. 대법원이 사법적극주의 이념에 따라 사회를 선도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지만 책임도 져야 한다"라며 "대법원이 법리를 구성할 수 있지만, 그 법리의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는 검증이 일요하다. 만일 대법원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렸다고 판단한다면 대법원이 주도해 판결의 전제가 된 사실에 대해 검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 토론회에서 진행한 패널토론. 왼쪽부터 이한주 한국의료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span class='searchWord'>현두륜</span> 변호사,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  유화진 변호사, 임무영 변호사.
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 토론회에서 진행한 패널토론. 왼쪽부터 이한주 한국의료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현두륜 변호사,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 유화진 변호사, 임무영 변호사.

■ "환자가 입은 피해 내용 언급 없다...전문영역 침해한 사법판단 우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과 의미, 향후 전망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토론에는 이한주 한국의료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법학박사),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유화진 변호사(유화진법률사무소), 임무영 변호사(임무영법률사무소) 등이 참여했다. 

이한주 책임연구원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영역에서의 규제 완화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한주 책임연구원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네거티브규제 방식이 많이 나타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바로 초음파 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으로 할 수는 없다"라며 "한의학적 진찰법을 기본적으로 시행하면서 판정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초음파 기기를 사용토록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에는 동의하지만, 초음파기기 사용은 부가적 수단에 그쳐야 하고, 한의학적인 의료행위가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두륜 변호사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이원적 의료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두륜 변호사는 "가장 큰 문제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에 기초한 의료행위를 어떻게 구분해야 되는지 기준이 상당히 불명확해졌다. 기존에는 해당 의료행위의 학문적 기초를 기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제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 구분이 모호해졌다"라며 "현대의학-한의학 이원적 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법원의 판단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한계점에 다다렀다. 이원적 의료체계에 대한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그 단초가 됐다"고 평가했다. 

유화진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한 법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짚었다.

유화진 변호사는 "대법원이 정책적인 판결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점은 해당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법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라며 "이번 판결문 어디를 보더라도 환자가 입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같은 내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단지 논리적으로 초음파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주로 있고 한의사가 이렇게 사용했다고 주장하니까 변증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게 전부"라고 비판했다. 

의료에 대한 적극적인 사법판단은 전문영역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유화진 변호사는 "의료 분야에 사법부가 판단할 때는 자료가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사법부가 너무 적극적으로 의료영역에 대해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자칫 전문 영역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고, 이는 결국 국민의 건강권 보호에 역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무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진실을 호도한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파기환송심 대응 방안으로는 공소장 변경을 통한 재심리를 시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무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역대 대법원 판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진실을 호도한 굉장히 부끄러운 판결"이라며 "그러나 국민 사이에는 한의학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이 뿌리깊게 남아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방치해 왔다. 이 부분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소장 변경을 통한 대응방안도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가 검찰청 공판부에 진정서를 제출해 진정사건 처리과정에서 이번 판결의 문제점과 핵심에 대해 공판검사가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무영 변호사는 "공소장 변경은 가장 먼저 시도할 방안이다.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지면 일단 심리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심리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재판부에서 파기환송심 이전 대법원의 결론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보다 충실한 심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검찰이 항소심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증인 신문 등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패널토론을 마무하는 자리에서 좌장을 맡은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은 "법적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진료 행위를 감시하고, 관리해야 할 행정부는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면서 "환자의 안전은 그 사이에 누가 지켰나? 환자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라면서 뒷짐을 지고 있는 행정부의 소극행정에 회초리를 들었다. 

김소윤 회장은 "사법부의 판단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의사와 의사의 의료일원화를 논의하려면 논의 과정에 책임이 있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역할이 먼저라야 한다"며 "이것은 행정체계에 관한 문제다. 행정부의 역할에 관해서는 반드시 다시 한 번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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