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마음의 병?…시름 깊으면 병세도 악화

암도 마음의 병?…시름 깊으면 병세도 악화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2.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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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진단 시 '디스트레스-재발·사망률 상관관계' 규명
디스트레스 '매우 높음' 그룹, 재발·사망 위험 84% 증가
4기 환자 153%까지 큰 폭 상승…"디스트레스 초기부터 관리해야"

왼쪽부터 김희철·신정경 교수(대장항문외과), 조주희 교수(암교육센터), 강단비 교수(임상역학연구센터).
왼쪽부터 김희철·신정경 교수(대장항문외과), 조주희 교수(암교육센터), 강단비 교수(임상역학연구센터).

같은 병도 진단 때 시름이 깊으면 더 치명적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대장암센터 김희철·신정경 교수(대장항문외과), 조주희 교수(암교육센터), 강단비 교수(임상역학연구센터) 연구팀은 대장암 진단 때 환자의 '디스트레스(Distress)'가 높으면 재발 및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수술 분야 국제 권위지인 <미국외과학회지>(Annals of Surgery·IF = 13.787) 최근호에 발표했다.

수술 치료가 가능한 대장암 환자에서 진단 시 디스트레스와 재발 및 사망 사이의 연관성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스트레스란 암과 치료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통칭한다. 암 진단시 우울, 불안과 함께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암환자의 약 40%가 심각한 디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정신종양학회는 디스트레스를 혈압, 맥박, 호흡, 체온, 통증에 이어 6번째 신체 활력 징후로 정의하고, 모든 암환자에서 진단, 재발, 완화치료 시작 때마다 디스트레스를 측정·관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연구팀은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에서 2014년 7월∼2021년 7월 원발성 대장암을 진단받고, 근치적 수술까지 받은 환자 1362명을 대상으로 '진단 시 디스트레스와 재발 및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봤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에서 개발한 디스트레스 온도계와 체크 리스트를 이용해 환자들의 자기평가(Patient Reported Outcome·PRO)로 점수를 매겼다.

연구팀은 디스트레스 점수에 따라 4점 미만이면 낮은 그룹, 4점부터 7점까지 높은 그룹, 8점 이상부터 매우 높은 그룹으로 나누고, 대장암의 무진행생존율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 대상자들의 평균 디스트레스 점수는 5.1점으로, 미국종합암네트워크가 '주의' 지표인 4점을 훌쩍 넘어섰다. 

전체 환자의 61%가 디스트레스 수준이 '높음'에 해당됐고, 15%는 '매우 높음'으로 나타났다. 환자 10명 중 7명(4점 이상 76%)은 암 진단 때부터 디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암 진단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당혹스럽고 힘든 경험'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병의 재발이나 사망 건수를 종합했을 때 진단 시 디스트레스 유해성은 더욱 분명했다. 1000인년당 디스트레스 낮음 그룹은 재발 및 사망이 50건, 높음 그룹은 67.3건, 매우 높음 그룹은 81.3건으로 확인됐다. 

진단 시 디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병의 재발이나 사망 위험도 덩달아 커진 셈인데, 낮음 그룹을 기준 삼아 상대적 위험도를 통계적으로 계산했을 때 높음 그룹은 28%, 매우 높음 그룹은 84% 더 높았다. 

특히 대장암 4기처럼 병세가 깊은 경우에는 진단 시 디스트레스로 인한 위험도의 증가세도 더욱 가파랐다. 병의 재발이나 사망 위험이 진단 시 디스트레스가 낮음 그룹 보다 높음 그룹은 26%, 매우 높음 그룹의 경우 153%로 대폭 상승했다.

환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병으로 인한 두려움, 슬픔, 걱정과 같은 감정적 요소 이외에도 보험, 돈, 일, 육아 등 암 치료 후 뒤따라올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주로 꼽혔다. 디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이런 고통은 더욱 가중됐다.

김희철 교수는 "암 치료 성적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처음 암을 진단 받은 환자들은 암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고 이것이 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면서 "암 진단시 정서적인 문제 뿐 아니라, 직장문제, 자녀문제 등 여러 가지 실생활 관련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치료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단시부터 병의 진단과 함께 환자들의 치료 환경이 얼마나 준비됐는지 환자가 느끼는 디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이를 치료 전에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주희 교수는 "치료가 시작 되기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암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왔지만, 시간, 공간의 여러 가지 환경적인 제한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라며 "앞으로는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암진단 시 디스트레스를 중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에 애쓰겠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암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인적 암 통합 케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디스트레스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암 진단 시 환자의 디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원인에 따른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환자들의 어려움과 고민 해소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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