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끝까지 지켜야 하는 최고 가치…돌봄 '존중' 필요
'간병' 법적 지원·처우 개선·돌봄윤리교육 확대해야
이달 초 38년간 돌봐 온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60대 여성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검사는 10년을 구형했으나 재판에서 경감을 받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중증 장애환자를 끝없이 간병하는 일은 살인까지 생각하게 하는 극단적인 고통이라는 것이다.
'죽어야 끝이 나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간병 살인으로 우리나라에서 2006년부터 2018년 사이에 21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해에 16.4명, 한 달에 1.4명이다.
간병의 한계에 부딪혀 발생하는 간병 범죄는 고령화도 큰 원인을 차지한다. 우리보다 앞서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46건의 간병 살인이 발생했다. 매주 한 건씩 발생한 꼴이다.
노인이 병든 배우자를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를 고령의 부모가 돌보는 노장(老長)간병, 병든 부모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함께 돌봐야 하는 다중(多重)간병, 그리고 대체 간병인이 없는 독박 간병은 인간을 한계 상황까지 몰아간다.
기한 없이 장기간 이어지는 간병 스트레스는 수면 부족과 체력 저하를 가져오고 우울증으로 판단을 흐리게 한다. 간병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면 경제적 빈곤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심각한 경제적 빈곤은 피간병인의 치료 문제를 넘어 의식주라는 삶의 기본 요건을 침해한다. 사회적 교류가 단절되고 인간적인 삶이 박탈당하며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 더하여 치매 환자의 망상과 폭력, 만성 질환자의 폭언이나 인지 장애는 지친 간병인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우발적 살인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두터운 가족애에서 시작된 간병이 친족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끝나기에 간병 범죄는 더욱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65세 이상 노인 또는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사람은 등급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제한적이고(다섯 단계 중 1∼2 등급까지만), 대부분의 3∼4등급이 이용할 수 있는 재가 서비스는 일 최대 4시간 수준이다. 실상 24시간 관리가 필요한 치매 노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리고 온종일 돌봄이 필요한 65세 미만의 신체 활동을 못하는 뇌성마비나 발달 장애·중증 장애인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장애인을 위한 공적 돌봄 서비스 확대가 시급한 이유다.
간병으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간병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온 국민이 인지하고 시급히 제도적인 보완을 해야 한다.
첫째는 간병에 대한 법적 지원을 통해 간병인의 삶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미국은 2006년 '레스핏 케어(respite care)'를 통해 간병을 일시적으로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을 권리로 인정하였다. 레스핏 케어는 간병스태프를 파견받아 간병인이 병상을 떠나 수면과 휴식을 취하게 하는 제도다. 예약을 통해 야간이나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다. 병상을 일단 벗어나면 이성적으로 가족을 마주할 힘이 생겨 환자의 학대와 방임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영국도 2014년 간병관련법을 마련하여 간병인에게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일본은 2010년 케어러(carer) 지원 추진법안을 발의하며 사회에서 간병인을 지원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간병의 책임을 국가에 지우고 지방 공공단체에 지역 실정에 맞춘 제도를 요구하며 기업에는 종업원이 일과 간병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둘째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병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돌봄윤리 교육의 확대다. 요양원이나 돌봄 시설에 가족을 맘 편히 보낼 수 없는 것은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내 가족이 혹시 비윤리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고령인구의 돌봄 문제에 재정을 투입하고 윤리교육을 확대해 마음 놓을 수 있는 돌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지 손상으로 자신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라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만으로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 돌봄의 윤리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충분한 돌봄을 받으려면 돌봄 서비스 직군에 대한 철저한 자격관리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경제적 보상 없이 도덕적 요구를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는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여 간병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종래의 치료 중심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확장하여 돌봄으로 생명을 지켜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 최고의 가치임을 지켜내는 것이다.
살인죄의 평균 양형이 12.1년인 것에 비해 간병 살인은 절반 이하인 5.4년이다. 극단적 상황이라는 절박감과 그간의 희생이 감경 사유로 고려된 것이다. 간병인의 극한 상황을 동정한다고 하여 생명을 꺼뜨린 것이 조금이라도 타당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된다.
법원의 판단 역시 생명 경시 사상을 경계하고 있다. 동일한 간병 살인에 대해서도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의도가 있거나 심각하지 않은 신체적·경제적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일절 감경이 없다.
특히 고통을 호소하는 피간병인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 형태로 행하는 촉탁살인은 윤리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죽여달라고 요청을 해도 인간에게 나타나는 죽음의 충동은 거짓이다. 외부에서 오는 요인을 제거하면 사라지는 것이 죽음의 충동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속히 외적 요인을 제거해 생명의 충동을 지켜주어야 한다.
안타깝게 벌어진 간병 살인사건이 간병을 위한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간병인의 권리와 돌봄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모든 상황을 넘어서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간병인이 될 수 있다. 인간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와 끝없는 간병 피로로 절망한 가족을 함께 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