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 단국의대 교수 "사법체계 후진성 극명하게 드러내"
진단기기 잘못 사용 땐 치료기기보다 더 큰 위해 발생 우려
사법적극주의 개입해도 판결에는 책임 수반…검증 요구해야
"대법원 초음파 판결은 사법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참담한 마음이 앞선다."
끊임없이 검증하고 개선해 나가는 현대의학과 그 수행자에 대해 검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의과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법원이 상상력에 의존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단정한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가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 '상상으로 과학을 능멸하는 대법원 초음파 판결' 특별기고를 통해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판결을 강력 비판했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 사이의 업무 범위와 관련해서는 의료법에 개략적으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범위에 대한 다툼은 판례에 따라 정립돼 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결과적으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대한 기존 판단 기준을 폐기했다.
지금까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해당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해당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해 왔다.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단기준을 폐기하고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새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는 판단이다.
박형욱 교수는 "한의사의 업무 범위와 관련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를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하지 않는 한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보건위생상 위해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위해가 발생하는지 여부만을 살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판단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먼저 진단용 의료기기와 치료용 의료기기를 구별하고 진단용 의료기기에 대해서만 논리를 전개했다. 치료기기까지 한의사 업무범위로 인정했을 때 쏟아질 비판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박형욱 교수는 "진단기기를 잘못 사용하면 치료기기보다 환자에게 더 큰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의료법령에도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를 구별해 업무 범위를 허용할 수 있다는 논거가 전혀 없다"라며 "자의적으로 진단기기만을 떼어내어 한의사가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는 법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법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통박했다.
한의사가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주된 진단을 하고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논리 전개의 문제점도 짚었다.
박형욱 교수는 "대법원의 논리는 근거 없는 상상"이라며 "한의학적 진단이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단보다 더 정확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한의학적 진단과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단 사이의 관계도 전혀 입증된 바 없다"고 단언했다.
주된 진단은 보조 진단보다 환자 상태를 더 정확히 판단하고 치료효과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주된 진단과 보조 진단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규명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2년여에 걸쳐 68회나 초음파를 시행하고도 자궁내막암을 진단하지 못한 한의사의 행위에 대해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도 비판을 이어갔다.
박형욱 교수는 "암을 제때 진단치 못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될 수 있는 데도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환자에게 발생한 위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라며 "대법원의 눈 감고 귀 막은 논리가 놀라울 뿐"이라고 허탈해했다.
사법적극주의 이념에 따라 사회를 선도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지만, 판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박형욱 교수는 "의학계는, 우리 사회는 대법원에 대해 판결에 책임을 지는 검증을 요구해야 한다"라며 "끊임없이 검증하고 개선해 나가는 현대의학과 그 수행자에 대해 검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의과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법원이 상상력에 의존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단정한 판결이다. 부작용은 오로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