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경학연맹 "뇌파검사·파킨슨병 진단, 신경학 전문가만 가능"
국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뇌파검사로 파킨슨병 진단 못해"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 위해 법적 대응…한의사 불법행위 감독해야"
대한의사협회는 10일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부의 철저한 감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협은 세계신경학연맹(World Federation of Neurology), 국제 파킨스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International Parkinson and Movement Disorder Society), 아시아 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Asian and Oceanian Association of Neurology) 등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의견서를 제시하며 "뇌파계는 한의학적 원리와 관련이 없고,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한의사 뇌파계 사건은 2010년에 발생했다. 한의사 A씨는 2010년 일간지에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광고를 실었다.
관할 서초구보건소는 2011년 1월 "한의사 A씨가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업무정지 3개월과 경고 처분을 시행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4월 한의사 A씨에게 한의사 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한의사 A씨는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뇌파계를 이용한 파킨슨병·치매 진단은 의료법상 허가된 '한방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보건복지부을 손을 들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소송비용 중 일부를 피고인 보건복지부 측이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현재 대법원은 2016년 9월 접수된 한의사 뇌파계 사용 사건과 관련, 2022년 10월 전원합의기일 심리를 지정하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의협은 "뇌파계는 전기생리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뇌의 전기적인 활동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서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한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뇌파계는 1924년 독일의 생리학자이며 신경정신과의사인 한스베르거가 뇌의 전기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의 하나인 뇌전도(EEG) 기법을 1924년에 발명한 것으로, 이후 수많은 의사들의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쓰이고 있다.
의협은 "뇌파계는 현대의학에서 활용하기 위해 개발·제작한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파킨슨병은 한의계에 존재하지 않는 질병명"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면서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또는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뇌파계 연구와 활용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세계 전문의학회에서 보낸 의견서도 함께 제시했다.
세계신경학연맹(World Federation of Neurology)은 "뇌파(EEG)검사는 신경학적인 전문 지식뿐 아니라 뇌파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해석 등을 요하며, 환자 또한 뇌파검사가 신경과전문의 등 전문가에 의해서만 수행·해석된다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 세계 과학계에서 엄격하게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국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International Parkinson and Movement Disorder Society)는 "파킨슨병 진단을 위한 글로벌 표준(MDS-PD 기준)은 10년 이상 파킨슨병을 진단해온 신경과 전문의들에 의해 검증되어 자리매김했다. 해당 기준을 적용해 서동·휴식떨림·강직 등을 기반으로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경학에 대한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다. 뇌파 검사는 그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파킨슨병 진단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Asian and Oceanian Association of Neurology, AOAN)도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려면 적절한 훈련을 받은 신경과 전문의의 세심한 진단과 정확한 신경학적 검사가 필요하다"며 "현재 파킨슨병과 치매의 전 세계 표준 진단기준에 따르면, 뇌파검사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현행 의료법 제2조에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명시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는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의사들이 의과 의료기기, 특히 환자의 건강과 직결될 수 있는 뇌파계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는 의협은 이를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며 "뇌파계 사용과 같은 한의사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불법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비롯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행정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에는 "한방 무면허의료행위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