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곳에 살아 있다는 기척으로
조그맣게 일렁이는 햇빛에도
희미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하나도 슬프지 않게 이파리를 흔들어 대는
깊은 산 속 말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산행 초입에 오다가다 마주칠 수 있는
동네 어귀 산책길도 괜찮고
근린공원 목책 곁에도 상관없어
이제 봉분은 필요치 않아
표지석 하나 달랑 놓여 있는 평장도 좋지만
싱싱한 그림자는 새들에게 다 내어 주고
푸른 기억의 나무 명찰을 달고 있는 영생목
뾰족한 이파리로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 보다
사시사철 나무 향기 진득한 잣나무 보다
낮은 울타리 명랑한 수종의 활엽수가 제격이야
조그만 바람에도 마음껏 휘어질 수 있는
물푸레나무 가벼운 목례처럼
아늑한 이파리의 고독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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