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은 소청과 의사…90% 피부미용 등 '노키즈존'으로 떠날 것"
소청과의사회 "전담기구도 기대 힘들어…진료 전환 돕는 센터 준비 중"
"정부의 유례 없는 소아의료 개선 의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목소리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사명감만으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내몰렸다며 국민들에게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보건복지부의 현 정책으로는 소청과에 희망을 심어주기엔 역부족이며,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소아 진료 현장을 떠나 피부미용 등 다른 진료과로 이탈하는 현상을 더는 막을 수 없다는 것.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3월 29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50여명의 소청과 전문의가 모인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한없이 참담한 심정이다. 우리는 아픈 아이들을 낫게 해주는 걸 보람으로 여겨 평생의 업으로 살아가려 한 것뿐인데, 소청과의사들에게 이제는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 회장은 "지금 이 순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조차 우리 아이들이 숨져가고, 오늘 밤에도 전국의 우리 아이들은 치료받을 곳이 없어 길바닥을 헤매고 있다. 대통령이 소아의료를 최우선 책무로 두고 지원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보건복지부의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은 미흡하고, 기획재정부에서도 소청과 인프라는 아이들 생명에 직결된 문제라는 호소를 한 귀로 흘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특히 소아 예방접종에 대해 "시중에 나오는 백신중 가장 싸고, 아프고, 불편한 백신을 우리 아이들이 맞고 있다"며 "질병관리청은 소청과의 유일한 비급여였던 예방접종을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시켜 없앴고, 시행비를 14년째 동결 혹은 100원 단위로 올리는 등 실질적으로 깎고 있다.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도 기존의 40%만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날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언급하며 "저출산은 우리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문제라는 대통령의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아이들 의료 인프라조차 없는 상황에서 저출산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인건비와 물가가 상승하는 와중에도,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8%가 줄었다. 지난 5년간 소청과의원 662곳이 폐업했고,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동남아 국가의 1/10 수준으로 30년째 동결 중"이라고 호소했다.
"소청과 레지던트를 하며 1년 내내 한숨을 제대로 못 자고, 한 달에 두 번꼴로 집에 돌아가 아이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도, 아픈 아이들을 낫게 해 잘 자라나는 것을 볼 때면 '소청과 전문의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뿌듯해했다"고 돌이킨 임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를 유지하고 싶어도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께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말씀이지만, 소청과 의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없게 돼 한없이 미안하다는 작별 인사를 드리려 한다. 그동안 한없이 반갑고, 보람 있고, 기쁘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임 회장은 "의사회 내 여론으로 90%가량이 소아 진료가 아닌 요양병원, 내과, 통증클리닉, 피부미용 등으로 전환을 원하고 있거나,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통계는 추후 설문조사해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소청과의사회에서는 회원들 요구에 따라 노키즈존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하는 센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소청과가 1년 중 그나마 바쁜 때인 3~4월 2개월간 준비기간을 거쳐, 5~9월 비수기에 맞춰 개소할 계획"이라며 "이미 소청과를 진료하다가 타 진료로 전환한 전문의들이 수두룩하기에 이들을 강사로 초빙할 가능성이 높고, 많은 분들을 만나 봤다. 훈련 기간은 1년 정도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되고, 회원 수요는 최소 과반수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노키즈존 진료로 전환한 의사들에게 '소청과의 사정이 좋아지면 돌아올 생각이 있는지'를 묻자,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 진료를 바꾸고 나서야 이제껏 얼마나 육체적·정신적 노동이 시달렸는지를 깨달았다'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라고 덧붙였다.
임 회장은 '추후 정책 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이미 너무 많은 소청과 의사들이 진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문과를 취득하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나은 현실"이라며 "10여년간 보건복지부·기재부·질병청과 대화를 했으나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지 않고 엉터리 대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수없이 호소해왔지만 전담부서조차 없어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도루묵이 됐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정책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 가장 시급한지'를 묻자 임 회장은 "소청과 의료 인프라를 담당하는 긴급협의기구를 발족하고, 국회에서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과 예산을 긴급히 집행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껏 소청과의 호소가 법안 제정 및 시행으로 이어진 적이 없다. 이제는 소청과처럼 작은 과의 목소리를 반영해줄 것이란 기대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소아의료의 붕괴가 뒤늦게라도 유례없는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진료 현장을 지키며 조금만 더 기대해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추후 정책의 귀추가 주목된다.
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은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늘 소청과의사회의 기자회견에서 '폐과'라는 표현 등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어 우려되긴 하나, 심정만은 십분 공감한다"면서 "대통령의 지시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소아의료 개선에 적극 협조하려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화는 한 두 달 사이에 갑자기 일어날 수 없다. 이번 상반기를 두고 보면서 변화를 기대하고, 진료현장을 더 지켜보려 한다"고 밝혔다. [의협신문=김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