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조사·현지확인과 다른 '실태조사' 의미·대응 방안
개인 개설 의료기관 '투명한 거래 자료' 구비해야
법인, 특정인 좌지우지 않도록 '의사결정체계' 정비를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의료기관이라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들이 방문하여 요양급여비용 적정 여부에 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는 상황 만큼은 절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모범적으로 요양급여기준에 맞춰 진료를 하고 비용을 청구해왔다 하더라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진료로 바쁜 와중에 현지조사 담당자들이 요청하는 서류를 이것저것 마련하여 제출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12월 29일 의료법의 개정으로 새로운 유형의 조사가 등장했다. 의료법 제33조의 3에 근거한 '실태조사'가 그것이다.
최근 의료법 '실태조사' 규정에 따라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특히 의료법인의 경우 오랜 기간 모범적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했음에도 조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막상 조사 대상자들은 기존 현지조사와 차이를 알지 못한 채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현지조사와 동일한 기관에서 동일한 형식의 조사명령서와 제출서류 목록을 들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로 요양급여 실시와 청구가 적절했는지를 살피는 현지조사와 달리, 실태조사는 해당 의료기관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개설·운영하는 의료기관인지' 여부, 즉 '사무장병원' 해당 여부를 살피기 위해 실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시 외관은 현지조사와 유사할지라도 제출을 요청하는 서류의 목록과 조사대상 기간이 차이가 난다.
현지조사를 실시할 때에는 주로 최근 수년 간 행해진 요양급여에 대한 자료 제출만을 요구하는 반면, 실태조사 시에는 해당 의료기관이 개설된 이후의 모든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 설립한 지 수십 년이 된 의료기관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의료기관 개설 당시의 자료까지 요구하여 담당자들이 애를 먹는 사례가 있다.
개별 진료행위의 적정성만 살피는 현지조사와 달리, 사무장병원 여부를 살피는 실태조사는 해당 의료기관이 처음 생겨난 경위와 운영형태, 즉 존재 자체가 적절한지를 살피는 조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태조사는 현지조사와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개별 진료행위가 아무리 요양급여기준에 맞춰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는 실태조사 시에는 전혀 이점이 되지 않는다. 실태조사는 해당 진료행위로 인해 얻은 수익이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되었는지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수십 년을 모범적으로 진료해 오던 의료기관조차도 실태조사 대상기관으로 선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범적으로 진료를 해온 사정이나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정은 추후 사건 진행 과정에서 참작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수사기관과 법원이 속칭 '사무장병원'을 판단하는 기준은 진료행위가 적절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누가 해당 의료기관을 실질적·주도적으로 개설 및 운영하고 그 성과를 귀속 받았는지 여부이다. 따라서 조사 실시 기관은 의료기관 및 관련자들의 금전거래나 계약관계를 중심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하게 된다.
의료법인을 비롯한 비영리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들의 경우 법인과 관련자들의 거래 뿐 아니라 해당 법인의 의사결정이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도 주된 조사 대상이 된다. 의사 개인이 개설자가 되는 경우와 달리 실체가 없는 '법인'이 개설자가 된 상황이기에 이 때 의사결정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
법인의 경우 이사회가 구성되어 주요 의사결정이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이루어져야 하는바, 실태조사에서는 이사회가 어떻게 작동되어 왔는지, 혹시 이사의 구성이 편파적이어서 특정인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닌지까지 살핀다.
또한, 조사 실시 기관은 이미 의료기관의 주요 거래처나 개설자와 소속 직원들 간 특수관계를 파악하고 조사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실태조사 과정에서 혹시라도 조사 기관이 의혹을 가질 수 있는 거래에 대해 그 타당성을 충분히 소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 개인이 개설을 하여 운영 중인 의료기관의 경우 "설마 우리 의료기관이 실태조사 대상이 되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개설자인 의사의 자산상태에 비추어 다소 무리다 싶은 투자가 필요한 규모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 개설자 의사의 나이 또는 이력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진료과목을 실시하고 있는 경우는 물론, 병원경영지원회사(MSO)와의 거래가 활발한 경우 등 의사가 개설한 의료기관도 실태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비록 의사에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이 있으나, 의료기관을 운영하며 얻는 실질직인 이익이 의사가 아닌 비의료인에게 흘러갔다고 생각될 경우 이 역시 '사무장병원'으로 수사의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태조사도 현지조사와 마찬가지로 1주 이내의 기간을 두고 실시한다. 다만, 현지조사의 경우 부적절한 요양급여실시가 발견될 경우 조사기간 및 조사대상기간을 연장하고 조사 종료 전 위법사실을 확인하는 취지의 확인서에 날인을 요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반면(이 때 위법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확인서에 날인할 경우 추후 행정소송 등에서 이를 뒤집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이니 날인은 신중히 하여야 한다), 실태조사의 경우 제출된 자료만으로 곧바로 사무장병원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조사기관은 개설자와 문답형식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사항을 정리하고 조사를 일단 종료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제출자료를 분석한 후 그대로 조사를 종료할지, 수사기관에 사무장병원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를 의뢰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공식 조사 기간에 충분한 소명을 하지 못했다면 이 제출 자료 검토 기간 중이라도 의혹이 있을 만한 부분에 대한 소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 소명에 실패하여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또는 고발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 보건복지부와 공단은 의혹이 남아 있는 한 이를 고발해야 할 의무만 있을 뿐 구체적인 수사를 할 권한은 없지만 수사기관은 의료기관측의 해명을 충분히 듣고 관계자를 조사한 후 사무장병원 혐의가 없다고 인정하면 불기소처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사무장병원 혐의로 수사 중인 요양기관에 대하여 요양급여의 지급 보류 처분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하였기에 수사기관에서 해명하는 기간 중에 의료기관의 운영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었다(2018헌바433,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 등 위헌소원,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사무장병원으로 확인된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 사건).
무엇보다도 새로운 유형의 현지조사인 실태조사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의료기관의 운영을 신중히 해야 한다. 의사가 개설한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개인과 분리된 사업체라는 것을 전제로 모든 거래를 투명히 하고, 법인인 개설자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경우 특정인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하지 않도록 의사결정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