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치유의 시간

[신간] 치유의 시간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4.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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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M. 루드머러 지음/권복규 옮김/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펴냄/4만원

치유의 시간

20세기 미국 의학교육사를 관통하는 <치유의 시간>(원제: TIME TO HEAL)이 우리글로 출판됐다. 

저자인 케네스 M. 루드머러(Kenneth M. Ludmerer)는 하버드대학에서 역사·과학을 전공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의학사,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대학교에서 내과 교수와 생물·정역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의학교육사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제공하고, '관리의료'(Managed Care)라는 이름으로 의사의 학습과 진료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의 힘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전한다. 

미국 의학교육의 진화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역사에 집중한 이유는 늘 그렇듯 과거를 통해 미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들머리에서 "미국 의학교육과 진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이들에게 유용하도록 객관성과 균형을 유지했다. 과거는 불가피하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고,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라며 "그럼에도 과거는 미국 의학의 현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 역사 분석이 우리가 처한 현재의 딜레마를 조명해주고, 의료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을 안내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책 제목 '치유의 시간'에 담긴 뜻도 설명했다. 

좋은 의료를 위해서는 시간이 중요하고, 치유를 배우고, 치유를 가르치고, 치유의 예술을 실천하고, 새로운 치유의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관리의료시대에 좋은 의료와 치유를 위한 시간은 간신히 확보되고 있는데, 현재 미국 의료에서 일어나는 가장 걱정스런 변화라는 진단이다. 

저자는 "의사와 대중 모두 의학교육과 진료에 대해 깊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런 딜레마의 등장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탈출구를 시사해준다"라며 "우리의 병든 의학교육과 의료시스템이 여전히 뛰어나고, 구제가 가능할 때 이를 치유하기 위해 이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책의 번역은 권복규 이화의대 교수(의학교육학)가 맡았다. 

권복규 교수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현실에 빛을 비추어주고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의료계는 온갖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와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우리보다 먼저 그 병을 앓은-그리고 지금도 앓고 있는- 우리 의학이 모델로 삼은 선진국 의학교육의 병력을 아주 세심하고 확실하게 보여준다"라며 "그 통찰과 교훈은 어떤 의학교육도 의료제도와 해당 사회의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있다. 기본의학교육이 파행되는 이유는 만성적인 저수가 의료제도, 의료전달체계 붕괴, 민간 의료기관이 9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국가적 관행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교수들이 진료 압박과 병원 수익 증가에 내몰리는 나라에서 제대로된 임상교육과 전공의 교육은 가능할 수 없으며, 전공의를 힘들게 마쳐도 배운 것을 시술할 장소도 없는 나라에서 전공 불문하고 미용이나 성형으로 몰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냐는 토로다. 기본의학교육도, 졸업후 의학교육도 이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으며, 교육과정을 조금 손보고, 교수학습방법을 조금 새롭게 한다고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권복규 교수는 "이 책은 미국의 과거를 기술하고 있지만 현재와 미래의 젊은 의료인에게 드리고 싶다. 환자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 입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용감하고 굳건한 치유자로 서게 되기를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1년여에 걸친 독서모임이 책 번역에 자양분이 됐다. 홍성수 원장(연세이비인후과), 김애리 고려의대 교수(고려대구로병원 병리과), 서지영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홍영선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내과), 김영민 전문의(내과) 등이 참여해 돌아가면서 발제하고 함께 공부했다.

권복규 교수는 "공부 모임에 참여한 분들 모두 공동 역자로서 자격이 있다. 그 분들과 함께 의료계에 대한 고민과 충정을 나눌 수 있었다"라며 "직역과 성별, 나이를 넘어선 진정한 교류와 연대의 모습이 의료계의 미래에 희망의 작은 싹을 틔울 수 있음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치유의 시간> 출판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한의사협회와 의료정책연구소에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책은 533쪽 방대한 분량으로 모두 18장으로 구성됐다. 

▲의학교육 시스템의 형성 ▲세계대전 사이의 미국 의과대학 ▲기본 의학교육 ▲졸업후 의학교육의 등장 ▲교육병원 ▲아카데믹 메디컬센터와 일반 대중 ▲제2차 세계대전과 의학교육 ▲연구의 성장 ▲의료 서비스의 확대 ▲졸업후 의학교육의 성숙 ▲의대생이 잊혀지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그리고 의학교육 ▲시위와 인권운동 시대의 의학교육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카데믹 헬스센터: 외부의 압력 ▲아카데믹 헬스센터: 내부의 딜레마 ▲내부의 병폐 ▲비용억제 및 관리의료 시대의 의학교육 ▲제2차 혁명기(☎ 02-6350-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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