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한약·건강기능식품 복용 '간 손상' 기전 첫 규명

약물·한약·건강기능식품 복용 '간 손상' 기전 첫 규명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4.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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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배시현·성필수 가톨릭의대 교수팀, 특정 면역세포 확인
스테로이드 활용 치료방향 제시…독성 간염 치료 새 전기 마련
면역학 분야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Immunology' 최근호 발표

왼쪽부터 양현 교수·배시현 교수·성필수 교수.
왼쪽부터 가톨릭의대 양현·배시현·성필수 교수.

약물·한약·건강기능식품 등을 복용해 발생하는 독성 간염의 발병 기전이 처음으로 규명됐다. 스테로이드가 독성 간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새 치료 방향도 제시했다. 독성 간염 치료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가톨릭의대 양현(제1저자)·배시현(교신저자) 교수(은평성모병원 소화기내과)와 성필수 교수(교신저자·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2017년 1월∼2021년 6월 약물 복용에 따른 간수치 상승이나 간 기능 저하를 이유로 조직검사를 받은 5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간을 자극하는 면역세포의 발현 양상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다.

연구팀은 환자들로부터 얻은 간 조직 분석을 통해 독성 간염이 단순히 독성 물질을 원인으로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독성 물질 또는 그 대사 물질에 대해 특정한 면역세포들이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성 간염 발병의 주요 연관인자로 밝혀진 면역세포는 ▲CD8 양성 T세포 ▲단핵 식세포 등으로, 독성 간염 환자들의 간에서는 정상인의 간과 달리 이 두 가지 면역세포의 침윤이 풍부히 관찰됐으며, 침윤 정도가 간 손상 정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 독성 간염 환자의 간에서 관찰되는 T세포 및 단핵 식세포의 다양한 침윤 모습. 1∼4단계로 나뉘며 4단계로 갈수록 침윤의 정도가 심해진다.
■ 독성 간염 환자의 간에서 관찰되는 T세포 및 단핵 식세포의 다양한 침윤 모습. 1∼4단계로 나뉘며 4단계로 갈수록 침윤의 정도가 심해진다.

CD8 양성 T세포는 세포독성 T세포라고도 불리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종양세포를 파괴한다. 

단핵 식세포는 대식세포로 분화하기 전단계의 세포로, 분화되면 우리 몸에 침입한 외부 병원체 및 독성 물질을 포식작용으로 제거하거나 포식작용을 통해 T세포에게 전달한다. 

연구팀은 세포의 계통 및 분화·성숙·활성화 단계 등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최신 유세포 분석 기법을 이용해 활성화 단계에 있는 CD8 양성 T세포와 단핵 식세포들이 간 손상의 정도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두 세포에서 분비되는 작은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의 양 또한 손상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도 확인했다(그림 2).

■ 유세포 분석기법을 통해 독성 간염 환자의 간 조직에서 활성화(CD38+HLA-DR+)된 CD8 양성 T세포와 활성화(CD80+)된 단핵 식세포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 유세포 분석기법을 통해 독성 간염 환자의 간 조직에서 활성화(CD38+HLA-DR+)된 CD8 양성 T세포와 활성화(CD80+)된 단핵 식세포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새롭게 밝혀낸 독성 간염의 면역기전을 바탕으로 면역억제제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가 독성 간염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치료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총 53명의 연구 대상 환자 중에 50명(94.3%)이 독성 간염 완치까지 추적 관찰됐는데, 전체 환자 중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환자는 37명(69.8%)이었다. 이 환자들은 최소 7일에서 최장 107일까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으며 투여 중단 후 재발은 없었다. 환자들의 스테로이드 투여 기간은 중앙값을 기준으로 30일이었다(중앙값은 데이터를 작은 값부터 순서대로 나열할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값으로, 각 데이터 값의 편차가 큰 경우 중앙값은 평균값에 비해 자료를 대표하는 값으로 더 유용하다).

'약인성 간 손상'으로도 불리는 독성 간염은 약물이나 한약, 건강기능식품 등을 무분별하게 복용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간이 섭취한 약물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발생해 간 수치가 급격이 상승하거나 간 기능에 손상이 나타난다. 

독성 간염은 급성 간염과 마찬가지로 식욕부진, 오심과 구토, 피로감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 관절 통증, 피부 발진 등이 관찰되며 병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복수, 간성뇌증으로 이어진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독성 간염의 실제 유병률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없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매년 인구 10만 명당 12명의 환자가 독성 간염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기능식품을 비롯 이른바 몸에 좋다고 알려진 약물을 임의로 섭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게대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는 등 약물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증가하는 실정이다. 

연구를 주도한 양현 교수는 "약물 섭취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성 간염 환자의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면서 "이번 연구는 발병 기전을 파악해 특별한 치료법이 없던 독성 간염에서 스테로이드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성필수 교수는 "정확한 기전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독성 간염 분야에서 면역학적 기전을 밝혀낸 것은 환자 치료는 물론 독성 간염 환자의 유병률을 정확히 파악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시현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독성 간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의 협업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어 기쁘다"라며 "향후 독성 간염 환자의 치료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활성화된 CD8+T 세포 및 단핵 식세포의 간 내 침투와 약물 유도 간 손상의 연관성'이라는 제목으로 면역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Immunology>(IF=8.786)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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