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표준 진단·치료 근거 매우 부족...의학·한의학 공동 연구 통해 검증" 제안
평가위원 만장일치 "안면신경마비 한의 진료지침, 사용 권고하지 않는다" 결정
의료정책연구소 '한의표준임상 진료지침 학술적 검토·문제점 분석 연구보고서' 발간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내용 자체가 다수의 환자들과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학적 분석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한 적절한 진료지침이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19년 발행된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학술적 검토 및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이번 연구는 2019년 발행된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내용 및 인용문헌 등을 분석해 근거의학적인 측면에서 적합한지, 그리고 진단 및 치료과정에 있어서 환자들에게 유효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적절한 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보고서는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 대해 국내 안면신경마비 전문가들의 의견을 기술했으며, 한의학적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적 입장이어서 언급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진단부터 물리치료 및 안면 운동에 이르기까지 안면신경마비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이 중 상당 부분은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근거가 많이 부족하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또 진단의 경우, 상당한 현대의학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진단도구의 사용이 포함돼 있는 반면, 치료에서는 근거중심의 현대의학적 치료방법이 아예 배제돼 있다.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개발 그룹에 포함된 모든 전문가 및 자문위원에 현대의학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현대의학의 진단 및 치료 방법에 대한 언급 자체가 적응증에 맞지 않는 검사를 부추기고, 결과에 대한 해석도 자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즉, 불필요한 검사로 자원과 비용의 낭비 가능성이 있으며, 잘못된 해석에 따른 치료로 인한 피해는 환자들에게 갈 수 있다.
이 밖에 보고서는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도 언급돼 있는 '전반적으로 비뚤림 위험이 높은 논문이 인용된 부분, 가치와 선호도, 근거 수준은 낮지만, 이득이 명백하고 임상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권고'에 대해 개발위원회의 합의로 권고 등급을 일부 상향 조정한 점 등은 과학적 객관성에 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추후 재개정에서 고려돼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특히 급성 안면마비의 예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마비·불완전 마비의 적절한 구분인데, 이번 연구에서 검토한 거의 모든 문헌에서는 이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므로 중대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진료지침의 질 평가에 활용되는 척도인 AGREEII를 활용한 해당 지침의 질 평가 결과, 이번 연구에 참여한 평가위원(9명)들은 만장일치 의견으로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사용을 권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이번 연구에서 안면신경마비와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제언도 보탰다.
의료정책연구소는 "국내에서 안면신경마비는 다수의 환자들이 한의학적 치료를 우선시하는 대표적 질환 중 하나다"라며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국민들에게 심어져 온 인식과 특정 대중매체의 영향, 의학적 치료 특성상의 한계가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안면신경마비의 상당수는 특발성 안면마비인 벨마비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며 "환자의 입장에서는 빠른 회복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원인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고등급 'C'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도 꼬집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서에는 상당수의 항목들이 권고등급 'C'를 부여받았다"며 "지침서 정의상 등급 'C'는 '편익을 신뢰할 수 없으나, 진료현장에서 활용도가 높거나 보통이기 때문에 사용할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침서 본문 내용 중 일부에서는 권고등급 'C'를 마치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결론을 내리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모든 급성 말초성 안면마비가 구안와사와 같은 원인 불명의 벨 마비는 아니며, 뇌신경종양의 경우에도 벨 마비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따라서 6개월 이상 좋아지지 않고, 악화된 안면마비에는 뇌 영상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는 이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일부 한의 의료기관에서 오진해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막연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안면신경마비(구안와사)의 한방치료에 관한 '안면신경마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이 실제로는 표준 진단 및 치료로 삼을 수 있는 근거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효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제 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는지 의료계와 한방의료계가 함께 과학적 검증과 결과 분석을 통해 국민에게 의학적으로 최상의 의료를 적정한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