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연대 단식 18일차… 시·도의사회장 이어받아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 동참
두 악법 모두 법리적으로만 따져도 거부권 행사해야
"정치권은 무지하고, 국민은 무관심하다. 그런데 우리마저 무심할 수 없다."
보건복지의료연대 릴레이 단식 18일차(5월 14일)에는 김태진 부산광역시의사회장과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이 나서 간호법·의사면허박탈법 저지의 굳은 의지를 되새겼다.
5월 13일 저녁부터 철야단식을 시작한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은 간호법의 문제점으로 의료 원팀 훼손과 상호 협력의 틀을 깨는 데서 찾았다. 의사에게 더 큰 굴레가 될 수 있는 의료인면허박탈법에 대해서는 회원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은 "평생 의업에 몸담아 오면서 의료는 결국 다양한 직종간 협력이 뿌리라는 것을 절감한다. 간호법은 바로 협력과 조화의 틀을 무너뜨린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며 "간호법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큰 이득을 볼 지 모르지만,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해 전 보건의료 영역이 유지해온 조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의료인면허박탈법은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이다.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은 "의료인면허박탈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엄청난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위헌적 요소도 다분하다"라며 "면허박탈법에 대해 회원들의 관심이 조금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촘촘히 따지고 들여다봐야 한다. 시선이 멀어지면 안 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회원들이 서로의 마음을 잇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더 큰 산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의사회 회무를 맡고 있는 저 자신부터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라며 "정치권은 무지하고, 국민은 무관심하다. 그런데 의사 회원들마저 무심하면 안 된다.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14만이라는 우리의 자산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우리의 단결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파국적인 투쟁이 아니더라도 단 5분만이라도 모든 의사들이 한 데 마음을 모으면 된다. 이 마음들이 모아지면 숱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악법 폐기를 위한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촉구하고, 의협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당부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간호법 문제의 핵심은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범위를 지켜야 한다는 데 있다. 한 직역이 직역법을 만들어서 타 직역의 면허범위를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의료법 내에서 시행령 등 하위법령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라며 "간호사 처우개선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역의 처우개선 역시 절실하다. 의사도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 개선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모든 영역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 주장의 논리 부재도 짚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간협은 의료법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간호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논리 자체가 모순이다. 의료법에 있는 데 왜 굳이 간호법을 만드나. 그들의 주장하는 '부모돌봄'도 간호사만으로 가능할까. 결국 의사의 판단과 결정이 필요하다"라며 "돌봄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커뮤니티케어라는 큰 범주에서 각각의 업무와 영역이 정의돼야 한다. 의사·간호사는 물론 커뮤니티케어에 관계하는 모든 직역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간호법·면허박탈법 등에 대한 재의요구권의 필요성도 설명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간호법·의사면허박탈법 모두 법리적으로 큰 문제점이 노정돼 있다. 충분한 논의없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절차상의 하자도 있다. 졸속 입법이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조문조차 맞지 않다. 국회 위상이 이 정도인가라는 자괴감도 든다"라며 "두 악법의 제·개정 과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여러 차례 겹쳐져 있다. 단순히 법리적인 문제만 보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료계를 옥죄는 입법, 정책 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지금까지 의료계에 강압적인 입법이나 정책이 나오게 되면 원점에서부터 막으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투쟁이 필요했다. 일부 성공한 경우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젠 의료계를 향해 발의되는 모든 법안을 의협이 막을 수는 없다. 입법 의도를 파악하고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되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권익을 찾아나가야 한다. 원천무효화보다 타협과 조정을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실리를 챙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의료계를 향한 입법이나 정책 등에 '절돼 안 된다'는 입장만 견지하다보면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협에 대한 신뢰와 협력도 당부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의료 현안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의료계 내에는 한 사안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곡된 정보나 악의적 해석에 휩싸이면 안 된다"라며 "신뢰가 필요하다. 이해도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 회원들께서 믿고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다가올 미래를 향해 조끔씩이라도 함께, 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임원진도 의협 회관 앞에서 18일째 의사들과 함께 단식을 이어가며, 간호법·의사면허박탈법 저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형락 대한임상병리사협회 기획부회장은 "간호법은 국민보건 향상의 근간인 보건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의료 질서를 깬다. 약소직역의 업무 영역을 침탈하면서 일자리도 줄어들 우려가 크다. 면허의 의미조차 훼손될 수 있다"라며 "임상병리사들은 모든 장비의 원리, 운용방법 등은 물론 수준 높은 정도 관리를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비전문가인 간호사들이 대체할 수 없다. 간호사들이 대한민국 모든 보건의료 행위를 장악하겠다는 의미"라고 단언했다.
약소직역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형락 기획부회장은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약소직역이 왜 단식에 동참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야 한다. 어떤 울림으로 전해지는지 알아야 한다"라며 "서로 대화하다보면 내 것을 줄 수도 있고, 남의 것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의견만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협과 협력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국회 앞에서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단식 투쟁이 20일째 이어졌다.
이날 단식 투쟁에 참여한 조명희 학술이사는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에 있어 고졸 학력 제한은 위헌적 사항이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제한 폐지 없는 현재 간호법안은 절대 반대한다"면서 "간호인력, 나아가 보건의료인력 전체를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의 중재안을 수용하거나 현재의 간호법을 폐기하고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식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발길도 이어졌다.
5월 13일 밤에는 김영준 경기도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단식장을 방문했으며, 15일 오전 임현수 부산시의사회 공보이사, 오후에는 윤충한·이호익 인천시의사회 부회장이 각각 단식장을 찾아 김태진 부산시의사회장과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을 위로했다.
이필수 의협회장과 의협 부회장단도 14일 오후 긴급 회의를 마친 후 단식 중인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과 환담을 나누고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릴레이단식은 5월 17일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을 앞두고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15일),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16일)이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