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전문의 OECD 평균 1.33명 vs 한국 4.75명...오히려 많아
이상운 의협 부회장 "필수의료 해법 '증원' 아닌 '배분'"...지원 정책 필요
멱살 잡히러 수술실 들어가는 의료 현실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부터"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배분적 정의 관점에서 효율적인 의료자원 배치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특히 의대 증원이나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 의료전달체계 및 의료기관별 역할을 정비하고 의료인력이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의료윤리연구회는 5월 15일 대한의사협회 회관 4층 회의실에서 월례모임을 열고 필수의료 문제의 해법을 함께 고민했다. 이날 '필수의료와 배분적 정의'를 주제로 강의를 맡은 이상운 의협 보험정책부회장(대한지역병원협의회 의장)은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와 필수의료살리기협의체 단장을 맡고 있으며, 의료현안협의체에도 참여하고 있다.
■ 한국 의료자원 배분 현황은? 의료전달체계 관점에서
이상운 부회장은 "필수의료 확립을 위해서라도,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국민이 필요한 때에 적정 의료서비스를 적정기관에서 이용하도록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먼저"라며 "의원·중소병원·상급종합병원 각각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심하다. 최근 대학병원의 수도권 분원 설립 경쟁은 이를 더 가속화해 지역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0년간(2008년~2018년)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 점유율은 13%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의원급은 20% 가까이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지방 환자의 비율도 22.4% 증가했으며,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 중 경증 및 일반 환자 비중은 57%로 여전히 높다.
"필수의료도 의료전달체계와 마찬가지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 및 활용'이 문제"라고 짚은 이상운 부회장은 "필수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에 영향이 클 뿐 아니라, 시장 실패로 질적 수준의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균형적인 공급이 어려워져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 하는 의료영역"이라면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지원을 주문했다.
■ 세계 최고의 한국 의료, 정말 의사 부족이 문제일까?
"한국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사 부족 문제는 고사하고 오히려 머지않은 미래에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 국가별 코로나19 대응과 OECD 치료가능사망률 등 여러 데이터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밝힌 이상운 부회장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가서 적절히 맡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가별 코로나19 현황(2022년 12월 7일 기준)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수 2.5명으로 2.6명인 일본·미국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치명률은 한국이 0.11%인데 비해 △일본 0.2% △미국 1.1% △OECD 평균 0.77%로 상대적인 우수성을 입증했다.
여기에 OECD 평균 공공병원 비중은 53%(공공병상 비중 69%)에 달하지만 한국은 5%(공공병상 비중 10%)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민간병원이 충분히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상운 부회장은 "한미일 임상의사 수는 비슷하다. 뇌출혈 간호사 사망사건으로 필수의료 문제를 대두시킨 신경외과 전문의는 OECD 평균 인구 1000명당 1.33명이지만 한국은 4.75명으로 되려 많다"고 밝혔다.
또 "치료가능사망률로 본 의료 수준 또한 스위스(39명)에 이어 한국(42명)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광역시도별로 살펴봐도 가장 높은 서울(36.36명)과 가장 낮은 충북(46.95)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OECD 5위인 호주가 46명임을 고려하면 한국 의료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의료는 생명에 관계된 만큼 질이 중요하다"고 짚은 이상운 부회장은 "같은 맥락에서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공공의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운 부회장은 "대표적인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의 전문질환(DRG-A) 진료 비율은 민간병원의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원일수는 민간병원(5.75일)의 2배(10.64일)에 달해 기능적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의사 수가 증가 시 의료비도 함께 증가한다면서 재원 조달 문제도 짚었다.
이상운 부회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수 1명이 증가하면 의료비가 22% 증가한다. 의사 1명당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이 늘기에, 건보재정 지속성을 따지면 의사 수는 줄어야 한다"며 "같은 이유로 일본은 정부에서 의사 수를 줄이려 하고, 일본의사협회 측에서는 업무가 과중하니 의사 수를 늘려달라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안전한 진료환경 위해 정부-의료계 책임감 있게 나서야
이상운 부회장은 객관적인 자료를 살펴볼 때 한국의 의사 수는 충분함에도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난을 겪는 원인으로 ▲일본의 20%, 미국의 10% 수준의 저수가 ▲필수의료 처치·수술 대신 과도한 검사·영상진단을 유도하는 원가 이하의 상대가치점수 ▲형사·민사소송 부담 가중을 꼽았다.
"한 흉부외과 의사가 말하길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수술인 만큼, 매번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두 건 중 한 건은 멱살 잡히러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토로한 이상운 부회장은 "한국 의사(인당 환산) 처분 및 기소 건수가 일본의 265배, 영국 895배에 달한다. 민사 소송도 조정중재 개시 건수가 4년(2016~2020년) 새 2배 증가했다"며 "의료분쟁 및 형사처벌구제 방안을 도입해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필수의료 인력 및 의사 양성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상운 부회장은 "수련체계를 개선하고 양성 비용을 지원하는 등 의사인력 양성에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필수의료 쪽으로 의사 인력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윤리연구회 월례모임에 참석한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최고를 지향하기 위해 적은 재원으로 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텨온 한국 의료가, 지나치게 가성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행위가 느는 만큼 진료비가 늘어, 절대 지금과 같은 가성비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주 100시간씩 일하며 100일 당직을 서던 전공의 시절,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현재와 미래 세대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운 부회장은 "(의사에게 책임과 사명만을 강요하던) 그런 시절은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와서도 안 된다. 전공의들이 본인이 원하는 전공과목을 소신껏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힘닿는 데까지 협력해 의료체계 변화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회원이자 의사의 사회적 책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