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료계 "국민 의료·건강 정보 민간보험 넘기면 공익 침해 행위" 비판
공단·심평원 "민간보험사에 자료 제공 민감한 사안...각계 의견 수렴 신중히 결정"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건강보험자료 제공 관련 토론회'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40분가량 지연됐다.
소비자 단체, 공급자(의료) 단체, 보험협회 및 보험사가 한자리에 모인 이날 토론회는 일부 참석자들에게 '찬반을 토론하는 자리'라고 공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되며 소요가 일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보건의료 시민단체로서 토론회 참석을 요청받았으나 "애초에 정상적인 토론회가 아니기에 참석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토론회가 열린 5월 17일 오후 건보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직후, 피켓을 들고 토론장에 입장, "우리의 개인의료정보를 단 한 줄도 내어줄 수 없다"며 "토론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미 건강보험자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채로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열겠다는 것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식 요식행위' 아니냐"고 비판했고, 의료계와 소비자단체도 강력히 항의했다.
이날 의료계 대표로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토론회 참석 요청 연락을 받았을 때는 찬반토론회라고 해서 왔다. 이미 자료 제공 찬성을 전제로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토론회라면 애초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반대하는데 '가이드라인'이란 말을 써선 안 된다.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 등의 문구를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최 측은 "빼도록 하겠다"면서 "가이드라인을 이미 명확히 정한 것이 아니다. 오늘 토론회를 통해 가이드라인의 방향을 정하고자 한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가이드라인이 결정됐다는 내용은 없다"면서 "이번 토론회는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상호 의견을 청취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민간보험사 자료 제공은 정보 주체의 이익 침해 우려에 관해 이해관계자 간 의견 차이가 큰 중요한 사안이므로, 개방 여부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연맹과 소비자시민모임 등 소비자 단체에는 "토론회장에 걸린 현수막과 보도된 배포자료, 자료집에 모두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라고 기재돼 있어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 사전에 참석 요청을 받았을 때와는 다르다"며 "건강보험자료를 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런 식으로 토론회를 연 것이 마치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합의됐다는 것처럼 내비치는 요식 행위가 아닌가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정당성을 지적하고 토론회 중단을 촉구했다.
토론회는 무상의료운동본부가 퇴장하며 예정 시간보다 40분이 지난 후 재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는 "국민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국민의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익을 추구하는 보험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국민을 위해 보험을 설계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며 "이미 심평원에서 자료를 받고 있는 보험사가 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까지 받겠다는 저의가 의심된다. 이윤이 남지 않는 장사를 하는 회사가 있겠느냐. 의료계(공급자단체)는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건보공단은 "오늘 토론회를 통해 건강보험자료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이 민감한 사안임을 더욱 느꼈다"며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본래 '중재안'이라는 용어를 쓰려 했고, 각계 의견을 들어 방향을 고민하는 토론회의 성격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싶어 고민 끝에 '가이드라인'이란 단어를 쓰게 됐다"며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통해 명칭을 정정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