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행정학회 5월 26일 '전기학술대회' 정책토론...의사인력 해법 진단
OECD 통계, 보건의료체계 맥락·재원 조달방식·전달체계 함께 살펴야
대학병원 앞다퉈 분원 설립 수도권 병상 급증…"병상총량제 적용해야"
필수 의료·중증 외상·지방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기 보다 기존 인력 재배치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쓰이는 OECD 통계는 각국 보건의료체계의 맥락과 경로, 재원조달 방식, 의료전달체계, 의료인 간 업무 분장 등의 차이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의사 수 부족은 이제 의료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부 역시 의료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효율적 의사인력 재배치 등을 병행하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보건행정학회는 5월 26일 '2023 전기학술대회'에서 '의사인력 정책: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주제로 100분 토론회를 열어 의사인력 정책 전반을 살폈다.
이날 토론회는 윤석준 보건행정학회 학술위원장(고려의대 교수·예방의학)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패널로는 김태완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책부회장·민승기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부회장·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최병호 전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송양수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장 등이 참여했다.
적정 의사 수에 대한 판단과 해법은 엇갈렸지만 의사 수 부족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민승기 대개협 보험부회장은 "사회적으로 필수의료·중중외상·응급의료체계 미비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의사인력 부족이 노정되고 한 쪽 방향으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될 수 없다. 의대에 입학에서 중증외상이나 필수의료를 담당하기까지 최소한 10년은 걸린다. 당장 시급한 것은 바로 지금의 문제다. 단순히 의사 수보다 인력 재배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민구 대전협회장도 "의사인력이 증원되면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채용이 증가할지,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인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질지 의문"이라면서 "필수의료와 지역 공공의료 분야 의사인력의 수급 어려움을 단순히 수급 불균형의 문제만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의사인력 문제의 해결은 결국 사람 중심의 관점을 가져야 해결할 수 있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병상 등 자원정책,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등 공급체계 조직화,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공공보건지출 확대 등을 아우르는 정책 조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의사 증원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김태완 중병협 정책부회장은 "최근 응급질환·중증질환을 앓는 분들이 적절하게 병원을 찾지 못해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의사인력 문제 때문에 지방뿐만 아니라 많은 의료기관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라며 "중소병원협회 회원병원들도 경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의료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해 의사증원에 대한 합의 과정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의사 숫자가 사회의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보니까 부문별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다. 의사 인력 확대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라며 "의사면허는 배타적인 독점권을 부여한다. 면허는 자격을 가리는 제도이지 숫자를 제한하지 않는다. 숫자를 제한하면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아지고, 결국 공급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국민에게도 결과적으로 피해가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최병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도 "의사의 경우 수익의 미래가치가 의사가 되기 위한 비용보다 훨씬 크다.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여러 가지 이윤이 크기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같은 이유로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다. 2014년 KDI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한 사람을 늘리면서 얻는 이윤이 비용보다 크다"라며 "우리는 의대 정원을 늘릴 여력이 있다. 재배치의 중요성에도 공감한다. 재배치만 잘 하면 현재의 정원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설득하지 않았고, 의료계는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도 의료계도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의사인력 확충을 공언했다.
송양수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장은 "필수의료 부문과 지방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의사인력은 이제 정부와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됐다"라며 "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그에 맞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의사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에서 기인한다. 정부는 여러 계기를 통해 의사 인력을 확충하고, 현재 인력의 효율적인 활용과 대책을 추진해 나가겠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가올 미래에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현명한 정책결정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의사 수 부족의 단골지표인 OECD 통계의 오류도 지적했다.
강민구 회장은 "OECD 통계를 인용할 때는 국가별로 다른 보건의료체계 등 맥락을 살펴야 한다. 또 재원 조달 방식, 의료전달체계, 복지국가 유형별로 분류, 의사-간호사 업무 분장 등을 종합적으로 함께 봐야 한다"면서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는 전체 의사인력 가운데 전공의가 빠져 있다. 활동의사 12만명 중 전공의(1만 4000명) 비중은 10%가 넘는다. 인턴, 레지던트, 공보의, 군의관이 모두 빠져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임금은 높게 산출되고 근로시간은 낮게 나온다. 이를 근거로하면 앞으로 의사는 더 많이 부족하게 된다"고 짚었다.
총 진료비 증가율이 의사 수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최병호 교수는 "2006∼2021년 보건의료지표를 살펴보니 이 기간 동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적인 총 진료비는 2.4배 늘었지만, 의사 수는 1.5배 증가했다. 모든 수익을 의사들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지만 수입이 계속 늘어났다. 한국 의사들의 수입도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라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2.5명 수준에서 현재의 증가 속도로는 OECD 평균(3.5명)을 따라잡기 힘들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도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의료시장에서 관찰되는 수요를 기반으로 한 수급계획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국민의 의료이용량을 감안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김진현 교수는 "니즈는 가상적인 수치다. 시장에서 관찰되지 않는 수치다. 만약 국민이 소비하는 의료에 대한 수요를 기반으로 다시 조정해서 비교해 보면 1인당 의료 용량이 대체로 OECD의 2.5배 정도 된다. 의료 수요를 기반으로 의사의 수급 상황을 다시 추정하면 국내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23∼25% 수준"이라며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0년대 의대 입학 정원이 크게 늘었다. 이제 10년 내에 그 때 의대를 입학한 의사들이 은퇴하게 된다. 이 역시 의사인력 수급 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의료비 지출면에서는 OECD 평균을 밑돈다는 반론도 펼쳤다.
민승기 부회장은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못 미친다.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문제도 살펴야 한다. 또 대부분의 OECD 국가는 교육비를 부담하지만 우리는 자부담"이라면서 "늘어난 총진료비는 모두 의사들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을까. 모든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의사 비용이 아니라 병원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임대료도 오르고, 인건비는 더 크게 든다.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갈수록 더해지는 의사들의 업무 강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태완 부회장은 "국민 입장에서는 전문의를 쉽게 만나고 진료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의사의 업무량으로 따지면 점점 힘들어진다. 의사의 업무 강도가 올라가고 있고, 결국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판단을 해봐야 한다"라며 "한 자료에서는 의사 부족 정도를 2030년에 5만명, 2050년에 10만명으로 예측한다. 의사 수 부족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 횟수가 많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그만큼 떨어지고,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송양수 과장은 "OECD 수치가 정책 결정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통계 자료 중 하나로 인용하고 있다.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의사가 더 많은 의료 이용량을 감당해야 하고, 인구고령화에 따라 의료수요도 더 증가하며, 새로운 미래 수요도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의료이용량은 상당부분 늘어난다"면서 "많은 OECD 국가들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거나, 확대 중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은퇴하는 의사들보다 신규 진입 의사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병상 수 증가가 의사 수 부족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병호 교수는 "부분적인 원인일 수 있지만 병상 당 의사 수를 규제한다면 병상이 의사 수 부족을 초래했겠지만 우리는 병상당 규제가 없다. 우리는 사람은 적게 쓰고 병상·장비·진단기기 등을 통해 이윤을 취한다. 의료기관 운영이 기업 형태다. 의사의 1인당 생산성이 상당히 높다"라며 "영혼을 투입해 수익을 뽑는 상황이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줄일 것인지, 계속 늘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젠 수익이 많더라도 험한 전문과는 가지 않는다. 냉정하게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라고 밝힌 최병호 교수는 "병상을 늘리는 이유는 경영자 입장에서 다른 물적 자본을 늘리는 것보다 이윤을 얻기 쉽기 때문이다. 의사 대량 증원도 부작용이 있다. 병원에서 의사를 뽑지 않으면 개원가로 옮겨간다. 위험한 사이클을 방치할 것인지, 조금씩 양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면서 "인구가 감소하면 의사 수를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데 2040년에도 인구 5000만을 유지하고, 2050년에 들어서야 4000만명 대로 내려 앉는다. 너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분원 설립에 따른 수도권 병상 급증 문제도 되짚었다.
민승기 부회장은 "이대로라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1500병상 이상 병원들이 계속 생긴다. 실패한 정책이다. 대형 종합병원이 분원을 세워 병상수 늘리면서 중소병원은 병상 가동률이 떨어져 병실이 남아돌고 있다"라며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가 병상 수 조절을 잘못한 결과다. 이런 불균형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태완 부회장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3.2병상이고, OECD 평균은 4.3병상으로 3배 넘게 차이가 난다"면서 "수도권에 신설하는 8개 대학병원 분원의 총병상수가 6300병상에 이른다. 병상총량제를 적용해 확실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수의료 해법에 대한 다각적인 진단도 이뤄졌다.
김진현 교수는 "이번에 정책 결정을 통해 최소한 해마다 5000명 이상 배출해야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단계별로 한다든지 조금씩 하면 언제 부족한 공급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한다"라며 "소규모 입학정원 대학은 증원하고, 의대가 없는 지역에 신설하며, 소방·경찰·보훈·국군 등에 대한 특수목적 병원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양수 과장은 "의사 수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규 확충도 필요하겠지만 효율적인 재배치 등 다양한 정책이 패키지로 함께 가야 한다"며 "정부는 병원이 필수의료 인력을 충분히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 인력의 효율적 활용 배치와 필수의료 인력 이탈 방지를 위해 적정한 보상과 금융권 지원 등을 함께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