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할수록 적자 늘어나는 모순…근골격계 치료 주류 비급여 이동
산정 불가 치료재료 실가격 보상 절실…질병분류 중증도 인정 관건
근골격계 필수의료 붕괴 직면…수술 수가·급여기준 개선 유일한 해법
"근골격계 필수의료가 위태롭다.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인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수술을 포기하고 있다."
정형외과 영역 급여 부분의 턱없이 낮은 원가보상률로 인해 근골격계 필수의료가 무너질 위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수술할수록 적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전문의가 늘고 있으며, 근골격계 치료의 주류가 비급여로 이동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저평가된 중증도 문제도 지적됐다. 질병분류체계에서 정형외과 질환이 중증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상급종합병원에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교수 충원과 신규 장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산정 불가 치료재료에 대한 실가격 보상의 절박함도 전했다.
이와 함께 무릎·발목 질환 통증 관리에 대한 정형외과 진료의 중요성도 되짚었다.
대한정형외과학회는 5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면 과제인 수술 수가 현실화의 당위성을 촘촘히 짚고,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 제안을 내놨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정홍근 이사장(건국의대 교수·건국대병원 정형외과), 이재철 홍보위원장(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정형외과), 한승범 보험위원장(고려의대 교수·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이준규 총무위원장(건국의대 교수·건국대병원 정형외과) 등이 참석했다.
정홍근 이사장은 "정형외과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낮은 수가로 인해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형외과 수술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의료인력, 많은 수술기기 및 재료가 필요한데 수가는 원가보다 낮게 책정돼 있다. 수술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모순된 구조"라며 "이대로라면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술적 치료지원을 이어가기 어렵다. 근골격계 질환 필수의료 체계 유지가 위태롭다. 국민이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정형외과 수술 수가 개선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무릎·발목 통증 관리에서 정형외과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짚었다.
정홍근 이사장은 "인구 고령화의 영향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늘면서 관절 부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통증은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전문화된 치료가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없이 통증만 치료할 경우 만성통증으로 이환될 우려도 있다"라며 "관절통증이 심해도 일시적 증상으로 오인하고 방치하거나,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비전문적 방법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정형외과학회가 중심이 돼 치명적인 질환을 조기에 예방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승범 보험위원장은 '정형외과 수술 수가의 문제점과 현실화 방안' 발제를 통해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대표적인 문제점으로는 ▲관절경 수술의 불합리한 보상 ▲기본적인 감염관리를 위한 일회용 방포 보상 전무 ▲협소한 물리치료 인정 부위로 인한 부담 가중 등을 꼽았다.
관절경 수술은 수술의 복잡성에도 개방성 수술과 동일한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관절경 재료대의 경우 정액수가로, 실제 재료대의 10분의 1 가격으로 산정된다. 게다가 작은 관절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발목·손목 관절의 경우는 50%만 보상한다.
또 마취법 발달로 환자에게 부담이 적은 부위에 마취를 시행할 수 있는 수술이 늘어나고 있으나, 감염관리의 기본인 일회용 방포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일 물리치료를 여러부위에 시행한 경우에도 한 부위만 인정되기 때문에 환자 불편 가중과 적정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회의 지속적인 급여 개선 목소리에도 건보공단의 반향은 전혀 없다.
정형외과학회가 건의한 120개 심사기준 개선 과제 중 '검토완료'된 69개 과제는 모두 '현행 유지'가 결정됐다.
한승범 보험위원장은 "초노령화사회를 맞아 근골격계 퇴행성 질환 및 노인 골절 환자가 증가하면서 정형외과 수요가 급증하고, 수술 기법 및 진료 장비와 재료가 고도화되고 있다"라며 "그러나 현실은 낮은 보상률로 인해 필수적인 급여 치료보다 비급여 진료로 치료의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으며, 근골격계 필수의료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정형외과 수술 수가 및 급여 기준 현실화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단언했다.
낮은 수가는 각국의 의료비용과 견줘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공관절치환술 비용은 한국(9022달러)이 미국(4만 4048달러), 오스트리아(1만 5918달려), 캐나다(1만 1983달러), 프랑스(1만 1162달러) 등에 크게 못미치고, 관절경검사 비용 역시 한국(13만 8430원), 미국(98만 320원), 일본(166만 7237원), 호주(37만 2896원) 등으로, 일본의 10분 1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정형외과 기술 발전을 위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개선 필요성도 제언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에서 전문진료질병군은 상급종합병원 분율이 60% 이상이거나,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포함해 80% 이상의 분률을 차지하는 AADRG 질병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AADRG 1104개 중 전문진료질병군은 415개(37.6%), 일반진료질병군 570개(51.6%), 단순진료질병군 119개(10.8%)로 최종 분류돼 있다. 이 가운데 정형외과 관련 전문진료질병군은 33개(2.99%)에 불과하다.
한승범 보험위원장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대기 시간이 매우 길어 중환자 케어에 필요한 노령 근골격계 질환 및 외상 환자들이 중환자 치료 시설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상황"이라면서 "실력과 자격을 갖춘 정형외과 전문의 양성을 위해 수련병원 유지가 절실하다. 정형외과 발전을 위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 개선사항으로는 ▲정형외과 수술 수가 및 급여 기준 현실화(응급대기가 필요한 정형외과 수술의 현실화) ▲산정 불가 치료재료에 대한 실가격 보상 전환 ▲80세 이상 내과적 질환 동반 환자 수술의 경우, 전문 진료질병군으로 지정 등을 제안했다.
무릎·발목 통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원인 파악의 중요성도 살폈다.
이재철 홍보위원장은 '무릎 및 발목 통증이 보내는 경고, 정형외과 주요 질환 및 치료법' 발제를 통해 정형외과 전문의에 의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이재철 홍보위원장은 "레저,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며 무릎 관절 손상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무릎 손상은 관절 염좌, 십자인대 파열, 반월상 연골판 파열 등 원인 질환도 매우 다양한데, 적절한 치료가 늦어질 경우 인대 및 관절 손상이 심화되거나 관절염과 같은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손상 초기부터 원인을 정확히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무릎에 통증이 나타나면 방치하지 말고 정형외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체계적인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릎 관절의 염좌, 연골 및 인대 파열 등 외상으로 인한 주요 무릎 질환 환자가 늘고 있다. 2016년∼2019년 해마다 80만명의 무릎 관절 및 인대 탈구, 염좌 및 긴장 등의 환자가 입원 및 외래로 병원을 찾았으며, 코로나19 발생으로 감소하던 환자수는 외부 활동이 확대되면서 지난 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발목 염좌'도 해마다(2016년∼2021년) 100만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해 '발목 외측 복사뼈 골절 환자수'는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6년보다 9.4% 증가했다.
이재철 홍보위원장은 "급성기 발목 통증 환자는 조기에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전문적 치료와 재활을 시작하면 비수술적 치료로 충분히 회복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깁스 및 보조기로 고정하며 경과를 지켜보다 정형외과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기능적 운동치료나 적절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칠 경우 추후 심한 동통성 발목 질환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릎 및 발목 관절 건강을 위한 3가지 방안도 공유했다. ▲운동시작은 가벼운 걷기부터! ▲하지 유연성과 하지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 꾸준히! ▲통증이 있다면 바로 정형외과 방문하기! 등이다.
이재철 홍보위원장은 "무릎 및 발목 관절 건강을 위해서는 30분이내 가벼운 걷기 운동으로 시작해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그만해야 하며, 등산·마라톤 등을 위해서는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꾸준한 스트레칭 및 스쿼트 운동 등을 권장한다"라며 "통증이 있다면 올바른 진단·치료가 가능한 정형외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