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의료기관이 지급받는 보험급여비용은 진료의 대가다

법률칼럼 의료기관이 지급받는 보험급여비용은 진료의 대가다

  •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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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법은 모든 국민을 강제로 가입(전국민 가입강제)시켜 보험금을 납부하게 하여 보험재정을 만들고, 모든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지정(요양기관 강제지정)시켜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건보공단)의 업무를 대신하게 한다.

만약, 이러한 제도가 없다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환자에게 모든 진료비를 지급 받을 것이나, 1963년 의료보험법의 제정으로 진료비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의료보장제도가 도입된 이후 환자가 납부할 진료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미리 모아 둔 보험료에서 지급해주는 제도가 정착된 것이다.

즉,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고 수령하는 보험급여비용은 진료의 대가인 것이지 은혜적으로 주어지는 '보조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보공단이 공보험자의 지위를 가지고 이로부터 보험급여비용이 지급된다는 것 때문인지 마치 이 비용이 보조금인 것처럼 오인되는 경우가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양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며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비용을 받았다면 이 조항에 따라 환수당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마땅하며, 바로 이 조항에 근거하여 각 의료기관은 현지조사를 통해 부당 징수한 금원에 대한 환수처분을 받아왔다.

그러나 위 조항은 분명히 그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했고, 이렇게 '일부'를 징수할 수 있도록 정한 취지는 위와 같이 보험급여비용이 진료의 대가라는 점, 이 비용은 의료기관의 순수익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한 비용에 상당 부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위 조항에 대하여 의료기관이 지급 받은 급여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도록 하여 건보공단에게 일정한 재량을 부여했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건보공단은 의료기관들이 지급받은 급여비용 중 실제 환자를 진료한 데 사용된 비용을 제하고 환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위반행위에 적절한 제재를 가할 것을 노력했어야 함에도 언제나 의료기관이 받은 보험급여비용의 '전액'을 환수해왔다. 이는 보험급여비용이 진료의 대가라기보다 국가가 지급하는 은혜적인 '보조금'이라는 시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건보공단은 의료법에 위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예컨대 비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 의료인이 중복하여 운영 중인 의료기관, 의료법인의 면허를 대여하여 개설된 의료기관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의료기관이 개설된 이후부터 환자를 진료하고 수령한 보험급여비용 전액을 위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따라 환수처분해왔고, 천문학적인 환수처분 액수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의료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액 환수처분이 과연 온당한지 문제제기가 거듭되었고, 대법원은 드디어 2020년 비록 의료법령에 위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위 국민건강보험법의 환수처분이 재량행위라는 전제에서 해당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 지정되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의 개설 및 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의료법에 위반된 의료기관이라는 이유로 급여비용 전액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대법원 판단에 따라 건보공단도 2022년 '재량준칙'을 만들어 의료법 위반행위가 있더라도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운영기간, 수익배분 여부, 요양급여 내용 중 부당청구나 과잉진료가 있는지 여부 등을 검토하여 해당 의료기관이 지급받은 급여비용의 일부를 감액하는 제도를 잠시나마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중에는 바로 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 개정안도 있다.

개정안의 내용은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는 기존 조항을 '금액을 징수한다'로 바꾸는 것으로서,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는 근거를 아예 삭제하는 것이다.

즉, 대법원이 위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는 법률 조항에 근거하여 건보공단으로 하여금 전액 환수보다는 재량권을 행사하도록 판단을 하자 아예 법률을 개정하여 재량행위를 기속행위로 바꾸어 버린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건보공단이 2022년 마련한 재량준칙도 사실상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의료기관이 성실히 환자를 진료하고 소요된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법령이나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 또 다시 건보공단이 전액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 의료는 환자, 의료제공자, 보험자의 세 주체가 조화롭게 행위하며 대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온전히 발전할 수 있는 체제이다. 과연 이번 국민건강보험법 의 개정이 세 주체의 조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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