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민 설득해 의료 수가 정상화해야
의료이용 남발 제한하는 개혁 정책 필요
이제는명확해진 것 같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대한민국의 의료가 돌아올 수 없는 수준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응급의료이다. 중증 외상이나 치명적인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응급실 여기 저기 연락하다가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다. 얼마전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떨어져서 머리와 발목을 크게 다친 10대 환자가, 그리고 서울에서는 교통사고로 복강내 출혈이 발생한 환자가 여러 병원에서 모두 수용 불가로 구급차에서 사망했다.
응급의료뿐 아니라 이 나라의 의료가 곪아 터지고 있다는 징후는 차고 넘친다. 소아응급실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았고, 소아과 입원이 안되는 병원이 많아졌다. 환자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에선 의료 인프라가 없어지고, 다시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과 일차의료기관이 경쟁하는 가운데, 비용 문턱이 낮아진 상급종합병원은 환자가 넘치고, 일차의료기관은 생존을 위해 점점 미용이나 수액치료 같은 비급여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의사들은 보상은 낮고,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과 분쟁위험이 높은 전문과는 하지 않는다. 작금의 한국의 의료체계는 더 이상 증상을 숨길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중환자와 같다. 국민들의 불안은 고조되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를 달래느라 요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 압권은 중증응급환자들은 응급실 수용능력이 없어도 일단 받으라는 법이다. 해당 응급의료법 개정안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시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더해 최근 여당과 정부에서는 지역 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해 환자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의 현황을 기초로 이송과 전원을 지휘·관제하고, 이를 통한 이송의 경우에 해당 병원은 수용을 의무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글쎄, 응급실에 근무를 해보았다면 절대 동의하기 어려운 대책일 것이다.
복강내 출혈환자를 응급수술 여력도 안되면서 일단 응급실에 받으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수술은 외과의가 하는 것이고, 수술후에는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 의사 한 명 달랑 있어서 될 일도 아니다. 개복을 할 수 있는 외과 의사가 집에서 온콜 대기할 때 수당 한푼 주지 않고, 응급수술을 나오면 교통비 5만원을 주는 나라에서 응급실 강제 수용 의무화를 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면서 사망선언 하라는 이야기이다(▶관련 칼럼).
현장을 아는 의사들은 오히려 조만간 많은 병원이 응급실을 닫고, 내년도에 응급의학과 지원자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응급환자를 일단 받으라고 해서 받고나면 그 다음에는? 병동이나 중환자실로 입원시켜야 한다. 병동이나 중환자실에 여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실제 중증환자를 볼 수 있는 많은 병원은 그렇지 못하다. 의료정책을 하는 어떤 교수는 1000병상인 대학병원에서는 매일 약 140명의 환자가 퇴원하는데 100명의 응급환자 중 입원하는 환자는 23명에 불과하며, 평균 70개의 중환자 병상에서 매일 약 20∼30명의 환자가 퇴원하는데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환자는 하루 2∼3명에 불과하므로, 병원이 배정만 해주면 병상이나 중환자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들의 진료 거부가 원인이라는 것이다(▶관련기사).
응급실에서 한번이라도 환자를 병동으로 올려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은 왜 응급실 체류 시간 지표를 지키지 못해서 65억에 해당하는 의료질평가 지원금을 삭감당했을까? '차라리 환자들이 응급실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더라면 지표를 맞췄을텐데'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현재의 응급의료 체류시간 지표이다(▶관련 기사).
이런 지표가 오히려 평가의 목적과 불일치 한다는 지적도 수년전부터 있었으나 반영은 되지 않았다(▶관련기사). 이런 인식 때문인지, 이번 여당과 정부의 대책에는 경증 환자를 빼서라도 중증환자를 받으라고 한다. 경증 중증이 그렇게 쉽게 나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은 상대적으로 경증이니 중환을 위해서 퇴원하세요'라고 말하면 순순이 응할까? 법적 문제는 물론, 조만간 칼부림이 날지도 모르겠다(▶관련기사) .
응급의료정책 뿐만이 아니다. 필자는 그간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은 실패를 거듭했다고 본다. 20년 전 의약분업은 의사단체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됐지만, 임의 조제 근절 이외에는 이룬 것이 없다. 복약지도 효과는 미미하고, 국민은 불편해졌다. 약제비 절감이라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조제료·복약지도료·약품 관리료 등 부가지출로 인해 비용만 더 많이 들었다. '문재인 케어'도 마찬가지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라는 구호로 시작했으나, 머리 아프면 MRI를 보험으로 찍어보라는 식의 광고로 건강보험을 정치에 이용하더니(▶관련 칼럼), 결국 불필요한 수요만 증가시켰고, 건강보험 재정만 악화시켰다. 수요자 측면에서도 실질적으로는 필수적인 의료의 보장율도 높아지지 않았고, 재난적 의료비 발생율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전 정부는 자화자찬을 했으나, 참여연대나 사회진보연대와 같은 성향의 단체에서도 '문재인 케어'는 실패라고 평가했다(▶관련 논평, ▶관련 논평).
의전원 제도는 다양한 배경의 학부 졸업자를 끌어들여 기초의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의과학자를 양성하며, 대학 입시 경쟁을 완화하겠다는 등의 취지로 도입됐다. 당시 한국 의학교육 협의회 및 전국의 의대 학장들이 반대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됐고, 그 결과는 다 아는 바와 같다. 전국의 이공계는 의전원에 가려는 학생들이 그만두면서 오히려 경쟁력이 약해졌고, 의사가 되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힘든 수련은 기피하게 됐고, 군의관이나 공보의도 부족해졌다. 그런데도 의전원의 실패사례는 공공의대, KAIST 의대 같은 이슈로 재현되고 있다.
의사들은 수년간의 수련을 거쳐서 전문의가 된다. 의대를 수석 졸업했다 해도 환자를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의료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요새 보면 듣는 순간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긴 커녕, '문제가 더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책들이 난무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당 분야의 실제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어 차근차근 해결책을 내야 할텐데, 문제가 생기면 '의사를 처벌하겠다'는 식의 대책만 내놓는다. 문제는 거인증(acromegaly)인데, 너무 길다며 발을 잘라버리는 '프로크루테스'식의 정책이다.
이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싫어진 의사들은 조용히 그 분야를 떠날 뿐이다. 탁상 공론으로 매번 실패하는 정책을 만든 분들이 아직도 '의료정책 전문가'라고 나와서 그들의 정책 실패에 대해 의사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정부는 이런 분들의 의견에 따라 또 다른 실패할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필수적인 의료행위들에 대한 낮은 보상수준과 합리적인 의료이용 제한 기전이 없다는 것이 근본 문제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이런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다. 물가상승률은 5%가 상승하는데, 의료수가는 1.6%올려주겠다는 정부가 무슨 문제 해결의지가 있어 보이는가?(▶관련 칼럼)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서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고, 불필요한 의료이용은 제한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은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일이고 당장 정치적인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내놓는 많은 대책들은 의사와 의료기관에게 문제 생기면 너희를 처벌하겠다는 식이다. 몸속에 암이 자라서 피부를 뚫고 나오고 있는데, 암수술을 하기 두려우니, 모르핀 주사나 놓고 거즈나 붙여서 환부를 가려두는 꼴이다.
의료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소의치병 중의치인 대의치국(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돌팔이 소의들은 몇 명의 생명을 망칠 뿐이지만, 돌팔이 대의들은 국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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