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소청과 전공의 지원, 나간 인원 18% 불과...전문의 20% 성인 진료
'소청과 폐과 선언' 후 3개월…"소청과 염려·격려 늘어...與·政도 나서"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 "미래 없는 소청과, 변화해야…도와달라"
"10년간 수입이 28% 감소하고 30년간 월급이 삭감된 직장이 있다면, 계속해서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난 3월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 이후 3개월. 여당과 정부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며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희망을 내비쳤다.
열악한 소아진료환경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소청과의사회는 지난 6월 21일 진료 전환을 위한 '소아청소년과 탈출 학술대회'를 열었고 600여명의 소청과 의사들이 보톡스·당뇨·하지정맥류 등 성인 진료를 배워갔다.
다만 여당에서 지난 6월 5일 '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 해소를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결성해 16일 2차 회의까지 진행했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19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를 만나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실제로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소청과 탈출' 학술대회에서 "구성된 TF는 이제 시작 단계이기에 과연 우리가 의료 현장에서 아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라며 "내년에는 소청과 탈출을 위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아이들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학술대회를 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례없는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한국 소아의료 체계. 임현택 회장은 6월 21일 대한의사협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은 바꾸려고 노력한 만큼 바뀐다. 한명 한명이 의료계 이슈에 관심을 갖고 힘을 합해주시길 바란다"며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소아의료 TF에서도 개선책을 제안하는 등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지난 6월 11일 개최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차 학술대회' 사전등록에 700명이 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몰렸다. 회원들 반응은 어땠는지?
A. 사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회원이 호응해 주실지는 몰랐다. 자리가 모자라서 뒤에 보조 의자를 놔야 할 정도였다. 연자 분들이 소청과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기에 섭외에 흔쾌히 응해주시고 성심껏 강의해 주신 만큼, 회원 대부분도 강의 내용에 호평했다.
구체적으로 더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도 무수히 올라왔고 지방에서도 학술대회를 열어달라는 요청도 많아, 9월 10일에 2차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Q. 아이들을 진료하던 많은 소청과 의사들이 왜 '노키즈존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는지?
A. 어떤 직장인이라도 30년간 월급이 깎이고 10년 전보다 수입이 28% 줄었다면, 그 직장을 계속 다닐 수는 없을 것.
건강보험이 통합된 지 30년간 소청과 수입의 대부분인 진찰료는 물가 대비 오히려 깎였다. 14년간 국가필수예방접종 시행비도 역시 깎였고, 저출산까지 겹치니 박리다매식으로 겨우 유지해 왔던 소청과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국처럼 하루에 20명의 아이들만 진료하고도 소청과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이들을 예뻐하고 빨리 낫게 해주는 걸 매력으로 느껴 소청과를 선택한 대부분의 소청과 전문의들이, 진로 전환이란 쉽지 않은 길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Q. 폐과 선언 이후 3개월이 지났다. 소아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는데, 회원들과 주변 반응은 어떤지?
A. 회원들은 하나같이 '이미 폐과나 다름없는 상태라 너무 잘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폐과 선언 이후 보호자들로부터 '아이를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나 '소청과 그만두지 마시고 오래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도 '소청과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상황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일반 시민들에게서 수없이 많이 듣고 있다.
Q. 소아 의료 개선을 위해 정부와의 소통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A. 아직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대책이 더딘 게 사실이다. 지난 30년간 소청과의사들은 참을 만큼 참았고, 동네 의원부터 희귀·중증 질환을 다루는 대학병원까지 소청과 인프라가 바로 설지는 이제 전적으로 정부 손에 달려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폐과 선언 이후 만나자는 요청이 많이 왔는데, 할 얘기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동안 숱하게 호소했음에도 연구용역을 먼저 하자며 시간을 끌다가 1-2년 후 담당자가 바뀌어 모르는 얘기라고 선을 긋는 공무원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대화를 거부했다.
다만 6월 초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긴급 만남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소청과의 어려움에 이제 적극 나서려 한다. 한두 번의 대책으로 부족하다면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계속하며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사안들을 일일이 받아적고, 함께 온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의료현안협의체 보건복지부 측 단장)에게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다.
Q. 최근 국민의힘에서 출범한 소청과 문제 해결을 위한 TF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TF 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A. TF는 유아·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조속해 정상화하고 그 근본 틀부터 철저히 바꿔 앞으로 백년 이상을 지탱할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소청과뿐 아니라 소청과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아신경외과·소아안과·소아정형외과·소아이비인후과·소아비뇨의학과·소아재활의학과·소아마취과 등 소아 연관 과들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의대생·전공의·개원의·봉직의·전임의·교수 등 폭넓은 교류로 알게 된 현장의 문제들을 토대로, TF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의료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럿 제안할 생각이다.
Q. 일각에서는 소청과의사 단체가 종별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A. 소아의료현장에 대한 문제 인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학회는 폐과 선언 당시에도 동감해주었고 그동안 보건복지부에 소청과 의료 대책을 얘기할 때도 큰 이견이 없었다.
다만 '폐과'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의사회는 '이미 폐과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고, 학회는 '학문 체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폐과라 칭하는 것은 과하다'는 정도의 인식 차이가 있을 뿐이다.
Q. 출산율 저하와 신생아 급감으로 인해 소청과에 과도한 투자는 비효율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A. 소청과에 과도한 투자? 지금 소청과에는 투자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소아청소년은 기본적으로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는 귀중한 존재이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존재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 보람을 느껴 둘째, 셋째 아이를 낳고 싶어도 아이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해 못 낳겠다고 하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소청과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불도 자주 나지 않는데 소방서에 왜 투자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Q. 소아청소년과 전공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을 올리고 소아의료 인프라를 살리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A. 전공의들이 소청과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소청과를 전공해도 소송 위험이 적고 합당한 대가가 충분히 지급돼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전 임상과 중에서 압도적으로 꼴찌인 수입, 10년 전보다 수입이 28% 감소한 유일한 과, 인턴만 마친 일반의보다도 수입이 적은 과가 바로 소청과다. 이런 현실에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잠을 줄여가며 소청과 수련을 받는 전공의가 될 이유가 있을까. 지금도 현직 소청과 전문의 3338명 중 20%에 달하는 667명이 소아 진료가 아닌 성인 진료를 하고 있다.
수가가 지나치게 낮아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소청과를 환영하기 어렵다. 소청과 교수들은 종일 당직을 서며 더없이 귀한 일을 하면서도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Q. 소송 부담도 소청과 기피의 큰 요인인 것 같다.
A. 소청과 의사들은 민형사 소송에 몇 개씩 걸쳐있는 경우가 많다. 소청과 의사들은 늘 아이들 목숨을 다루는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사망이나 뇌성마비 등 중대장애를 남길 가능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데, 결과가 나쁘다고 면책 특례가 없다면 어떻게 소청과 전공을 지원하겠는가?
'아이 귀지를 빼주다 피가 났다고 과실치상으로 형사고소하고 3천만원을 배상하라 민사소송을 거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기대여명이 길고 미숙아 출산이 많아 의사가 평생 벌어도 쉽지 않은 배상액이 추산되는데, 예컨대 뇌성마비가 되면 10억에 가깝다. 이렇듯 잠재된 위험이 이대목동병원 구속 사건으로 드러나면서, 소청과를 전공하고 싶었던 인턴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게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올해 소청과 전공의 187명이 나가고 33명이 새로 지원했다. 추가 모집에서는 52명까지 찼는데, 벌써부터 중도 사직자가 상당하다. 내년에는 147명이 새로 나간다. 대학병원의 1-2년차 전공의는 이제 정말 몇 남지 않는다.
지금이 소청과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사명감으로 힘든 여건에서도 진료하는 소청과 의사들이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정치권, 보건복지부, 질병청, 기재부, 언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금만 도와주셨으면 한다.
내가 해봤더니 내가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한 만큼은 세상이 바뀌더라. 어려운 현실에 굉장히 실망하고 자포자기하는 의사들을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서로 힘을 합해 의사가 보다 존중받고 환자가 보다 원활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의료인들도 한명 한명이 의료계 이슈에 관심을 갖고 힘을 합해주시길 바란다. 이번에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