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마타 협약 '제조·판매·수출입만 금지'...환경부도 "사용 가능" 고시
7월 21일 보관기관 만료...수은 혈압계 1개 처리비 최소 '22만원' 부담 커
가정·의료기관 '따로' 처리..."의사만 자부담...국가 차원 회수 필요"
수은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2013년 국제사회가 채택한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 협약(국제수은협약, 미나마타 협약)'. 정부는 미나마타 협약을 근거로 2020년 의료기관의 수은 온도계·수은 혈압계 등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최근에는 회수·폐기를 추진하고 있다.
7월 21일 수은폐기물 보관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환경부 및 지자체는 의료기관에 처리계획서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 의료계에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로서는 환경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동참하고 싶어도 적지 않은 비용과 행정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의협신문]은 미나마타 협약을 따르는 한국의 현황과 국제사회 지침, 외국 정책사례를 집중취재했다.
1. 수은 온도계, 사용 금지 왜? "규제 정책에 의료계 등 터져"
2. '한국만' 금지한 수은 혈압계? 외국 "범부처 지원...교체 설득"
지금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개원했을 때부터 20년간 함께해 온 소중한 물건인데…
안 그래도 빠듯한데 (수은 혈압계) 5개만 처리해도 88만원, 너무하네요
일선 의료기관이 체온계·혈압계 등 수은 의료기기 처리계획서 독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의료인 개인에게 운송과 처리 비용을 모두 부담케 하는 것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와 달리 의료기관만 운송과 처비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뿐더러, 국제협약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함에도 실효성보다 행정주의에 매몰됐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 미나마타 협약의 진실…"사용금지, 강제 폐기? 금시초문"
정작 정부가 근거로 삼고 있는 미나마타 협약에는 수명이 다하지 않은 수은 의료기기의 회수는 물론 사용금지 조항마저 없었다.
실제로 환경부 및 국립환경과학원은 2016년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 협약 안내서'에서 "보건시설 내 수은 체온계 재고 혹은 판매점의 수은전지는 2020년 이후에도 구매 및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환경부는 2019년에도 미나마타 협약 발효를 예고하며 수은 의료기기의 수출입만을 금지했을 뿐 사용을 금지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2020년부터 의료기관에서 수은 의료기기를 쓸 수 없게 됐다.
범인(?)은 바로 식품의약안전처. 식약처는 2014년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 등에 관한 규정' 관련 고시(제2014-142호)를 '국제수은협약이 적용되는 의료기기(치과용캡슐형아말감 제외)'에 대해 "국제수은협약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을 발생하는 날부터 사용을 금지한다"고 개정했다. 사용이 금지된 수은 의료기기는 곧 폐기물이 됐고,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상 지정폐기물로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의료기관의 수은 의료기기 사용금지와 강제 폐기는 정부 부처의 '엇갈림'이 만들어 낸 결과다.
대한의사협회는 식약처가 어떤 근거로 제조·판매(수출입)를 규제한 협약을 언급하며 사용까지 금지한 건지 의문을 제기, 의학적 특수성 등을 감안한 수은체온계·혈압계 사용금지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 2년간 업체 확보, 비용 절감하겠다더니…"수십만원 여전"
사용금지에 이어 최근 수은 의료기기 회수·폐기 추진하면서 최소 수십만원 이상의 비용을 모두 개별 의료기관에 지우자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기관으로서는 전자식 의료기기가 없던 시절 불가피하게 체온계와 혈압계를 구매했을 뿐인데, 강제로 폐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구매했을 때보다 비싼 비용을 부담하게 된 것.
수은 의료기기 폐기물 개당 처리 단가는 ▲수은혈압계가 16만 5000원 ▲수은 온도계·체온계·척추측만각도기 등이 6만 6000원으로 추계됐다. 여기에 운반비용은 별도인데 △지역별 거점을 통해 수거한다면 5만 5000원이나 △개별적으로 처리한다면 70~80만원 수준이다.
배출자 의무이행 및 처리기준 준수 등 절차상 불편함도 만만치 않은데, 포장만 해도 포장용 상자 외에 △폴리에틸렌 등 고밀도 내수성 재질 포장재 △충격 완화를 위한 에어캡 등 완충재 △폴리에틸렌 등 고밀도 내수성 재질 또는 유출방지 비닐시트 등 바닥재를 구비해야 한다. 이중포장을 마친 뒤에는 폐기물의 종류, 기관명, 관리책임자, 연락처, 취급 시 주의사항, 운반(처리) 예정장소 등을 표기하고, 진료시간 외에 시간을 내어 거점 장소까지 직접 운반해야 한다.
환경부와 의협은 협의 끝에 수은폐기물 보관기간을 2021년 7월 20일로부터 두 차례 연기해 2년 유예를 뒀는데, 2년간 처리업체가 하나뿐인 데에서 나오는 높은 비용 부담을 감소하기 위해서였다. 처리업체를 추가 확보하고 처리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실질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처리업체도 비용도 모두 그대로, 처리와 운반 비용 모두를 의료기관에서 개별적으로 부담하는 것도 그대로다. 그나마 대전에서 시범사업 등을 통해 '거점수거 처리방안'을 마련했으나, 수집·운반비용에만 일부 감소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처리업체와 운송업체 역시 각각 3곳이라지만, 체온계와 혈압계 등 계측기기를 처리·운반하는 업체는 1곳씩뿐이다.
이 같은 의료계의 부담은 학교의 수은 폐기물 처리 비용 및 절차를 교육청이 지원해주는 것, 가정의 수은 폐기물은 생활폐기물로서 지자체 예산으로 처리될 예정인 것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 실효성 없는 행정주의 '한숨'…"범부처 협력·지원 필수"
의협은 배출 당사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이 '국민안전과 환경을 위해 수은폐기물을 회수한다'는 목적 달성에 오히려 장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시행됐던 대전지역 거점수거 시범사업은 수요조사에 응했던 350여개 의료기관 중 실제로 참여한 곳은 절반가량인 53%에 불과했다. 국제협약에 따라 국민건강과 환경보호를 위한 사업인 만큼 ▲국가 차원의 일괄적인 수거·폐기와 ▲처리·교체 비용 지원으로 전국적인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
의료기관에서 수거·폐기를 완료한다 해도 다음으로는 가정 내 수은 기기 생활폐기물로서 처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수은 기기를 지정폐기물과 생활폐기물로 분절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전국적인 사업 형태로 함께 수거하고 처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란 점도 짚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 식약처, 환경부 등 여러 관련 부서에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요청하고 범부처적 협력을 끌어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폐기물관리법상 분류되는 기준으로 처리절차를 달리 적용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료기관·가정을 포괄해 모든 수은폐기물을 일괄처리하는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은 폐기물 일괄 처리에 있어 지자체 지원을 핵심으로 꼽고 "이미 종로구와 함양군 등 일부 지자체에서도 폐형광등 수거함을 활용하거나 폐기물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자체 예산을 들여 생활폐기물과 함께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은온도계·체온계·혈압계 처리 비용은 2021년도 환경부 전국단위 수은폐기물 현황조사를 토대로 △온도계 2억 460만원 △체온계 4억 1685만원 △혈압계 21억 6034만원으로 도합 27억 8179만원으로 추계했다. 구체적인 비중으로는 일전의 영세 의료기관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사례를 참조해, 국비:지방비:자부담을 1:1:1로 하는 등 적극 지원을 요청했다.
이 외에도 의협은 ▲국회-정부-지자체-의료계 등 수은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 구성 ▲협의체에서 적정 결과 도출까지 보관기간 연장을 국회와 정부 부처에 촉구하고 있으며, 특히 식약처에는 ▲가정용 수은 폐기물 처리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관련 고시 유예 연장하는 방안과 ▲관련 고시 중 수은온도계 등 사용금지 항목에 의료기관은 제외토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회원들의 우려에 대해서도 "현재는 전국 시군구 지자체별 관내 의료기관 등에 수은 함유 폐기물 보유현황을 파악,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단계"라며 "처리 시설이 단일한데다 교육청 차원의 학교 내 폐기물 회수가 적극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몇 달 전에 이미 올 하반기까지 처리 일정이 다 찬 상태다. 수은폐기물을 신고한다고 해도 올해 안에 처리는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협의하고 개선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