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발기인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8.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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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수 미래의료포럼 발기인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발기인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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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팬암사의 파일럿 유니폼을 입고 수많은 스튜어디스에게 둘러싸여 공항 안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파일럿 유니폼은 사기 행각을 벌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품으로 등장한다. 신뢰할 만한 제복과 그럴듯한 언변에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간다.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사람들이 신뢰하는 제복이라는 소품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며칠 전 대법원에서 뇌파검사기기(EEG)를 한의사도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10여 년 전에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가 '파킨슨병 뇌파검사로 진단한다'는 광고를 내고 뇌파계를 써서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을 내렸다며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뇌파계는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는 기기가 아니다. 뇌파계가 뇌의 전기생리학적 현상을 검사하는 것이지만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기기다. 이 사람은 환자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현대의료기기인 뇌파계를 환자를 진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소품으로 사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디캐프리오의 파일럿 제복과 같은 소품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법원은 아무 문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또 얼마 전에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도 10여 년전에 자궁내막증이 있던 환자가 한의사에게 2년에 걸쳐 68회의 초음파 검사를 받으며 치료를 했는데 암으로 발전했다며 문제를 제기해 시작되었다. 2년간 초음파를 들여다보았지만, 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지 못해 환자는 조기치료 할 기회를 놓쳤는데 초음파 자체의 위해성이 높지 않아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환자가 있는데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판결이다. 법 논리가 상식을 뛰어넘으면 그건 합당한 판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경찰공무원이 아니면 경찰 제복이나 경찰 장비를 착용하거나 사용 또는 휴대하여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 논리라면 경찰 제복의 자체 위해성이 높지 않은데 왜 법으로 금지할까? 옷이란 기껏 천조각에 불과한데도 법조문까지 만들어서 금지하는 이유는 제복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의 파일럿 제복처럼 경찰 제복은 그 자체가 가지는 위해성은 없어도 그 상징성을 악용하는 사기꾼들에게는 사람들을 속이는 손쉬운 소품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법에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서 판결을 내리는데 머리가 깨지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결로 사회변혁을 시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실증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과 문헌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을 50년 후 100년 후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는 사회 전체의 확고한 방향성 없이 판결로 경계를 무너뜨리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도대체 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을 판사들이 나서서 경계를 무너뜨리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의학은 수학, 화학, 물리학, 기상학과 같은 과학이다. 과학이란 정형적 모양을 하지 않고 테이터에 기반한 근거를 좇아가며 변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어제까지 정설로 여겨졌던 것도 오늘 그걸 깨는 새로운 실증적 근거가 나오면 과거의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가차 없이 변신을 한다. 또한, 조건만 충족하면 모조리 흡수하는 특성이 있는 학문이다. 즉 실증적 근거만 확실하면 모조리 과학의 이름으로 포용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통수학, 민족수학, 전통화학, 민족화학, 전통물리학, 민족물리학, 전통기상학, 민족기상학 같은 구분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자랑하는 측우기, 해시계는 자랑스러운 유산이고 유물이지만 그걸 전통기상학, 민족기상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과학의 한 가지인 의학에서만 전통의학, 민족의학이란 분류와 수식어가 등장한다. 과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같다. 

실증적 근거를 좇는 학문의 대척점에 문헌적 근거를 좇는 학문을 배치하고 각각의 면허를 부여하는 행위는 전혀 자연스럽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한의학도 실증적 근거를 축적하면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거기에 정부 예산까지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그건 과학의 속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헛소리다. 

과학은 실증적 근거를 갖추면 모조리 흡수하는 학문이다. 실증적 근거를 축적하고 그 유효성이 과학적으로 인정되면 그때부터는 그냥 과학이 되는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세력을 확장해왔다. 실증적 근거가 있으면 과학이라고 하며 기존 과학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그걸 전통과학, 민족과학이라고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일어나는 꼴은 그저 덤 앤 더머들의 행진을 보는 것 같다. 법관 임용할 때 법관들이 문헌적 근거로 삼는 법전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개론이라도 교육해서 임명하라. 그게 사회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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