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라도 의사 기준 동일 적용 "감당 못 할 의료기기"
한의사, 의사 아니니 병은 환자 책임?…재판부 "말장난 말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를 형사 재판부는 무죄로 판결했으나, 민사는 해당 한의사가 환자에게 위해를 끼친 책임을 물었다. 진단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한의사는 형사처벌은 피하더라도, 의사 수준의 주의의무와 배상책임을 함께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14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지난 2016년 1심·2심 재판부는 한의사의 초음파 검사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봤으나, 2022년 12월 대법원에서 판결을 뒤집은 결과다.
대법원의 주요 판단 근거 중 하나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보건위생상 위해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사에서는 같은 사건에서 환자가 입은 위해를 피고 한의사로 인한 것이라 보고 배상토록 했다.
민사와 형사 재판이 엇갈린 지점은 어디일까? 민사 재판으로 돌아가 보자.
1심 형사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2015년, 서울남부지방법원 재판부는 한의사의 진술을 "언어유희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피고(한의사)는 설명의무 내지 전원의무 위반으로 인해 원고(환자)에게 발생한 모든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피고 한의사는 "(나는)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니 한의사를 기준으로 과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자궁내막증식증을 진료한 것이 아니라 가임에 관련해서만 한방진료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심지어 "자궁내막암은 환자 본인이 평소 건강관리와 검진을 통해 예방하거나 발견했어야지 한방의학적 차원에서 치료하는 한의원에 그 책임을 전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스스로 면허 범위 외의 (초음파)의료행위를 한 이상 그 주의의무를 면허 있는 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상당한 기간 동안 치료한 후에도 부정기적 출혈이 계속된 만큼, 직접 정기적 진찰과 조직검사를 할 수 없다면 다른 의료기관에서 받도록 설명하거나 전원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짚었다.
법조인들은 면허와 관계없이 피고 한의사에게 의사와 동일한 책임을 부과한 점에 주목했다. 한의사가 의과 진단기기를 사용하려면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와 배상책임이 따르는 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민사판결을 "한의사가 초음파 영상을 판독할 능력 유무를 떠나 그 결과에 대해서만큼은 한의학적 원리가 아닌 현대의학과 의사 수준의 주의의무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법원에서는 전문 의료인 수준을 요구하기에 한의사들이 섣불리 의료기기를 쓰겠다면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오히려 추후로는 한의사들이 초음파나 뇌파검사를 시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봤다.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도 "이번 대법원판결 이후로는 한의사의 진단 의료기기 사용으로 피해를 본 환자들이 형사가 아닌 민사로 집중되면서, 과실 여부 증명 등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개원가에 따르면 의사들은 의과대학 과정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영상의학 전문의가 아닌 이상 초음파 진단을 지양한다.
A 개원의(가정의학과)는 "초음파로 진단할 수 있는 병변을 놓치면 책임을 져야 하기에 필요한 경우 영상의학 전문의에게 자문을 요청하거나 전원조치한다. 환자 100명에게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한 명의 병변을 놓친다면 100명 환자에 대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직접 초음파 검사를 한다면 소정 수익을 올릴 수 있겠으나 의사로서 소명감과 양심, 환자와의 신뢰,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생각해 전문의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