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의료연구회 개척…"통합적 관점과 방향설정 필요"
전문병원장서 국회연구회장까지 향후 '보건의료 컨설턴트' 목표
정재훈 아주편한병원장(경기도 수원시)은 본인의 삶을 '환자와 맞닿은 삶'이라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정신과 환자의 치료에 힘쓰며 아주편한병원을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선정되도록 열과 성을 다했다. 그와 병원 관계자들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인증제도에 합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현재까지 전국에 딱 9개만 지정된 알코올 전문병원인 덕분에, 2차 의료기관은 물론 대학병원 같은 3차 의료기관에서도 추가적인 관리를 위해 전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인 만큼, 그가 지역사회와 공공의료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경기도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 등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지역사회 정신건강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정재훈 원장의 직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장'이다.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회 내부에서 인증을 받았다. 2021년 2월 출범, 3년째를 맞은 연구회는 그 취지와 노력을 인정받아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으로부터 2년 연속 '우수 연구회'로 선정된 바 있다.
Q. 보건의료발전연구회는 '특별한' 연구회라고 하는데요.
보건의료발전연구회는 국회 내부에서 보건의료복지분야로는 처음 생긴 단체입니다. 전문가와 시민, 국회의원이 소통하는 포럼, 연구회는 수없이 많지만, 국회 내부에서 인가받은 연구회는 헌정사상 30개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 공증을 받는 단체이기 때문에 국회사무처에서 예산을 할당하기도 합니다. 또 인권단체, 시민단체, 언론, 법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사회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연구회의 또 다른 축인 입법 그룹에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정당과 소속의 보좌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색'을 띠지 않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Q. 보건의료발전연구회는 왜 존재하나요?
지금까지 의료정책에 대해선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병원협회 같은 국가가 인정한 기관이 도맡아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등 중앙부처나 국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관들은 외부 단체라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국민을 위한 의료 정책을 만들기 위해선 국회 내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회는 이익 단체라는 범주를 넘어 실용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료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또 정말 많은 인원수의 관계자가 좋은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무자들이 현장 경험을 접할 기회가 적습니다. 학회랑 소통하는 수준 정도가 실질적인 한계인데, 학회라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말 가감 없이 전달해 주기가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전달만 해드려도 정책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Q. 이제야 첫 보건의료복지 연구회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보의 부재도 있겠지만 까다로운 설립 조건이 첫 번째 이유일 것 같습니다. 창립을 위해선 참여하는 의원실이 10개, 국회 직원은 최소 15명이 참여해야 합니다. 다양한 배경의 전문위원단을 합하면 현재 60명 정도의 팀을 운영하고 있어 단순한 마음가짐으로는 시도해 보기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Q. 정치, 정책과 연관이 있는 연구회라면 팀원 간 노선 차이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연구회를 시작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그냥 순수하게 보건의료에 관해서만 연구한다'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얼마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많이 여쭤보시지만, 그것보단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내, 외부 인사들과 소통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강점이 연구회를 국회 내에서 좋은 평판을 이끌어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Q. 국회 내에는 여러 상임위가 있는데요, 그중 보건복지위원회와 관련된 정책만 다루시나요?
전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실 소속 보좌관분들은 10∼15%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도 계십니다.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코로나 정책이 보건의료 정책이지만 경제, 국방, 외교, 문화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줬던 것처럼, 보건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해당 위원회 분들과만 소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범부처가 같이 모여 각자의 역할을 하듯이, 우리 연구회도 현안에 다각도로 접근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Q. 좋은 정책이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이신가요?
저도 의사지만 제가 모든 진료과와 세부 상황을 알 수 없어서 여러 학회를 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세미나와 토론회를 많이 개최하는데, 이런 활동들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기보다는 여러 번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심부전학회·뇌졸중학회·소아응급의학회 등과 세미나나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최근 소아청소년과가 여러 이슈로 의사 사회는 물론이고 국민의 많은 이목을 끌었습니다. 소청과 의료진, 그중에서도 소아응급의학회 소속 의료진분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로 연구회 차원에서 법 개정안도 발의했습니다. 연구회가 국민을 위한 법 개정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Q. 연구회를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면서 들었던 의료 현장의 이야기들, 또 입법 사안을 다루는 국회 현장의 이야기들을 모으다 보니 하나의 큰 데이터베이스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산 현안을 다루는 국회 예결위(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린다면 연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의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국정감사 때 질의를 한다든지 활동하는, 흔히 말하는 팔로우 업이 가능해진 겁니다. 수많은 단발성 토론회는 법 개정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그 의의가 희석된다는 점에서 입법에 저희의 노력이 반영된다는 점은 연구회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입니다.
Q. 연구회의 시작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경험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제에 대한 행정적인 대응을 법 자체에 근거가 없어서 시작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면 해당 정부 부처나 각료 분들은 답답한 마음에 던지는 쓴 소리들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곤 합니다. 관계자에게 따끔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그럴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인다고 알아서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먼저 관련 법령을 확인해 법을 통한 근거가 무엇인지부터 확인을 해야 합니다. 법령이 없다면 논의는 입안, 혹은 개정처럼 입법부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 출발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연구회의 목표고, 또 '기회'입니다.
Q. 연구회를 운영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셨나요?
뇌졸중과 관련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국회의원이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국회의원께서 회의 내용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 내용 그대로 국정감사 때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현장 질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정감사 기간에 질의라는 것은 서면 질의만 하더라도 엄청난 무게가 있고, 질의 내용이 백서에 남는다는 걸 생각했을 때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많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또 연구회에 공식적으로 자료 제안서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도 국민을 위해서 고민한 것들을 전달하고, 반영되기도 하니 보람을 느낍니다.
Q. 국회에서 일하는 의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할까요?
홍보가 됐든, 자아실현이 됐든 언론에 노출되는 소위 말하는 '양지'로 나가려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국회입니다. 그런 부분을 궁금해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회는 진짜 국민을 위해서 현장 전문가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한번 살아보자고 만든 단체입니다. 저희가 가진 기억과 보람을 다 공유하는 조직입니다. 내 마음, 내 조직 자체에 목적을 두면 연구회의 자존감과 의의는 존재 자체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희가 이뤄놓은 것으로부터 말미암은 보람은 팀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곤 합니다.
Q. 연구회를 시작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의료 전문가와 의료 정책 전문가의 차이를 크게 느꼈습니다. 저도 의료 전문가로서 의료 정책도 다 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는 참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많이 돌아봤었습니다. 국민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의료 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회가 개척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재훈 회장은 연구회가 하나의 전문 정책 컨설턴트로 공고히 자리 잡기 원한다고 밝혔다. 정책 개발 과정에서 꼭 대입해야 하는 그만의 '필승공식'으로 ▲어떤 부분이 어려운 건지 ▲무엇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진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제시했다.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의제가 있다면 연구회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 다양한 접근법을 고민한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의 옷소매가 길어지는 요즘, 정재훈 회장과 연구회는 오늘도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정책을 위해 조금은 길어진 두 팔을 걷어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