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한민국 의료의 '골든아워,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의료의 '골든아워, 서둘러야 한다"

  •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10.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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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소멸', '지방의료 소멸', '사법 리스크'
개선 방안…지금 실천해야 의료 붕괴 막을 수 있어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의협신문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의협신문

시중에 언제부터 인지 '공짜는 없다, 비밀도 없다, 정답도 없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는데 이 말에는 나름 진실이 담겨있다. 이 말을 지금 우리나라 의료에 비춰 보며 '정답이 없다'를 '정답은 있되 실천이 어렵다 '라고 바꾸면 다 맞다. 많은 것들이 이미 나빠졌고 굳어버려서 고치기가 어렵지만 늦었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이자 마지막 골든아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 세 가지 이슈, 즉 필수의료 붕괴, 지방의료 소멸,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한 판결들(사법 리스크)을 하나씩 짚어보면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첫째 필수의료 소멸. 지금 국민 대다수가 불안에 떨고 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 임산부, 만성병 환자들이 특히 그렇다. 예측하지 못한 사이 갑자기 닥친 필수의료 붕괴에 정부도, 국민도 모두 당황하고 있다.

낮은 보험 수가와 끝없이 이어지는 격무를 그래도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의사들도 화가 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날로 악화하는 의료환경 때문에 필수 과 의사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고 있다. 병원 봉직의들, 전공의들은 편하고 수입 좋고 위험도 덜한 곳으로 이직하고 있다. 그러자 야간, 주말 당직까지 떠맡게 된 교수들도 떠나면서 필수의료 현장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침몰하는 배에서 누가 먼저 뛰어내리는지 경쟁하듯 떠나면서 남은 사람들이 더욱 불어난 격무에 시달리며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필수 과는 전공의 지원자도 거의 사라지며 의료현장의 공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재외 동포들이 비싸지 않고 질 높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받으려고 귀국하고 있다. 최근 증가하는 역이민의 가장 큰 이유도 의료이다. 이런 것만 봐도 지난 수 십여 년간 우리가 선진국들조차 부러워하는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누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그것들이 망가졌을 때 비로소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필수의료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모두 불안을 실감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이 그 값을 치르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의료를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정의한다면 '박리다매'라고 할 수 있다. 진료비가 워낙 저렴하다 보니 어린이 진료 본인부담이 600원인 경우도 많아 이를 '동전진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의사를 600원짜리 상품을 파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을 함부로 대하고, 사소한 일에도 비난을 하며 온갖 갑질을 하기도 하는데 600원짜리 진료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필수의료 붕괴 못지않게 지금 우리가 당면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료 소멸이다. 우리 국민은 언제든, 어느 병·의원에서 든,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이 1년 간 의사 진료를 받는 횟수가 OECD 국가 평균의 2.5배, 원하면 24시간 이내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비율이 99%에 달한다. 가히 '의료 쇼핑의 메카' 라고 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나 지역 간 큰 차이도 없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보험수가가 가장 큰 원인이다. 환자의 의사와 병·의원에 대한 무제한 선택권, SNS를 통한 '정보의 홍수' 덕에 날로 높아만 가는 기대치 탓도 크다. 여기에 더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촘촘하게 깔린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 인프라도 환자들이 거주지역을 떠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데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이 소멸하면 대한민국이 소멸한다. 지방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은 지방의료를 살리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병·의원이 없으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의사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대법원 판결들이 나오면서 이미 빈사상태에 빠진 필수의료가 더욱 사경에 빠져들고 있다. 

의사도 인간이므로 완벽할 수 없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에서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간혹 불가항력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신생아 심장수술·뇌 수술·대동맥 수술 등 특히 위험이 큰 수술·시술·치료를 하는 의사들은 항상 높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사실 이런 의료행위는 의사의 '피를 말리는', 극도로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련의 '비정상적인' 판결을 보면서 이제껏 아무 일 없이 위험한 진료를 해왔던 이런 분야의 전문의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판결을 보고 해당 분야의 수련의들은 전공을 바꾸고 싶어할 것이고,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사명감이 예외적으로 투철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이제 이 세 난제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 본다.

■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대책

1. 과감한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 애초에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보험수가에 매년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낮은 폭의 인상만으로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
2. 필수과, '바이탈과' 등 비인기과의 수련의는 물론 교수들에게도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3. 고 난이도, 고 위험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기관은 전국에 서 너 개로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족한 전문의뿐 아니라 지원인력, 고가의 장비와 시설들을 낭비 없이 최대한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4. '동전 진료'를 없애야 한다. 본인부담으로 6백 원을 내게 하면서 의사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느니 차라리 어린이 환자의 외래 진료비의 본인 부담을 아예 없애고 보험 급여를 올려주는 것이 낫다.
5. 환자들 또는 아이 부모들의 온라인, 오프라인 갑질 및 행패 근절과 의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6. 바이탈과 의사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로 의료분쟁조정특례법, 의료분쟁보험제도 강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국가책임제 등의 법을 도입해야 한다.
 
■ 지방의료 붕괴에 대한 대책

1. 이미 무제한으로 풀어버린 의사, 병·의원 선택권을 다시 없앨 수는 없으므로 의료 취약지역 환자 진료와 의사 취업, 개업 시 이들에게 세제 혜택, 진료 가산점, 개원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2. 현재 운영이 매우 어렵고 날로 쇠퇴해 가는 지방의료원 들에 의료인 확보, 설비 및 시설 확충에 지방자치단체가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혁신 없이 지방 의료를 살릴 방법은 없다. 운영이 어렵다고 무조건 폐쇄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착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3.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전공의 배치에서 비수도권 비율을 상향 조정했는데 단순히 숫자만으로 강제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이들에게 인센티브로 지방병원 수련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4.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환경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수도권 의대병원 병상 증설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5. 지방의료를  살리겠다고 지방에 의대를 설립하자는 주장은 효과도 없고 수천억원 대의 예산만 낭비하는 코메디 급 발상이다. 희망고문으로 주민들을 괴롭히는 이런 주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한 대책

1. 납득할 수 없는 비과학적 판결의 부당성을 국민과 정치권에 알리는 노력을 끈기 있게 전개해야 한다.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판결의 부당함을 정치권에 이슈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이 판결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사법부 견제기능과 입법 행위를 통해 개선책을 찾도록 해야 한다. 
2. 부당한 판결 사례들뿐 아니라 모든 의료분쟁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전향적으로 수집, 분석해서 유사한 사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지속해서 해야 한다.
3. 필요 시 헌법소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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