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대책으로 비수도권 지역의 수련병원에 전체 전공의 정원의 50%를 의무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에 대해 각 학회는 '무리한 정책' 이라며 반대하고 있으며, 수련병원들은 2024년 전공의 정원 배정을 두고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수도권-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을 6:4 수준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새 기준에 맞추려면 수련병원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좀 더 충족되어 지원자가 많은 수도권 병원의 전공의 정원은 감축하는 반면에 지원자가 적은 비수도권 병원의 경우는 증원해야 한다.
비수도권 병원의 경우 단순히 전공의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비수도권의 수련병원에서 필수과목을 수련받으러 간다는 것이 담보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비수도권 필수의료 인력양성의 시급성을 해결하기 위해 직권조정을 해서라도 새 기준을 강행하는 것 같다.
이러다 보면 오히려 진료량이 많은 수련병원의 경우는 전공의 인력이 감소돼 수련의 질이 떨어지고, 전공의 피로도는 가중되어서, 수련하는 도중에 포기하는 탈락자 발생의 우려가 있고, 정원은 늘었어도 비수도권 지역의 병원은 전공의 지원이 없게 되어 전국적으로는 결국 전문의 배출 숫자만 줄어드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일부 진료과목의 경우 수도권에서도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정책', 그리고 '실효성을 담보할 수도 없는 정책을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각 전문과학회의 내년 레지던트 1년차 정원(안)을 검토한 결과, 26개 전문과목 중 절반 이상이 5:5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관계자도 최근 "병원계와 학회의 우려사항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불가피하게 엄중한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예정대로 적용할 계획을 밝혔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배출되는 전문의의 능력을 담보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신경외과 수련평가에는 ▲수련에 필요한 여러 수술 및 진단장비 보유실태와 사용 건수 ▲진료환자(외래·입원·응급환자)의 숫자 ▲다양한 상병에 대한 정규 및 응급수술 건수(종양, 혈관계수술, 기능신경외과, 선천형기형, 두부외상, 뇌출혈, 척추, 말초, 감염 분야의 대수술과 소수술)의 기준 등이 있는데, 만일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수련의 질과 관련되기에 설령 전공의 배정을 받더라도 유능한 전문의를 배출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이런 애로를 알고 있으면서도, 비수도권 수련병원에 전공의 정원을 무턱대고 늘리기만 한다면, 이 분야를 평생의 직업으로 살아야 할 전공의 지원자는 아마도 여러 가지를 심사숙고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을 보건복지부도 깊이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진료과목별 수급 불균형, 즉 비인기과 정원 미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공의 정원 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2013년부터 매년 정원을 감축했다. 의사국시 합격자 숫자에 인턴 정원을 맞추고, 인턴 수료자와 레지던트 정원을 일치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
이에 따라 2013년 인턴 344명, 레지던트 202명의 정원 감축을 하기 시작하고, 인턴은 매년 68명, 레지던트는 2014년 146명, 2015년 141명, 2016년 48명을 감축했다.
그 결과 배출된 전문의는 2014년 3341명, 2015년 3338명, 2016년 3270명, 2017년 3308명 등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2018년에는 3073명으로 대폭 줄어서, 전공의 정원감축이 전문의 수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전공의 인력은 감소하고, 수련병원의 진료량은 오히려 늘다보니 전공의들은 장시간 진료업무에 시달리고, 이에 동반해 수련의 질이 퇴보되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미래의 삶과 전공의 과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게됐다고 보여진다.
필수의료 분야의 하나인 신경외과를 예를들면, 수련병원 중에서 각 연차의 최대 정원이 4명인 곳은 3명으로 줄어 들게 됐다. 그 결과 연차가 올라가면서 수련의가 점차 줄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16명이 수련을 받다가 최종적으로 12명으로 줄게 됐고, 진료량은 오히려 늘어 제대로 수련받기가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정원이 2명에서 1명으로 감축된 병원의 경우는 전공의 숫자가 절반으로 감축되어 수련교육은 물론 진료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했을 것이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전공의 지원 현황자료에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가 최근 5년간 전공의 지원율 12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외과와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결핵과는 정원미달이었으며, 특히 산부인과는 2017년도에는 정원을 충족했으나 2018년도부터 지원율이 80%대로 떨어졌다.
소아청소년과도 지원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결국 미달이 되고, 심지어 2021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는 30%대로 추락했다.
즉, 이른바 '피안성정재영' 전공의 과정도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원자가 넘치는 것은 상대적으로 노력한 만큼 보상이 있다는 믿음과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필수의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진료과목일수록 정원미달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전반적인 사회적 흐름과 격변하는 의료환경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회적으로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를 격려하고 감사해 하는 분위기인지, 필수 의료를 지킬 수 있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나 법적 부담 등과 관련된 여러 환경이 조성돼 있는지를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신현영 의원도 "고령화로 환자군이 변하고 있고 질병군 체계도 달라지고 있다. 전공의 정원 배정에도 이같은 현상이 반영돼야 한다"고 하면서 "전공의 정원 배정 과정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 정원 적정성 등을 검토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에게 과의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 들도 피부과 등 '비필수' 과목을 선호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게 받은 자료에도, 2018∼2022년 일반의가 새로 개원한 의원(일반의원)은 총 979곳 중에서 843곳(의원 1곳당 표시된 복수의 진료과목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 '피부과 진료'를 신고했다.
게다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려는 의대 졸업생이 점차 줄어 들고 있어, 2013년 3414명이던 전공의 1년차 숫자가 2022년에는 2877명으로, 537명이나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한 예로, 서울시 강남역 인근에 피부과를 진료과목으로 하는 의원에서 진료하는 10명의 의사 중에 피부과 전문의는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수련을 하고 전문의 취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전문의 수련를 포기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병원들이 전공의를 교육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다 보니 교육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이 때문에 일찍 개원가로 나가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술을 배우는 게 낫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했던 '전공의 정원 감축 5개년 계획'에 따라 동일하거나 더 많은 진료량을 이전보다 적은 숫자의 전공의가 감당하게 되어, 전공의들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수련은 못받고 대신 진료업무에 시달리게 됐다. 또 2018년부터는 정원 감축으로 배출되는 전문의 숫자마저 감소하게 됐다.
이처럼 필수의료 분야에 전공의 지원율이 감소하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는데, 필수의료 분야의 전공의 숫자가 부족하다고 비수도권 지역 수련병원에 전체 전공의 정원의 50%를 의무적으로 배정하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전문의 자격에 대한 의과대학생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는데도, 비수도권 지역의 수련병원에 전체 전공의 정원의 50% 의무 배정을 필수의료 대책으로 제시하는 보건복지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놓치는 우를 또 범하지는 않을까 두렵지는 않는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