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의사 부족이 아니라, 과소비야!

바보야, 문제는 의사 부족이 아니라, 과소비야!

  • 신동욱 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10.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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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earchWord'>신동욱</span> 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의협신문
신동욱 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의협신문

정부에서 갑자기 의대 정원을 증원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다. 뭔가 사전 조율이 된 것인지 보수성향의 국내 최대의 일간지에서는 연일 의사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고 있다. 

10월 13일에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대기일수가 99일이라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내더니, 10월 17일에는 '부산에 사는 이모씨가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는다'며 의사가 모자라서 지방에 의료 공백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누가 진료를 받아야 하는가? 전국의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4차 병원을 표방하는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각급 병원에서 진단이나 치료가 잘 안되는 환자들이 전문의들의 의뢰를 받아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곳인가?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뿐 아니라 웬만한 대학병원도 당일 진료가 대부분 가능한데, 서울대병원 대기일수가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인가? 맛집 앞에 줄이 길면 식당이 부족하니 식당을 더 지어야 하고, 요리사를 더 늘여야 하는 것인가? 

부산에 사는 이모씨는 왜 굳이 어머님을 모시고 세브란스 병원을 왔을까? 부산에 자궁내막암 수술하는 의사가 없어서? 심지어 저 일간지에서는 질환별 '명의'라는 섹션까지 만들어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부산대병원 부인과 교수님도 명단에 들어있다. 그 '명의' 교수님께 가지 않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온 것이 부산의 의사 부족 때문이라고?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에 잠깐이라도 살아보았다면 우리나라만큼 병의원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주치의 제도가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나라는 일단 기본적으로 주치의의 의뢰가 없으면 전문의나 상급병원은 이용조차 할 수 없다. 

주치의를 만나는 것도 다 예약을 잡고 가야 하는데, 응급한 것이 아니면 몇 일에서 몇 주씩 걸리기 때문에 감기 같은 웬만한 질환은 아예 예약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이니하면서 마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한 것처럼 호도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은 가벼운 감기 같은 증상 자체로는 의사를 만나기조차 어렵다.

정부는 OECD에서 의사수가 하위권이라서 의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의료 이용일수는 웬만한 국가의 두배 이상이 된다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관련칼럼). 

도대체 의사가 부족한 나라인데 의료 이용은 두 배? 돈을 펑펑 쓰는데 돈이 부족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소비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문제는 의사 부족이 아니라, 의료 과소비인 것이다. 주치의 제도와 같은 일차의료에서의 문지기 역할(gatekeeping)기전도 없고, 그나마 의료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존재했던 본인부담금(copayment)도 실손보험이라는 것으로 인해 무력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의료는 고도의 전문적인 서비스라서 어느 나라라도 비쌀 수 밖에 없는 서비스이다. 그런데 환자들은 너무나도 저렴한 의료비 본인부담금으로 인해 굳이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것으로도 병원을 간다. 

또한, 의료기관 선택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없는 상황에서 나와 내 가족만큼은 사소한 병이라도 빅5병원의 '명의'에게 진료를 받겠다는 국민성으로 인해 빅5병원은 환자가 미어져서 지방병원은 기본적인 의사인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관련 칼럼). 

많은 의료행위는 환자들은 비용부담이 없으면 무한정으로 수요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의 외래에는 두통환자들이 이래 저래 많이 오는데, 거의 대부분은 병력만 들어봐도 MRI같은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 

환자들 다수는 MRI가 얼마 안하면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하는데, 보험이 안되어서 100만원이 넘는다고 하면 꼭 안해도 되면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만일 의사가 그래도 찍어봐야 한다고 하면 찍을 사람도 꽤 될 것이다. 결국 의료수요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본인부담금이나 의사들의 공급자 유인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생산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은 이미 현상태로도 파탄이 예상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 이용 수요를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의료가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의료전달 체계를 만들 노력을 해야 정상이다. 또한 의료 공급자들이 꼭 필요한 분야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서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의료 문제가 생기자 결국 급하게 꺼내든 카드가 십 수 년 후에 의사 인력이 더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공급 확대 정책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나 미용을 하던지, 공급자 유인수요를 만들어서 환자들에게 더 많은 의료행위를 해서 수입을 유지하던지, 아니면 외국으로 떠나던지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 것이다. 의사수를 늘인다고 낙수효과로 기피과를 한다는 것도 망상이다.(관련칼럼)

다만 그 과정에서 망가진 의료 체계는 최소 수십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기왕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의사 공급을 늘이기로 작정했다면, 서울대 의대에 모든 정원을 배정하면 좋겠다. 그리고, 각 지역에 서울대병원을 짓고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서울대병원을 다니게 하면 다 해결될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니까. 이상한 생각인가? 의사수를 늘여서 작금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만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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