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태 내과의사회장 "韓 기소율 압도적, 중증·응급 다루는 내과 기피"
"지방의대 나와도 80% 떠난다…의대 정원보다 형사부담 개선 선결해야"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려는 가운데, 대표적 필수의료과인 내과에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 진료환경 개선을 우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내과의사회는 22일 제26회 정기총회 및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한 롯데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증·응급환자를 다루는 내과 의사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형사처벌을 성토했다.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2020년 사이에 사망으로 인한 의료분쟁조정·중재 신청 건 중 36.6%가 내과였다.
박근태 내과의사회장은 "내과는 복잡성과 응급성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는 특성상 민형사 책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진료과목이다. 현재 내과는 전공의 지원, 분과 전임의 지원 등을 봤을 때 마지노선에 다다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의료과실에 과도한 처벌을 지속한다면 방어진료를 조장함은 물론 필수의료가 예비의사들의 기피과목이 될 수밖에 없다"며 "내가 학생이라도 필수의료가 아닌 비급여 시장으로 갔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내과의사회에 따르면 2013년~2018년 사이에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에 달한다. 일본과 영국에서는 기소 건수 자체가 거의 없는데, 경찰 신고건수로만 따져봐도 일본이 연평균 82.5건, 영국이 연평균 24건으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박근태 회장은 "환자를 위해 열심히 진료보겠다는 사명감마저 짓밟아버리는 이런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은 필수의료를 하지 말아야 하는 환경이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의대정원 확대를 논의하기 전에 무너진 필수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특례법 제정"이라며 "고의에 준할 정도의 의료과실이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의료행위 외에는 보험가입을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확대 이슈에 대해서는 근시안적 정책이라 비판하며, 의대 정원 감축을 논의 중인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지역의대 활성화를 위해 정원을 늘렸으나,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는 여전히 부족한 데다 2050년에는 인구 대비 의사 과잉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박근태 회장은 "일본 역시 필수의료 종사 의료인을 줄어들고 있다. 외과의 경우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사람보다 은퇴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특히 지역의대 졸업생 중 80%가 도시로 떠나 의료격차만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이날 내과의사회는 ▲소신진료 보장하는 특례법 제정 ▲필수의료 붕괴시키는 형사처벌 중단
▲검증 없는 비대면진료 초진확대 반대 ▲동네의원 파탄내는 수가정책 개선 ▲일방적인 의대증원 졸속 추진 반대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특히 의대 정원 문제에 있어 "나라별 의료체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통계 수치 비교로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낙수효과같은 비현실적인 예측을 하기보다는, 타 의료선진국처럼 의료상황을 반영한 적정 의사 수를 모니터링하고 추계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