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

"가장 낮은 곳에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

  • 전혜정 보령 사보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11.0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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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최일영 교수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최일영 교수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최일영 교수

백발이 성성한 최일영 한양대 명예교수는 18년째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매주 4일씩 머문다.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순수한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발길을 떼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곳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며, 내가 있을 곳입니다."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최고령 봉사자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은 천주교 '예수의 꽃동네 유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의료시설이다. 이 곳에서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꽃동네 가족을 위한 전문적 의료 봉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치유와 임종자를 위한 호스피스 활동, 지역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에 대한 의료 봉사 활동을 위해 설립됐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꽃동네 자체적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형편으로, 현재 국비, 도비, 군비 등 정부로부터 재정 도움을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자원봉사자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이곳에 1940년생 초고령 자원봉사자, 최일영 교수가 머무르고 있다. 

한양대병원 내과를 2005년 정년퇴임한 최 교수는 그해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 내과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를 필요로 하는 다른 곳도 많았을 텐데 왜 음성꽃동네에서 18년 동안 봉사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주로 노숙인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많이 했는데 그들을 진료하다 보니 진찰만 해서는 환자의 병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방사선 검사시설, 병리검사 등 기본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서 이 곳에 오게 됐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보듬다

최일영 교수의 첫 의료봉사는 199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현지 선교사의 청원으로 17명의 의료진과 함께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봉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태국에서의 첫 의료봉사의 추억이 강렬했고, 이때 의료봉사의 매력에 빠졌다.

"당시 태국 치앙마이부터 중국까지 산속에는 10만여명의 산족(몽담족) 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50여명의 미국인 봉사자들이 그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여운을 느꼈습니다." 

이후 그는 기회가 닿을 때면 라오스, 몽골 등지를 찾아 해외 의료봉사를 했고, 국내에서도 여러 활동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국기독의사회 일원으로 서울시 문래동 '영등포 자유의 집' 노숙인들을 위해 야간 진료를 실시했던 때였다. 최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는 IMF 직후라, 노숙인들 1400여명이 모여 있었다"라고 말했다.
 

백발이 성성한 최일영 한양대 명예교수는 18년째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매주 4일씩 머문다.
백발이 성성한 최일영 한양대 명예교수는 18년째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매주 4일씩 머문다.

"한국기독의사회 소속 의사만이 아니라 제약회사, 방사선 차량 등 각계 각처에서 도움이 있었기에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
 
5년차가 됐을 때 노숙인 수가 600명으로 줄어들면서 진료소는 해산하게 됐다. 이후 그는 청주 성심노인요양원도 매주 1회 방문 진료를 했다. 

봉사야 말로 최고의 행복과 보람 

최일영 교수가 더 낮은 곳으로 향하고자 발길을 돌린 곳이 바로 인곡자애병원. 이곳에서 그는 의지할 곳 없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전문 의료봉사를 진행 중이다. 

인곡자애병원은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위치한 꽃동네에 있다. 이곳은 노숙자, 심신장애인, 정신요양, 아동시설 등 200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이들은 주로 서울역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최근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이 과정이 중단된 상태다.

최일영 교수는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2006년 입소한 김 할머니도 만났는데, 그는 2011년 9월 110세 나이로 소천하셨다. 할머니 장례식에서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80세가 넘는 나이에 지치지 않도록 만드는 봉사의 매력에 대해 그는 "이곳에서 봉사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환자들이 내 손을 잡고 빙그레 웃거나, 고맙다고 인사를 전할 때 행복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일영 교수는 이곳에서 100세가 넘어 영면에 드시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며 이들이 가시는 길에 축복을 빌어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도 전했다. 

"후배들, 가족들 등 많은 사람이 이제 힘든 일 그만하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나이가 있으니, 힘에 부치고 힘들 때도 있지요. 그래서 아직은 놓을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하곤 하지요. 봉사하는 삶을 통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어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건강만 허락하면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 특히 아들에게는 "돈을 버는 것도, 환자를 많이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봉사를 통한 내적 만족감을 쌓아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라고 봉사를 권하고 있다.
 
최일영 교수는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며 소감을 전했다.

"19세기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 삶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인데 이렇게 환대해 주시고, 매사 감사함을 표현하는 꽃동네 분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봉사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음성꽃동네가 꿈꾸는 것처럼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없이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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