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대 정원 이슈와 맞물려 의사의 높은 소득수준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병원을 열기 위해 필요한 장비, 시설 등의 비용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소위 '영끌'을 해도 턱없이 부족한 개원 비용에 고민하는 의사들에게 자칫 솔깃하게 들리는 제안이 있으니- 바로 투자 또는 컨설팅 명목으로 개원할 때 일정 금원을 지원 받고, 이를 병원 수익에서 나누는 방식이다.
아래 두 가지 사례를 함께 본다.
CASE 1. 재활의학과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3인은 확장이전하기로 하면서 비의료인인 A씨와 공동투자 약정을 체결했다. 이들 4인은 동등한 비율로 출자하고, 병원 운영으로 발생한 이익과 손해는 공동부담 공동분배함을 원칙으로 정했다.
A씨는 개원 이후 8개월 동안 1억 5000만원 가량을 받았으나, 수익금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며 이들 의사를 상대로 투자수익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CASE 2. 의사 B씨는 의료컨설팅 및 인력공급 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주식회사 C사의 최대주주이고, B씨의 배우자 D씨는 비의료인으로서 C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B원장은 E요양병원을 개설·운영하던 중 C사에게 병원 건물 및 대지를 매도하고, C사로부터 병원 건물을 임차하여 운영했다.
C사는 E요양병원의 노무관리, 재무관리, 시설관리 등을 대행하면서 사실상 병원 운영을 담당하는 한편, 각종 수수료 내지 월세 등 명목으로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고, 초과되는 금액은 B원장으로부터 차입한 단기차입금으로 처리했다.
그러던 중 C사는 다른 지역에 새로운 병원 건물을 추가로 매수했는데, 그 무렵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의사 F씨가 이 병원을 운영하기로 하고 C사와 E요양병원의 의료장비 등 시설 인수 및 임대차 등을 포함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은 F원장이 C사에게 병원의 재무관리 등 운영 전반의 권한을 일임해주면, 병원 수익금 범위에서 C사가 시설 인수대금 및 임대차보증금, 월세 등을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검사는 의사 B씨와 F씨, C사의 대표이사이자 B씨의 배우자인 D씨가 공모하여 의료인이 아닌 C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했다고 판단해 의료법위반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먼저 알아둬야 할 점은, 의사나 의사 아닌 자가 각 그 재산을 출자해 함께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고, 운영 및 손익 등이 의료인 아닌 자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동업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배돼 무효라는 점이다(2014다30568 판결 등 참조).
이때 비의료인과 의료인이 동업 등의 약정을 해서 의료기관을 개설한 행위가 의료법이 금지하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이른바 '사무장병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누가 주도적인 입장에서 개설·운영 업무를 처리했는지에 따라 판가름 된다.
첫 번째 사례에서 A씨는 병원 설립에 자금을 투사했을 뿐 병원 개설, 시설 및 인력, 재정 등의 관리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므로 의사들과 체결했던 투자약정은 의료법위반에 해당되지 않고, 따라서 투자수익금을 지급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투자약정의 내용을 세심히 살핀 뒤, A씨의 출자 및 배당비율이 1/4로 나머지 의사들과 동일한 점, A씨는 회계자료를 열람하고 보고받을 권리를 가지며, 세금에 대해서도 공동책임을 지는 점 등의 이유로 앞서본 법리를 적용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투자약정 자체가 강행법규에 위반해 효력이 없기 때문에, 약정이 유효함을 전제로 한 A씨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원고청구 기각).
두 번째 사례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관건은 신규 병원의 원장을 맡은 F씨가 실은 고용 의사에 불과하고, 실제 병원을 좌지우지한 주체는 C사였는지 여부였다.
F원장은 자신의 수익이 일정하지 않고, 수익이 없는 달에는 전혀 급여 명목의 돈을 가져가지 못한 점, 권리금 등 일부 비용은 이미 정산이 완료된 점, 병원 직원들 가운데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진료 관련 직원은 직접 인사를 담당했던 점 등을 적극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의료인 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을 개설했다고 의심할 정황을 보여주나, 그 반대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음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면서 검사의 입증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시했다(의료법위반 무죄).
만약 F원장이 사실상 페이닥터에 불과했다면, 그리하여 매달 꼬박꼬박 C사로부터 지급 받은 급여내역이라도 발견됐다면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개원 초기 비용 부담이나 운영 노하우가 부족해 겪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최근에는 네트워크병원을 중심으로 MSO회사와 계약을 맺고 경영·인사관리 등을 맡기는 추세도 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 두자. 개원 과정과 실제 운영에서, 의료인과 비의료인 중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가- 이 최소한의 원칙을 상기한다면, 병원 수익의 일정 비율을 나누는 대신 개원 시 보증금을 지원해 준다거나 최소 수익을 보장하는 등의 유혹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