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안협의체] 대한의사협회 제2기 협상단 단장을 맡게 된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양동호입니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해오면서 총 16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해오고 있습니다.
의협과 정부는 그간 많은 논의를 이어오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필수·지역의료의 붕괴'를 꼽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확충 대책의 하나로 의대정원 확대를 제시하면서, 지난 10월 27일부터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입학정원 확대에 관한 수요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만약 의대정원의 확대가 필요하다면 이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적정한 의사인력을 따져야 할 것이고, 미래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한 인력에 대한 과학적인 수급추계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동안 정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정원 정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확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의대정원에 관한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합니다.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각 대학과 그에 딸린 부속병원, 그들 지역의 정치인과 지자체, 모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발표되는 수요조사 결과는 현실을 왜곡하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변질할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은 의대정원을 늘려 학교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자랑하려 하고, 부속병원은 값싸게 부릴 전공의들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들떠있고,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는 자신들의 표로 이어질 치적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대정원 수요조사가 "고양이에게 얼마나 많은 생선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별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러한 단편적이고 편향된 수요조사가 그동안 정부에서 약속하고 주장해온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너져가는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는 의대정원 확대와 같은 불확실하고 지엽적인 대책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필수·지역의료가 기피되고 외면받고 있는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아야 달아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의대정원을 그리 늘려 의료비가 상승하고 건보재정 파탄 및 국민에게 부담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앞으로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지금까지 필수·지역의료를 무너뜨린 장본인인 정부가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또 다른 악수를 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정부가 9·4 의정 합의정신을 위반하고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감행한다면 우리 의료계에서도 2020년 이상의 강경투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정부에서는 의사 수가 OECD 평균인 1000명당 3.4명보다 적은 2.3명이라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보듯 우리보다 의사 수가 훨씬 많은 이탈리아나 유럽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를 보면 단순 의사 수 비교로는 국민의 의료 혜택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지표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어디서도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 같은 단순 비교만으로는 의사 수가 부족한지 충분한지 판단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진료 대기 일 수·건강지표·의료 만족도 등 다양한 지표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진료받기가 가장 쉬운 나라입니다. 당일 예약환자 외래 대기시간은 21분으로 미국의 24.1일 보다 훨씬 의료 접근성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물론 유럽은 더욱 길어집니다. 외래 진료 한 번 하려면 수 주간 대기하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10분 이내 동네의원에서 전문의 진료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지표상으로 보아도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가 14.7회로 OECD(5.9회) 국가 1위,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도 12.7병상으로 OECD(4.3병상) 국가 중 1위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 수 지표(인구 10만 명당)를 나타내는 '초과 사망률' 지표는 우리나라가 52명으로 OECD 국가 중 2위였습니다. OECD 평균(1499명)의 29분의 1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높은 의료접근성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의사부족 문제를 논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으며, 국토면적당 활동의사의 수인 의사밀도도 12명으로 세계 3위이고, 또한 우리나라 인구 증가율은 0.55%로 세계 평균 0.63 %보다 낮은 데 비해 의사 수 증가속도는 3.63%로 세계평균 1.86 %보다 훨씬 높아서 이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2030년대 중반에는 의사 수가 OECD평균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의대 증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문의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는 13년에서 15년 정도 걸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때는 이미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웃돌아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명 증가할 때마다 의료비가 22%가 증가한다는 자료를 보더라도 국민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강제지정제이기 때문에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보험에 강제 지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보험료증가는 눈에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럼 현재 아산 병원에서 개두술을 시행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이나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필수의료가 붕괴하고 있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이기 때문입니다.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만큼 위험 요소는 높은데 그만큼 돌아오는 보상의 적다는 것이지요. 올해 건강보험 의료비 인상률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6%입니다. 해마다 물가상승률이 5% 정도 이상이 되는데 의료비 증가율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의견은 무시하고 수요자의 의견만 반응해 2∼3%를 넘지 않도록 이렇게 수십 년간 지속하다 보니 기형적인 저수가가 된 것입니다.
현재 의료보험 수가는 원가의 70% 정도 된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외과 의사인데 외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수술비는 미국의 18.2% 일본의 29.6%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데다가 요즘 의료사고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1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나오는 판결은 물론이고 결과가 좋지 않다고 형사 처벌하는 판결도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누가 힘들여서 필수의료과를 지원하려고 하겠습니까?
정부 관계자분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우리가 머리를 맞대어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봅시다.
답은 간단합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제도로 바꾸면 됩니다. 자연스럽게 몇 년 안에 필수의료과로 의사들이 몰릴 것이고 이러한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살인적인 저 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사고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해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의료 환경 만들면 필수의료는 당연히 정상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료현안협의체가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대표들이 모여서 서로 간의 이해타산을 떠나서 국민건강을 위해 힘을 모으는 한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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