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사업은 애초에 목표가 비정상적이었다. 학계에 발표된 논문을 분석해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사업단은 대놓고 '보장성 강화'를 목표라고 떠들어댔다. 건강보험 예산을 따낼 구실을 만들 목적으로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한다니,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도 수 백 억원 예산을 퍼준 정부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에 비해 여러 조건에서 한의사들에게 유리하게 조정된 첩약 급여화 2차 시범사업이 내년에 실시될 예정이다. 대상질환이 기존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후유증 세 가지에서 요추추간판탈출증, 알레르기비염, 기능성소화불량 세 가지가 추가된다.
뇌혈관질환후유증은 65세 이상 연령제한이 폐지된다. 수가가 상향되고, 급여일수가 늘어나고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낮아진다. 한의사들이 강력히 반발해온 한약재 원산지 표기 의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면 과연 첩약급여화 대상질환의 근거의 상태가 어떤지 먼저 월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 한약 부분을 검토해봤다.
월경통 첩약급여화에 관련된 연구과제는 '월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로 경희대 한의대 이진무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2016년 6월 1일부터 2021년 5월 31일까지 5년간 총 8억 3000만원의 연구비로 진행됐다. 계획된 연구내용은 크게 4가지로 월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당귀작약산 임상시험,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 평가다.
8억 3000만원 중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갔을 연구는 임상시험이다. 연구보고서를 보면 임상시험을 실시했지만 결과 데이터나 분석을 제시하지 않았다.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부분 한 페이지짜리 사업성과 요약서에 "당귀작약산 투여군에서 투약 전과 대비해서 종료 시점에 월경통 통증 강도의 호전 등 유의한 지표들의 변화가 있었으나 군간 차이는 크지 않았고 당귀작약산을 투여받은 대상자들에서 중대한 이상반응은 없었다"라는 한 문장 언급이 전부다. 전문성이 결여된 매우 부적절한 문장이다.
월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짤막하게 소개된 임상시험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보고서보다 자세하게 아래 두 문장으로 소개했다.
"개발진인 Lee 등(2021)이 시행한 미발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경 2주기의 중재 후 당귀작약산군(실험군) 105명과 위약(placebo)군(위약대조군) 105명의 VAS의 변화량을 비교한 결과 실험군은 16.9±21 감소, 위약(placebo)대조군은 21.7±18.7 감소하였으며 Mean dierence 값이 -4.80(95% CI: -10.18, 0.58)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p = 0.112). 월경통과 관련된 진통제 복용량, 삶의 질, 부작용 등의 다른 지표들에서도 두 군간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p > 0.05)."
210명을 대상으로 했으니 한방 임상시험 중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다. 결과는 안전성과 여러 가지 유효성 평가 항목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통증수치(VAS)가 가짜한약을 복용한 그룹보다 4.80만큼 덜 호전됐다고 한다. 한약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고, 먹으면 오히려 나쁠 수도 있다는 결과다.
한약이 오히려 해를 끼치니 경제성 평가는 해볼 필요도 없고 연구비를 쓸 이유도 없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 사업성과 요약서에 다음과 같이 한 문장만 언급함: "경제성 평가 결과 위약 대비 당귀작약산의 점증적 비용-효용비는 -745,997,101원/QALY로 나타났는데 해당 연구는 당귀작약산의 약효 측정 기간이 비교적 짧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보다 장기적인 추적을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라고 한 문장을 담았다.
그렇다면 월경통 임상진료지침에서 당귀작약산에 대해 어떻게 권고했을까?
평가대상에는 직접 실시한 210명 규모의 임상시험과 1997년 일본인들이 발표한 40명짜리 임상시험 두 가지가 포함됐다. 물론 일본의 연구결과는 다른 연구팀에 의해 재검증된 적이 없고, 효과가 없다고 나온 이번 한의사들의 연구가 후속 연구의 전부다.
임상진료지침에는 "당귀작약산은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한의사의 임상현장을 조사한 결과 원발성 월경통 환자의 치료에 다빈도로 사용되고 있고 한약 군에서의 중대한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위해보다는 잠재적인 이득의 효과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며, 한의과대학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신뢰할 만한 처방으로 판단된다"라며 두 번째로 높은 B등급으로 권고했다.
한방 고서를 인용해서 적어 놓은 교과서와 20여 년 전 일본에서 발표한 40명짜리 임상시험 결과만 내세우며 권고하려면 210명짜리 임상시험과 경제성 분석은 뭐하러 실시했나?
게다가 이들은 임상시험 결과를 은폐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과제 종료 후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월경통 임상진료지침의 한약 관련 권고안은 총 30개였는데 "하지 말라"는 권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인용한 임상시험 논문을 직접 확인해보면 데이터가 효과과 없음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교과서 수록 처방이라는 이유와 한의사들의 빈번한 사용 등을 이유라며 권고했다.
한약에 대한 근거 평가에 임상연구를 총 103건 인용했는데, 중국어가 아닌 연구는 위의 미발표 임상시험 하나와 일본, 대만, 한국에서 실시된 임상시험 각각 한 편씩이었다. 103회의 인용 중 98회(95.1%)가 중국어 논문이었다.
중국의 논문 조작 문제는 학계에서 계속 지적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신약 허가 관련 임상시험 1,622건을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조작된 데이터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을 정도로 임상시험의 진실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4년에는 중국 학술지에 발표된 840건의 침술에 대한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RCT) 논문의 결론을 분석한 결과, 99.8%가 효과가 있다는 결론이었다는 사실이 발표되기도 했다. 게다가 시진핑은 한의학을 "중화 문명의 보배"라고 치켜세우고 있어서 중국인들끼리 보는 논문은 참고할 만한 근거자료가 될 수 없다.
수 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직접 실시한 임상시험조차 내팽개치고, 중국어 논문을 끌어 모아서 무조건 한약을 권고하는 임상진료지침은 한의사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갈취하는 사기 수단 외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관련 연구사업을 모두 엄격하게 감사해서 제대로 실시하고 완수하지 않은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비 환수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임상진료지침도 오류의 정도에 따라서 수정하게 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대해서도 월경통처럼 근거가 엉터리라면 2차 시범사업에서는 제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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