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환자, 심정지에서도 소생시켰는데 "입원실 전등 밝아서 실명" 주장
法 "볼 것도 없다" 기각했지만…"소송 자체로 부담 상당, 점점 늘고 있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환자를 살려내고 심정지에서도 소생시킨 응급실 의료진이 2억원에 달하는 배상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소송 사유는 회복 후 '눈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9년 9월 12일 새벽, 교통사고를 당한 A씨는 모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고 B 의사의 집도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당시 의료진은 골반 골절, 장간막 손상, 폐 타박상 등을 진단하고 복막전 패킹, 혈관 결찰, 방광 봉합 수술 등을 시행했다.
수술로부터 열흘 후인 9월 22일 A 환자는 산소포화도 저하에 이어 심정지까지 발생했는데, 의료진은 인공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자발 순환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소생으로부터 사흘 후 9월 25일, 의료진은 동공 반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왼쪽 눈 동공의 하얀 이물질을 발견했다. 협진을 의뢰받은 해당 병원 안과는 좌안 각막궤양 및 점막 각막염으로 진단했다.
A 환자의 왼쪽 눈 교정시력은 사고로부터 3년 전인 2016년 기준으로 1.0이었으나, 현재는 0.16(근거리 0.2)이다. 이에 A 환자와 그 모친이 B 의사의 주의의무 소홀로 A가 실명에 이르게 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A 환자에게 1억 6500만원을, 그 모친에게 1000만원을 배상할 것을 청구했다.
B 의사가 수술과 치료를 하면서 신체의 다른 부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했고, A 환자의 눈이 강력한 불빛에 노출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은 지난 13일 "원고들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진료 기록에 따르면 A 환자의 눈은 9월 25일까지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A 환자의 글래스고우 혼수척도(GCS) 중 개안반응 점수는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1점이었다. 재판부는 A 환자가 전혀 눈을 뜨지 않는 상태였으므로 불빛에 눈이 상할 리 만무하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의 주장처럼 병원 외상 중환자실의 조도가 의료상 기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도 없다"며 "A는 교통사고로 다발성 외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사고 당시 좌안에 각막 창상이 발생했고 시간이 지나 각막 혼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한편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27일 긴급기자회견을 여는 등 과도한 형사처벌과 배상 책임을 성토하는 응급의료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이번 사건을 두고 "차라리 시력저하의 책임을 다친 원인인 교통사고 차주에게 돌렸다면 모르겠다. 응급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비록 기각으로 판결이 났어도 의료진은 판결이 나기까지 4년여간 큰 부담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것으로, 소송 자체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고 평한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들을 부추겨 말이 안 되는 소송까지 일단 제기하고 보는 브로커들이 최근 많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