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정부 방향성 담은 자체 보고서 제작
심장·척추 질환에 묶음지불제 적용 방안 등 세 가지 제안
정부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대전제로 지불제도 방식 다양화를 예고한 가운데, 산하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묶음지불제' 방향성을 담은 보고서를 19일 공개했다. 총액계약제로 대표되는 '묶음지불제'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보고서를 넘어 제도화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심평원은 보고서를 통해 ▲신포괄수가제 대상 질환인 심장질환 및 시술, 척추관절질환 및 시술 ▲포괄수가제 대상 질환 ▲관절 전문병원에 '묶음지불제'를 적용해볼 수 있다는 구체적인 대상까지도 넣었다.
현 정부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앞세워 행위별수가제의 한계를 꾸준히 지적하며 새로운 지불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22년 감사원이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도 독일, 프랑스, 대만처럼 '묶음' 형태 진료비 지불방식의 필요성이 등장했다.
심평원의 연구도 이 같은 정부의 방향성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위한 지불제도 연구: 묶음지불제 중심으로(연구책임자 김지애 부연구위원)'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현재 우리나라 지불제도 성과와 한계, 묶음지불제 적용 방안 등이 들어있다.
우리나라 지불제도는 의료행위마다 수가를 책정하는 형태인 '행위별수가제'가 기반이다. 전체 지불보상 금액 중 93%를 차지하고 있는데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통해 항목 간 수가 불균형을 완화하고 해마다 공급자와 보험사의 협상으로 수가 인상폭을 정한다. 여기에다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신포괄수가제, 적정성평가 결과에 따른 가감지급사업을 추가로 운영하고 있다.
연구진은 "행위별수가제 중심의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서는 급성기 전후의 분절적 의료서비스 제공, 상급종병으로 환자 쏠림 현상, 의료전달체계 간 서비스 연계 부족, 진료 취약지역 발생 등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라며 "특히 의료 이용량 증가에 대한 대응기전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포괄수가제는 행위별수가 보다 약 30% 높은 수가를 적용하고 있지만 포괄수가제 이후 의료비 감소와 같은 정책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라며 "분리청구, 업코딩 같이 실제 환자의 건강 상태나 진료를 왜곡시키는 청구 행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신포괄수가제 역시 총의료비, 재원일수는 제도 시행 전보다 증가해 제도 도입 목적인 적정의료이용 유도의 달성 여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급격하게 늘고 있는 의료비를 봤을 때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불제도로 개편하거나 다양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 중에서도 묶음지불제는 이런 고민 속에서 등장한 지불제도 형태 중 하나다.
묶음지불제는 건강 상태나 중재 과정의 연관성에 따라 일련의 서비스를 (에피소드로) 묶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즉, 목표가격을 사전에 제시하고 사후에 조정하는 기전이다. 협력과 조정의 촉진, 질 개선, 효율성 향상을 정책적 목표로 두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데 CMS 혁신센터를 통해 광범위하게 시도하고 있다.
연구진은 세 가지 형태의 묶음지불제 적용 안을 제시했다. 우선 신포괄수가제 대상 질환 중 심장질환 및 시술, 척추관절질환 및 시술에 묶음지불제 요소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의료비용 증가 통제 기전을 보완하고 보다 정확한 목표가격으로 의료공급자가 통제할 수 없는 비용 발생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재정적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예상이다.
또 "사후 조정을 통한 재정적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건강보험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고 행위별수가제에서 지불할 수 없던 서비스에 대한 지불이 된다"고 덧붙였다.
포괄수가제 대상인 7개 질환에 묶음지불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있다. 외래와 입원(수술), 퇴원(수술) 후를 포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외래 전이 감소, 과소의료서비스 제공 감소의 개선 효과를 예측했다. 이 밖에도 전문병원 중에서도 관절전문병원에 묶음지불제를 적용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다만 연구진은 묶음지불제 실행을 위해서는 임상 에피소드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목표가격의 정확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봤다. 또 묶음에 가장 적합한 치료 에피소드 유형 결정, 환자 중증도 평가를 정확하게 하기 위한 진단 및 상병코드 정확도를 위한 모니터링도 충분히 고려할 점이라고 짚었다. 의료계의 수용과 시행을 위해서는 지불액의 정확성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묶음지불제 시스템으로 치료받는 환자가 치료 중 의료공급자를 바꿀 때를 위한 지불금의 공정 분배를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라며 "공급자 사이 계약과 협업 관계를 지원하는 통합 전달 시스템도 필요하다. 묶음지불을 받아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 병원은 계약, 청구 및 시스템의 설정을 위한 기술 역량의 확장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목표가격을 정해 놓고 사용량을 통제하는 식의 '묶음지불제'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안건. 연구진도 의료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지불제도 개편은 시간을 들여야 하며 의료계의 충분한 설득과 수용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또 "지불제도 전환은 장기적인 호흡으로 일관성 있게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추진 동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라며 "지불자, 의료공급자, 의료이용자로부터 이끌어낸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자와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체계적으로 일관적으로 이끌어나갈 전담조직 없이는 지불제도 개편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지불제도 개편의 절박성을 공유하고 국회의 관심과 건강보험에 대한 감독 관리 강화가 필요할 수 있다"라며 "무엇보다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와의 지속적인 논의, 설득, 참여를 통해 지불제 개편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