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숙경 회원 43주기, 다시 돌아보는 '의료인, 의료과오, 의료소송'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반드시 해낼 것"
"이제 그만 불러주세요. 밤 늦게 치료해 준 죄 밖에 없어요."
1981년 1월 8일, 한밤 중에 내원했던 응급환자 사망사건으로 의료소송에 시달리던 30대 여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경 조사결과 해당사건에서 의사의 과실이 없다는 점이 수차례 확인되었지만, 환자 가족의 난동과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이를 견디다 못한 의사는 짧은 유서 한장만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해당 사건은 당시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의사신분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대책마련을 위한 논의가 물살을 탔다. 정부는 당시 내무부장관 명의로 담화문을 내어 "선량한 의료인은 법으로 보호하며, 의료사고 보상을 빙자로 한 폭력행위 등에 엄중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 의료소송 부담 이른바 의사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의료계의 화두로 존재한다. 이후 크고 작은 제도 개선작업이 이뤄졌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한민국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는 연 평균 754.8명 수준이다. 근무일수 기준으로 매일 3명의 의사가 의료과오를 이유로 검찰의 기소장을 받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의사 기소 건수는 영국의 580.6배에 이른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높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며, 이중 25%가 금고형 이상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형벌화 경향을 지적하며, 필수의료 회생을 위한 핵심과제이자, 안정적인 미래의료 체계를 위한 열쇠로 의사 사법 리스크 완화를 꼽고 있는 이유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치료를 하려다가 생긴 과오로 의사를 구속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며 "이는 필수의료는 물론 대한민국 의료를 망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사 사법 리스크 해결은 정부의 의무이자 임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과의 일문일답>
의사 과잉처벌화 경향, 무엇이 문제인가.
최선을 다해서 진료했는데 그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의사를 구속하고 형사처벌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필수의료는 물론 대한민국 의료를 망치는 일이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로 행해진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한다 하더라도 사망과 같은 치명적 결과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의료행위가 가진 내재적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과정에서의 고의 없는 오진이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등에 엄격한 법의 잣대, 특히 형법을 적용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본질과 한계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료행위 중 생긴 과오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배상이나 보상을 통해 피해 회복을 시키는데 중점을 둬야지, 의사의 죄를 묻고 구속하고 형사처벌할 일이 아니다.
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인에 대한 형사고소는 피해를 입었다거나 합리적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민사적 배상을 얻고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의료분쟁 해결을 위한 현행 제도가 불완전하다는 반증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그 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운전자의 보험가입을 조건으로 형사면책을 인정함으로써 운전자의 보험가입을 유도하고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사회적 분쟁비용을 감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처벌 중심의 정책효과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인정하고, 의료사고에 의해 피해를 입은 환자를 보호하면서도 사회적 분쟁 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해 일정한 요건 하에 형사소추의 특례를 주는 입법이 필요하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운전자에 일방적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아닌 것처럼,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또한 의료인에게 일방적으로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다.
교특법의 경우 운전자보험 가입을 조건으로 한다. 형사책임을 면하는 대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의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의료인의 책임보험이나 공제가입 등이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책임보험 가입 등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의료인에 대한 보험이나 공제 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의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강제화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정책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협회 내부적으로는 회원 보험료 부담 최소화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회장 취임 후 협회 수익사업을 다각화해 지난 3년간 82억원에 가까운 순수익을 기록했다. 협회 수익사업을 지속적으로 활성화 해, 이를 활용하여 회원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 시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엔 될까.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매번 의사 특혜법 주장 등에 발이 묶여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엔 다르다. 임기 초부터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해 해당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고, 지난 3년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꾸준히 만나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제는 결론을 낼 때다. 의료인 법적부담 완화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정부 입장에서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임무이자 의무다. 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