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동 성균관의대 석좌교수(강북삼성병원 소아청소년과/연세대 명예교수·소아과학교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발표를 통해 일어난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휴학으로 시작된 의료계의 대응은 정부의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합리적이다.
응급실 뺑뺑이·소아청소년과 오픈런 등등 필수의료 붕괴를 초래한 주범 역시 대한민국 행정부다. 필수의료의 붕괴를 예방하기 위해 정책을 바꿔달라는 의료현장의 목소리에 무려 20년 이상 굳건히 귀를 닫고 있던 행정부는, 막상 필수의료 붕괴가 현실화되자 이를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 개혁이라는 신의 한수로 타개하려 했다.
예방할 수 있는 사태를 끝까지 방치하다가, 행정부에 기생하고 있는 몇몇 의료관리 학자의 맞춤형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모든 상황이 의사 수 부족이고, 의사 수 부족은 의사들의 반대로 지금까지 저지되어 의대 증원이 가로막혀있었던 데에 기인한다는 돌파구로, 면피를 위해 기획한 대한민국 행정부는 그 사악함이 하늘을 찌른다.
필자가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환자 1명을 진료하는데 1시간도 부족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1시간이 넘게 소요되던 진료 시간을 5분, 아무리 길어도 10분 정도로 줄일 수 있었던 건, 환자 한 명을 1시간씩 보고 있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 때문이었다. 진료를 1시간을 보던, 5분 이내에 끝내던, 환자의 건강을 지켜주는데 아무 차이가 없다면, 5분 이내에 끝내는 게 정답이다. 그 5분 동안의 주어진 시간에 환자의 건강을 책임져줄 수 있는 혼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 이외의 어느 나라 의사도 이런 능력을 갖춘 의사는 없다. 과거에 미국의 의사들은 하루에 50∼60명을 소화해내는 한국의 진료 시스템을 극히 후진적인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지금은 짧은 진료 시간에 환자의 건강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한국의 의료 시스템 그리고 한국의 의사들을 후진국 의사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아직도 환자 한 명을 소화해내는 데 1시간이 걸린다. 그런 이유로 예약 환자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어, 당장 아픈 환자라도 예약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 것은 일상이 되어있다. 한 시간 진료를 5분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시스템 조정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진찰과 문진 시간을 단축하고, 진단에 핵심적인 검사들을 단시간에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된 능력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의료시스템이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3분 진료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 우수한 진료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미국이나 어느 선진국의 의사도 하루에 15명 이상의 환자를 소화해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고소득을 보장받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소득이 높으면 그만큼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시장 원리가 통하기 때문이다.
요식업을 하던, 연예인을 하던, 금융업을 하던, 대기업에서 최고의 경영을 하던 그 분야의 최고가 되면, 이들의 소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보상으로 돌아온다. 국민건강보험하에서 의료인은 아무리 세계 최고의 의료를 제공한다고 해도 약간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환자들의 건강 회복에 대한 보람으로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돈벌이를 위해 의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선언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음속 깊숙이 새기면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하게(?)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나 놀리고 있는 보건 행정가와, 정책 입안자들은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서, 의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현장의 울부짖음을 20년 이상 방치해왔다. 국민의 혈세에서 엄청난 연구비를 가져다 쓰면서, 정부 용역과 연구비에 기생해서, 정부가 그동안 잘못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제공해주고 있는 의료관리학자들은, 막상 환자의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의사의 노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빨아내서 저비용 고수익 구조를 만들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본인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생각에만 몰입해 있다.
소아청소년과 붕괴·필수의료 붕괴·응급실 뺑뺑이가 행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의대 입학 증원을 막아온 의사집단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면피용 전략을, 총선전략과 연계해서 받아들여지는 나라가 선진 대한민국의 실체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의 저항은 어떤 협박으로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진정성이 없는 면피용 탁상 회의 대신에,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진정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장에서 생명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밤새기를 밥 먹듯 하고 있는 의료진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국민 건강을 위해 해야 될 일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비용 의료에 이만큼의 국민 건강을 지켜내 왔던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에게 감사함 대신 악마화를 선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우리 의료를 어떻게 끌고 갈지가 뻔히 보이는 오늘의 사태에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의료대란의 모든 책임의 중심에 대한민국 행정부가 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필자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정권의 필요에 의해 의대 신설을 남발하였던, 과거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의료 정책은 첫단추부터 아주 잘못 끼워져 왔다. 충분한 교육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정원 50명 이하로 유지되고 있는 의대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교육 여건이 훨씬 못 미치는 대학이 200명 이상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뻔뻔함을 드러내 보이는 의대까지, 이런 기형적인 정책 결정 과정이 존재하는 한,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끼울 기회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결국, 감당하지 못할 결과가 현실화되어야 자각하게 되는 한심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의대 증원은 국민 건강의 증진이라는 소명에 기초하여 처음부터 다시 결정되어야 한다. 행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을 면피하기 위해, 그리고 총선용이라는 사악한 내심에 기초한 결정은 평생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숭고한 마음을 지키면서 살아왔던 참 의료인이라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의료대란, 앞으로 닥쳐올 진짜 의료대란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은 의사들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다. 양식 있는 의사들은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과 맞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의료대란을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성전으로 생각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의사들은 모두 하나의 생명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일이 일상인 전사들이다. 이 전쟁은 국민에게 최고의 의료를 되돌려 드리기 위해 의사들이 감당해야 할 마땅한 사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