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정치권 비판 한목소리 "내부 단속 위한 메시지"
"내부 비판 잠재우고, 30%대 지지율 지키려는 명백한 선거용"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을 훌쩍 넘었다. 5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이들은 수련 받던 병원을 '자유의지'로 떠났다.
정부는 이를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각종 행정명령으로 응수하고 있다. 원칙대로 한다며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예고, 실제로 옮기고 있다.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등 각종 행정명령을 내리며 의료계를 압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돌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약 50분 동안 40여 쪽에 달하는 글을 읽었지만 내용은 그동안 정부가 반복적으로 해왔던 말들과 대동소이하다. 오히려 대통령이 2000명 증원 확대의 당위성, 전공의 행정처분 계획 등을 직접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정부의 방향성을 공고히 했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일주일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던 내용을 굳이 왜 대국민 담화 형태로 발표해야만 했을까.
의료계와 정치권은 명백한 '선거용'이라고 평가했다. 의대정원 정책 추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와 여당에게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을 '의료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이에 맞선 의료계 반발도 거세졌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는 돌아올 기색이 전혀 없는 데다 이들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의대교수들도 사직서를 내고, 단축근무를 선언했다. 나아가 개원의도 이달부터 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 40시간 근무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다른 사회적 현안과 맞물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모습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로 지난달 25~29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6.3%로 5주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조사에서 부정 평가는 60.7%로 직전 조사 때보다 0.6%p 상승했다. 반대로 긍정적 평가는 36%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자 국민의힘 안에서도 '2000명 증원 확대' 사안을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86운동권 출신 및 개혁성향의 국민의힘 후보자 연대인 '체인저 벨트'는 13명 후보의 실명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해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고 챙겨서 현 상황을 진정시키고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선거에 도움 되지 않는다며 탈당하라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서울 마포구을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함운경 후보(국민의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쇠귀에 경 읽기"라고 평가절하하며 "당원직을 이탈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부 비판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접전지일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결국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남아 있는 30%대의 지지율을 지키고 대통령을 향한 내부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게 정치권과 의료계의 시선이다.
야당 관계자는 "(대국민담화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여당에서 사퇴하라, 무릎꿇고 사과하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는 야당이 사퇴하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여론이 그러하니 만약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면 전통적 지지 기반이 붕괴된다. 정치적으로도 접는 모양새가 되니 있던 민심도 잃을 수 있다"라며 "이미 40개 의대에 정원 배정을 한 데서 2000명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내부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니 대통령의 의지를 대국민담화로 확고히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형태로 내부를 향해 메시지를 냈으니 더 이상 여당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50분이 넘도록 발표한 내용은 그동안 정부가 이야기했던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었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음에도 대국민담화라는 형식을 빌려서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한 의사단체 임원도 "의대정원 확대를 놓고 2월부터 지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특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대국민 담화를 낸다는 게 뜬금없다"라며 "그냥 평소처럼 국무회의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무는 행정부처에 맡기면 되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50분에 걸쳐서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었다. 담화 발표 과정도 대통령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반증"이라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이후에도 국민의힘 내부에서 탈당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담화문 내용과 방식은 대통령이 선택했겠지만 정칙적으로도 실패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