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가 늘어나도 수입 감소 없으니 걱정마라"
"의료계 반발 대응≒건폭 척결…기득권 카르텔"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담화. 윤 대통령과 카메라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자 배석, 질의응답 없는 대통령의 '읽기'는 50분간 계속됐다.
주말 밤 사이 급작스러운 '대국민 담화' 발표 소식에 의료계 내부에서는 '2000명 조정설', '대통령 사과설' 등이 난무했다. 의-정 간의 대화 시발점이 될 수 있단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기존 입장 되풀이를 조금 더 힘 있게 읽어내려가는 데 그쳤다.
대통령이 직접 읽었던 몇 몇 문장들은 의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적 발언은 의-정 간의 대화에 오히려 장애가될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번 사태 시작에 대한 몰이해와 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나도 수입 감소 없으니 걱정마라"
윤석열 대통령은 전공의들의 대거 사직을 '불법 집단행동'이라고 명명하면서 "오로지 의사 증원을 막기 위해서다.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며 "전체적인 의사들의 소득은 지금보다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의료계의 반발이 장래 수입 감소에 걱정에서 나왔다는 해석이 나온 것. 여기에 수입이 줄지 않을 것이니 의료현장에 복귀하라는 명령이 이어진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수입 감소에 대한 우려'라고 판단한 것으로, 의사 반발에 대한 노골적 폄훼라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던 전공의, 의대 교수들은 사직의 변을 통해 졸속·강행 정책에 대한 의료 교육의 질 우려와 함께 정부의 '낙수론'에 따른 자긍심의 저하, 정부와 언론으로 인한 '의사 악마화' 등을 사직의 직접 원인으로 짚은 바 있다. 공개 사직 의사를 전했던 이들은 대부분 정부에서 이번 정책을 통해 확보하려 한다는 필수의료과 종사 의료진들이었다.
의료계 반발 대응≒건폭 척결?
윤 대통령은 의료계 반발에 대한 정부 대응을 이야기하면서 "2022년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 당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타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총 932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선량한 화물차 기사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결국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건설 현장 건폭에 대응할 때도 노조 단체와 지지세력들은 정권 퇴진과 탄핵을 외치며 저항했다. 만약 그때 물러섰다면 건물과 산업시설 건설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지면서 경제와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반발에 대한 정부 대응을 2022년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와 건설현장 건폭에 대한 대응에 비유한 것이다. '건폭'은 건설현장 폭력행위를 줄인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동조합을 겨냥해 발언한 데서 시작됐다.
의사들의 자율적인 사직 행렬을 '건폭'에 비유, 대통령과 정부의 '더 한'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나도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지 않다"
윤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국민이 여러분에게 거는 기대와 여러분의 공적 책무를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의료현장으로 조속히 복귀해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제재·처벌' 발언은 의료진들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다시 한 번 확고히한 것이다. 의역하자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라는 얘기로, 의료계에는 협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의사들에 '공적 책무'를 강조한 부분은 2020년 의료계 총 파업에 불을 지핀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의 '의사 공공재'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의사 인력을 공공재로 보는가?"라는 질의에 고위 관료는 "의사는 그 어떤 직역보다 공공재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정부가 의사들에 '공적 책무'를 요구하는 일은 흔하다. 의료계는 국가가 의사 교육, 수련, 개업 취업, 의료행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책임도 지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국민의 보편적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카르텔"
윤 대통령은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독점적 권한을 무기로 의무는 팽개친 채 국민의 생명을 인질로 잡고 불법 집단행동을 한다면 국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특권을 갖고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고, 그것이 국민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국민의 보편적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단행동을 하겠다면 증원을 반대하면서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하라"고 발언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료계를 향해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쓴 것. 앞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의사 집단'이라는 표현, 윤 대통령의 '카르텔'에는 의사에 대한 적개심이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대통령의 부정적 표현은 의사를 '악마화'하고 있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앞서 유사한 내용으로 이뤄진 한덕수 국무총리 대국민담화(3월 18일) 직후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정부의 행태"를 꼬집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