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 책임질 젊은 의사 '범죄자'·돈만 보는 이기적 집단 '낙인'
꿈 짓밟혀버린 전공의, 협박하거나 정부서 급여 지원한다고 돌아오지 않아
젊은 의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학도들은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가?
요즘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물음표들이다.
필자가 의과대학 교수로 30년 이상을 교육하면서, 최근 10년간 만난 의과대학생들은 그 이전의 학생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총명했다. 이들이 그 어려운 교육과정과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훨씬 더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되기에 의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필자가 진료하는 한 환자의 아버지는 서울대 의대를 그만두고,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애플사에서 연 100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을 올리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 이 분이 자신의 아이를 한국에 와서 수술까지 받고 가게한 이유는 그런 고액 연봉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미국의 의료비가 비쌌던 이유도 있고, 한국의 의료를 그만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필자가 교육을 담당했던 연세의대 졸업생 중 미국에 진출한 여러 제자는 미국의 명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당당하게 교수로 재직하면서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미래 대한민국의 의료를 책임질 이 총명한 대한민국의 젊은 의사들, 그리고 의대생들을 한순간에 불법 사직을 단행한 범죄자로,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이기적 집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법 집단행동까지 불사하는 사악한 존재들로 낙인을 씌우고 있다.
일반 대학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학사 일정으로 개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6년간의 교육과정과, 혹독한 수련 과정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는 크든 작든 꿈이 있다.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혹독한 수련 과정에 있었던 한 선배의 일상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일주일 이상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당직을 서는 남편에게 첫 아이의 돌에 아이의 얼굴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서, 아이를 들춰 없고 당시 허름하기 짝이 없었던 병원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던 모습. 그 식사 중 울린 당직 콜을 받고, 먹던 밥을 남겨둔 채 허겁지겁 뛰어가던 모습. 그걸 당연한 듯 남은 식사를 대충 마치고, 하염없이 아이를 업고 돌아가던 선배 부인의 뒷모습. 그 모습은 필자가, 그리고 필자의 선배와 동료가 그리고 후배들이 지금까지 겪어왔고, 겪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 혹독한 과정을 기꺼이 겪어내기로 하고, 수련과정을 선택한 젊은 의사들 모두는 크든 작든 미래에 대한 꿈이 있다.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와 같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겠다는 꿈. 한국의 의료를 선진 의료로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꿈, 세계적인 연구 결과로 인류의 건강 수준을 높이겠다는 꿈.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 의료 소외지에 의료의 혜택을 못 받아서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겠다는 꿈,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건강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고 싶은 꿈,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많은 환자의 곁에서 그들의 곁을 지키며, 한순간의 고삐도 놓지 않고 함께 싸워 회복시키시겠다는 꿈, 선배들과 동료와 후배들 모두 함께 선진 대한민국에 최고의 의료를 만들겠다는 꿈, 우리의 젊은 의사들은 모두 이런 꿈들을 먹고 살아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들의 이런 꿈들을 한순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렸다.
필수의료 붕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으로 대변되는 현 의료 상황은 대한민국 정부의 작품이다.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현장의 의료인들이 이런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목을 놓아 외쳐왔던 시간이 10년이 넘었다. 일부 필수의료과에서는 벌써 20년 전부터 절규해 왔던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꽉 틀어막고 있던 정부가 이 모든 책임이 의사가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호도하면서, 연 2000명의 의대 입학 정원을 증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거짓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일이 힘에 겨워, 급여가 부족해서 병원을 사직하지 않았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께서는 5대 병원장과의 만남에서 전공의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니,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았다. 일이 힘들어서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또 급여가 부족해서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그런 이야기가 통할지는, 현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니다. 또 꿈을 짓밟아버린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에, 협박이 두려워서 또는 월 100만 원의 급여를 정부 재정에서 추가로 지원한다고 해서 돌아올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다.
젊은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젊은 의학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들 역시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꿈을 먹고 산다. 그 꿈을 앗아간 정부의 소망대로 젊은 의사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한 야당 국회의원의 솔직한 증언대로, 의대 증원은 지금까지 정치적 목적으로 필요할 때만 탁상 위에 올라왔다. 코로나19로 전 의료기관의 모든 의료진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의사들이 목소리를 낼 정신이 없을 것이란 이유로, 또 의사들이 이 위급한 시기에 환자를 떠나겠다는 목소리를 낼 경우 이를 쉽게 잠재울 명분이 가능하단 이유로, 10년 동안 4000명 증원을 결정한 전 정권의 사악함 역시 단지 정치적 목적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번을 포함해서 대한민국 행정부는 의대 증원 또는 의과대학 설립 허가들을 단 한 건도 빠짐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단행하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의료를 개혁한다며 지금까지 의료의 모든 문제가 의사가 부족해서 발생했다거나, 의대 증원은 의사집단이 반대해서 지금까지 못했기 때문에 필수의료 붕괴가 초래되었다거나, 의사가 남아돌면 필수의료하는 의사의 숫자가 채워지는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거나, 그러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지금까지 철저히 묵살했다.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결하고 싶지 않았던 보건복지부와, 보건복지부에 기생해서 국민의 혈세에서 지급되는 정부 연구비를 독점하여 맞춤형 연구결과를 제공하는 어용 보건의료정책가들은 현장 의료진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철저히 짓밟아버렸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필수의료 붕괴에 책임이 없다는 목소리를 내며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일에만 올인하고 있다.
저급한 면피용 논리로 무장한 채 정치적 목적으로 결정된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이번에도 이 결정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정치적 목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합이 안 되기로 그렇게 유명한, 서로 저마다의 밥그릇이 다른 의사집단이 한목소리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선행되었다면, 증원에 반대할 의사는 있을 수 없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은 허울 좋은 포장일 뿐, 의료를 살려야겠다는 절실함은 필수의료 패키지의 어느 한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건강은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의사들이 신바람 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전공의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뿌듯함으로 환자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현장의 의사들, 필수의료에 자신의 삶을 모두 갈아 부은 필수의료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 회복만이 유일한 보람이고 행복이다. 이 현장의 의사들이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울부짖음에 철저히 귀를 막고 있던 대한민국 행정부가 이번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의대 증원이라는 신의 한 수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의료에 되돌릴 수 없는 대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의사들의 반대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국민의 혈세로 모든 광고판을 동원해서 국민 여론을 호도할 수도 있고, 의사집단을 특권층으로 부나 누리고 사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할 수도 있고, 의대 증원에 대한 반대는 의사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추악한 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가능하고. 그래서 의사를 의새로 격하시키고, 여자 의사는 한 명의 정상적 의사로 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초기부터 비상 상황으로 설정하고, 의사들을 매도하기 시작한 처음부터, 이 정권의 사악함은 극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안철수 의원을 설득해서 지지하게 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의과대학생들의 미래 의학교육을 위해 본인의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하고 떠났다. 해부실습에는 의학교육을 위한 숭고한 뜻으로 자신을 기증한 많은 분의 시신이 사용되고 있다. 김동길 명예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의 교육 목적 시신을 기자재라고 모욕한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의 막말은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박민수 차관과 행정부 관리들은 이들이 지금 짓고 있는 죄를 김동길 명예교수의 무덤 앞에서 남은 평생 석고대죄를 한다 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으면서 자신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잘살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의사·공무원·법조인·기자 등 지식인층을 모두 학살한 참극을 벌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의료 대란, 혹자가 표현하는 대로의 의료 농단은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들을 킬링필드를 일으킨 주범들이 가지고 있던 포퓰리즘의 타겟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절대로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민 여론을 호도하여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려는 현 정권의 사악함에, 과거에는 귓전으로도 들리지 않던 검찰 독재라는 야당의 구호가 마음 한구석까지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